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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cartan (Elie)
날 짜 (Date): 1994년12월28일(수) 17시25분55초 KST
제 목(Title): 김현식의 노래를 들으면서.




I

오래간만에 김현식의  노래를 시디 체인저에 물렸다.  가지고 있는 

2집부터 6집까지를 전부 한꺼번에 물린 다음,  그냥 몇 시간 벽 한

구석에 기대서 듣고만 있었다. 나중에는 결국  집에 몇 개 남아 있

던 캔맥주까지  혼자서 다 비우게  되었으니 이게  무슨 청승인지. 

연말인데다, 집사람과 딸 녀석까지 서울에  보내고 혼자 남은 때문

인지, 요즘 있는 궁상은 혼자서 다  떠는 것 같다. 5집을 들으면서 

불현듯 삶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다. 5집을 만들  때쯤이면 이미 

그는 자신이 간암으로  삶의 가망이 없다는 것을 알았던  듯 싶다. 

시계의 초침시계로 "넋두리"를 시작하며  자심의 시한부 인생을 암

시한다. 하지만  그는 도망가는 삶을  결코 잡지  않겠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앨범의 마지막에 가서는 복음성가까지  직접 부르고 

있다. 겉으로 보이는 그의 모습은  죽음을 당당히 맞이해 나가겠다

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삶의 대한 강한 애착이 아닐는

지. 말년에  좋아하던 술까지  끗고, 종교에까지 귀의하면서  삶을 

되찾고자 했던 그가 부르는  "넋두리"에서의 노래 소리는 나에게는 

차라리 더 살고 싶다는 울부짖음으로 들려진다. 



삶은 그렇게도 모든 이에게 소중한 것인가 보다. 



II

돌이켜보면 내가 대학을  다니던 때에는 참으로 많은  젊음이 들이  

삶을 버렸다.  관악의 봄은 무척이나 아름다운  모습으로 모두에게 

다가온다. 눈부시게 노란 개나리 꽃의  만개로 시작되는 봄은 곧이

어 철쭉꽃, 왕㉩꽃의 물결로 온 관악  교정 전체를 장식한다. 그런

데 그  아름다운 86년의  봄에, 관악의  찬란한 꽃물결을 뒤로  한 

채, 이 재호,  김 세진, 두 귀중한 생명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그리고 곧이어 이  동주로 기억되는 또 다른 이의  자살이 있었다. 

87년에는 활기찬  신촌에서 기대에  찬 대학 신입생활을  시작했을 

이 한열이 살해당했다. 그리고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어느 관악의 

국문학도. 이제는 더  이상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일이  없을 것으

로 생각되던 어느  해, 우리는 조 성만이라는 젊음이  스스로 삶을 

포기하는 모습을 또  지켜봐야했다. 그 외 이제는 잊혀져  버린 많

은 이름들. 



삶이 그렇게도 모든  이에게 소중하건만 이들은 스스로  그들의 목

숨을 버렸다. 무엇이  이 들에게 삶을 포기하게  만들었을까? 아니 

무엇이 그토록 이들을 절망하게 만들었을까?



III

그 시대에 대학을 다녔던 모든  이가 그렇겠지만, 나의 관악에서의 

출발은 메케한  최루탄 냄새와 함께  시작되었던 것  같다. 입학식 

날의 최루 가루가 깔린 교정,  이틀이 멀다하고 출입이 제한되어지

는 교문에서의 검문과  검색, 이 것이 고등학교 때  낭만으로 상상

하던 대학 생활의 시작이었다. 어차피  장밋빛 빛깔이 아니될 줄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그 모습이 그토록 어둡고 침울한  회색일 줄

은 미처  상상을 못했었다. 도서관에서 교양과목  책들을 공부하던 

철없던 삼월의 어느  날, 오후 늦게 시작된 시위가  결국은 어둠이 

내린 후 진압되고, 학교측에  의해서 도서관이 폐쇄되었다. 주섬주

섬 가방을 싼  후, 도서관 주위와, 학생회관 주위에  도열한, 아니 

학교 전체를 에워싼  듯한 경찰 사이를 비집고  내려오면서 눈물이 

흘러내림을 느꼈다. 그 눈물이  최루가스에 의한 작용인지, 아니면 

서글픈 우리네들의 젊음에 대한 아픔이었던  지, 또는 외면해 버리

기에는 너무나 큰 부조리에 대한 분노  때문이었는지 아직도 잘 모

르겠다. 



짧은 농촌활동에서는 우리의  고향이 얼마나 핍폐화 되어  있는 지

를 또 봐야했다.  그리고 야학을 통해서 본 많은  젊은이들의 삶에 

지친 모습들. 이 모든 모습들에서  고개 돌리고 나가기에는 우리의 

젊음이 너무나 찬란했던 것일까? 분명  활기차고 아름다워야 할 20

세 젊음이었건만, 그 어느 누구도 마음대로  웃을 수도, 떠들 수도 

없었다. 그저 돌아서서 조용히 흐느낄 수만 있을 뿐.



87년 6월 아크로를  가득 메우고도 남았던 2만의 학생들,  이 한열

의 장례식 날  시청앞 광장과 서소문일대를 메웠던  몇백만의 민중

들. 그리고  대통령 선거, 개헌,  총선. 그리고  90년의 3당합당과 

민자당 창당.



IV

유난히도 비가 안내리던 그해 여름의 땡볕  밑에서 같이 뛰던 친구

가 있었다. 비록 나하고는 나하고는  틀린 전공을 지닌 녀석이었지

만, 나하고 뜻이  맞는 그가 무척이나 마음이  들었었다. 회색분자

로 남았던 나하고는 틀리게, 끝까지  굳건한 믿음을 실천했기에 난 

일말의 존경심까지 그에게  품었던 것 같다. 91년에  9개월의 실형

을 끝내고 나온  그가 학업에만 매달린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편으

로는 의아해 하면서도 내심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바

친 젊음을 이제는 보상받아도 되리라  생각했기에. 그런 그가 유학

을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출발하기 얼마 전에 만나서  술을 같이 

할 때 그가 내뱉은 한 마디에 난  내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속단이

었음을 깨달아야 했다. "다시는 이 땅에  안 돌아온다. 이 땅을 밟

는 일은 다시없을 것이다." 차라리  그가 고시에 합격이라도 해서, 

경찰의 고위직이나 공안  검사직이라도 맡았으면 내 마음이  덜 아

팠으리라. 



미국에 와서 몇  번 연락을 주고받던 그가 얼마 전  죽었다는 소식

을 접했다. 자살이었단다. 미국 땅에서의  자살. 무엇이 그를 그토

록 절망하게 만들었을까. 



V

돌이켜 보면 80년대의 노래들은 슬픈  노래들이었던 것 같다. 비록 

패배주의라는 비판을  받았었지만, 대중들에게  유행했던 운동가요

들은 감성적이고,  서글픈 분위기의 노래들이었다. 새,  그날이 오

면, 노래, 동지를  위하여, 솔아 푸르른 솔아, 잠들지  않는 남도, 

마른 잎 다시  살아나. 낮에 있은 시위로 온몸은  땀과 최루가스에 

젖은 채로 모여 소주병을 비우며 그런  노래들을 부르며 밤을 세곤 

했다. 그런데 그 시대에 유행했던 대중가요  역시, 꼭 김현식의 노

래들을 예를 들지  않더라도, 애상적이고, 슬픈 노래  분위기인 것 

같다. 그 시대를  살았던 모든 이들의 슬픔과 애환이  담아 있기에 

그런 것일까?  



반면에 90년대의 대중 가요들은 사뭇  다르다. 경쾌하고 빠르고 즐

거운 분위기이다. 혹 진부한  기성세대들이 싫어할 지 모르겠으나, 

나에게는 그  노래들도 즐겁다.  일단은 밝아서 좋다.  한편으로는 

우리네들이 가지지 못했던  것들을 그네들은 가지는 것  같아서 부

러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따라 부르는  것은 뜻대

로 잘 안되는 것 같다. 리듬과  박자가 어려운 까닭도 있겠지마는, 

내가 부르기에는 너무나 이질적인 노래인  것 같은 느낌이다. 아마

도 내가 불려야 할 노래는 80년대의 그것들인가 보다.



VI

거센 바람이 불어와서/ 어머님의 눈물이/

가슴속에 사무쳐 우는/ 갈라진 이 세상에/ 

민중의 넋이 주인 되는/ 참 세상 자유 위하여/

시퍼렇게 쑥물 들어도/ 강물 저어 가리라/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 샛바람에 떨지 마라/

창살 아래 네가 묶인 곳/ 살아서 만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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