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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4년12월04일(일) 16시03분13초 KST
제 목(Title): 교수님, 저 연구실 그만두겠읍니다!




" 교수님, 저 연구실 그만 두겠읍니다.! "

일분 전까지 나랑 프로젝트에 대해서 토의 하고 계시던 나의 지도교수님은
다우가 내뱉은 말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감이 안 오시는 모양인지 눈만
껌뻑껌뻑 하고 계셨다. 나는 속으로 인제 주사위는 던져졌다고 생각하면서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목과 배에 힘을 빳빳이 주고 앞을 쳐다보았다.....

내 표정을 보고서야 교수님은 좀전에 내가 꺼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 지 
감을 잡으셨고 약간 당황하신 얼굴로 

" 음....그래.....? "

하고 운을 떼셨다...................................................


왜 내가 잘 다니던 연구실을 때려 치우고 다른 랩으로 옮길 생각까지 하게 
되었는지는 별로 밝히고 싶지 않다. 비록 서로 껄끄럽게 헤어졌지만 그래도
나의 스승이고 나 스스로도 별로 잘한 일 없기 때문이다. 그냥 교수와 학생
간에 흔히 있는 그런 트러블이었다고 해두자.

몇달간의 랩 생활에서 쌓이고 쌓인 나의 불만은 극에 달해서 91년 11월경..
그러니까 내가 석사 1학년 2학기를 마쳐갈 무렵에는 도저히 견디어 낼 수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나는 그때 연구실을 옮기는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는데,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대학원 같이 교수님의 권위가
어마어마한 (?) 사회에서는 상상외로 만만찮은 일이었다.

절친한 친구 몇 사람이랑, 부모님 하고 상의를 했는데 주변에서는 하나 같이
뜯어 말리는 것이었다. 다우야 너 죽을려고 환장했냐, 학생이 교수 기분을
건드려 몸이 성할 것 같으냐, 그러다가 다른 랩에서 안 받아 주면 어쩔려고
그러냐.....

하지만 다우는 괜한 소리가 아니라 정말 한다면 하는 사람이다. 장기간에 걸친
숙고 끝에...나는 '랩을 때려 치우기로' 맘을 먹었다.:)

그리고는 여러가지 상황을 보아서 어느 날 교수님 연구실에서 일대일로 프로젝트
에 대한 토의를 마친 직후 그 말을 꺼낸 것이다. 교수님 저 연구실 그만 
두겠읍니다.

일단 출발은 순탄한 듯이 보였다. 내가 한 말을 들으신 지도교수님은 왜 나가려 
하느냐를 물으신 후에...(물론 진짜 이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냥 각광 받는
다른 주제를 공부해 보고 싶어서 지금 랩에서 하는 주제는 맘에 안 든다고
했을 뿐이다.) 오히려 황송(?)하게도 손수 다른 랩에 자리를 알선해 주시겠다는
말까지 하셨다. 음....왠 일이야? 그리고 내일 부터는 랩에 나오지 않아도 좋다는
말씀도.....

난 홀가분한 기분에 (적어도 주사위는 던졌으니까...) 그길로 랩으로 돌아와
짐을 싸들고 연구실을 나오고 말았다.

그런데... 하루 이틀 지나면서 내가 저지른 일이 생각외로 큰 일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연구실의 동기들은 계속 수업시간에 나에게 와서 교수님이 지금 
대노한 상태라고 전갈을 했고, 새로 들어갈 랩을 찾는 일도 그리 만만하지
않았다. 두어분 교수님들을 찾아갔는데, 내가 전의 연구실을 때려치우고
새 직장(?)을 찾고 있다는 말을 꺼내자마자 딴전들을 피우시면서 생각해보고
연락할 테니 그냥 가서 기다리라는 것이었다. 물론 연락 같은 것은 안 왔다....

그렇게 보직 없이 일주일 여를 지나고 나니까 이건 완전히 실업자 상태 그대로
도무지 마음이 안정되지 못하고 괴로왔다. 게다가 우리 학번의 랩배정을 총괄 
하셨던 L 교수님이 나를 호출해서는 .... 전 지도교수님이 '모든 것을 용.서.
하기로' 했으니 잘못했다고 빌고 돌아가라는 종용까지 하셨다.:(

나도 한때는 그냥 그럴까 하는 유혹이 들었던 적도 있었지만, 정 안 되면 군대에
가겠다고 다부진 통고를 하고선 L 교수님의 종용을 거부해 버리고 말았다.

나의 착각인지도 모르지만 사이가 좋은 몇몇 교수님들이 뜻을 맞추어서 내가
일시적으로 욱하는 것이니 안 받아주고 그냥 시간을 끌면 원래 교수님에게 숙이고
들어갈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도 몰랐다.

나에게 그래도 다행스러웠던 것은.... 물리학과가 워낙 크고 교수님 수가 많아서
(교수님 수 : 28명) 선택의 여지가 많았다는 것 하고.... 사람이 많다보니 교수
님들 간에도 별로 친하지 않은 (?) 사이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 그리고
공대 등등 보다는 훨씬 자유로운 물리학과의 분위기도 한몫 해 주었다.
(원래 우리과는 전통적으로 망나니들이 많은 편이다....^_^....)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나까지 근 십년간 계속 물리학과에 맥을 이어오고 
있었는데 이상하게 그 선배들의 대다수가 한 연구실에 몰려 있었다. 나는 고교
선배님들의 빽(?)을 동원해서 그 랩에 자리를 알아보았고...( 그니까 우리 선배님
들이 그 랩 지도교수님 에게 란다우 얘가 쓸만한(?) 애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면서 분위기를 잡았다 이거야요.) 다른 랩에서 나처럼 지도교수 님이랑 
못 사귀고 연구실을 때려치우고 나간 놈이 또 있어서 그 랩에도 의사를 타진해 
보았다.

근 이주일에 걸친 무보직 대기발령 (?) 상태를 끝내고 다우는 다행히 후자쪽의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 아마 내 생각에는 지금의 지도교수님이 내 전임자가
사퇴하고 나가버려서 섭섭하시던 차에 내가 찾아 뵈니까 별 말씀 없이 받아
들이신 것이 아닌가 한다.

얼마후에 내가 왜 전의 연구실을 때려 치웠는지가 알려져서 교수님께 불려가
여기서는 그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단단히 주의를 들었지만 새 지도교수님이
워낙 너그러우신 편이라 이곳에서는 몸바쳐(?) 충성하겠다는 맹세를 하고
지금까지 잘 지내올 수 있었다. 일이 잘 되려고 그랬는지 옮겨온 랩은 내게
아주 즐거운 곳이어서 난 결과적으로 옮기기를 백번 잘했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


신상발언 : 음....내 글이 다른 분의 포스팅에 참고문헌으로 언급되다니....:)




                                                 -- land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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