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SNU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4년12월04일(일) 18시53분06초 KST 제 목(Title): 동성동본.....그 비극의 씨앗.. 그 아이와 나는 동성동본이었다. 우리는 처음부터 그 사실을 알고 있었고 어쩌면 그래서 더 처음부터 거리낌 없이 친해질 수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 애는 나에게 대학 2년 후배였는데.... 지금 생각해도 어디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좋은 아이였다. 키 크죠, 날신하죠, 얼굴 이쁘죠, 머리 좋지요.... 한 동안 그렇게 서로 알고 지내다가 내가 무슨 꼭지가 돌았는지 어느날 같이 영화구경을 가자고 운을 떠 보았다. 지금처럼 찬바람이 휭휭 부는 12월의 어느 날이었는데, 마침 내가 어떤 널럴한 장학금 시험에 응시해서 합격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 날이었다. 그 아이가 나의 희소식을 너무 기뻐 해 주어서 고마움의 표시로 내가 한턱(?) 쓰겠다고 나섰던 것이다. 겉으로는 조금 쌀쌀 맞아 보이는 아이였지만 그 후배는 의외로 즐겁게 나의 초대에 응해주었고.... 우리는 강남의 모모 극장에서 즐겁게 영화를 구경한 다음 저녁식사까지 함께 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그 때부터 일종의 금지된(?) 장난이랄까...그런 것이 시작된 것이었다. :) 함께 영화구경도 하고, 콘서트 장도 가고 (나는 콘서트 구경 가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 내가 구두 사러 가는데도 난 미의식이 없으니 네가 좀 봐달라는 핑계를 대서 불러내고....그럭저럭 한 반년간 함께 잘 붙어 다녔다. 적어도 내 기억에는...그 아이는 함께 길을 걸으면 같이 걷는 남자가 스스로 자랑스러워할 만한...그런 스타일의 여자였다. 그러면서도 어린애 같이 순수한 데가 있는 아이였다. 언젠가 한 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 약속 장소에서 만났는데 애가 너무 즐거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슨 재미난 일이라도 있느냐고 물었더니... "헤헤...우리 언니 지금쯤 이 좋은 일요일에 방바닥 긁으면서 테레비 보고 있을텐데 저는 지금 이렇게 오빠랑 밖에 나와 있으니까 기분 좋아서요." ^_^ 하하하....여자들이란....:) 그런데, 사실 그정도 친해지면 내가 무엇인가 밀어 부쳐야 했을텐데 그것이 안 되는 것이었다. 왜? 그 아이하고 나는 동성동본이니까 친구 이상은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다우는 그전까지 우생학적 견지(?)에서 동성동본 금혼 규정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했던 보수주의자 였지만 막상 내가 그런 일을 당하고 나니 죽을 맛이었다. :( 물론 연애만 신나게 하고 서로 바이바이 하는 방법도 있긴 했지만...적어도 당시의 나는 아직 그런 행동양식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착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냥 끊어 버리기에는 너무 좋은 아이 였는데다가 둘이 여러모로 꿍짝이 잘 맞았다. 그 아이도 나의 엉거주춤함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고....서로 말은 안했지만 늘 의식하고 있던 그런 어색함이 결국은 우리 사이를 소원하게 만들고 말았다. 그 아이에게 거는 내 전화가 점점 뜸해지고....비례해서 만나는 횟수도 줄어들고.... 그러다가 그만 우리는 흐지부지 끝나 버리고 말았다. 어느 순간 갑자기 깨진 것이 아니라 자연스레 멀어져 버린 것이다..... 그 일이 있고 부터 나는 동성동본 금혼 규정 반대주의자로 변신했다.:) 사실...나의 경우처럼 아예 파가 다르면 지난 수백년간 전혀 혈연적인 관계가 없었던 것인데...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생학적인 이유로 남여 상열지사를 금지하다니....:( 동성동본금혼규정 같은 시대착오적인 법률은 언제나 없어질려나....? 아마 여러분도 나 같은 처지에 처해보면 동의하실 겁니다. -- landau Physics makes world go aroun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