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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NU ] in KIDS
글 쓴 이(By): landau ()
날 짜 (Date): 1994년11월23일(수) 13시46분05초 KST
제 목(Title): 학력고사 보던날 II 잊지못할 커피한통(?).



예비소집날 그런 황당한 일을 저질러 놓고 나서 .... 나는 그날밤에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양심에 찔리거나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니고...:)

앞에서도 이야기 했듯이 예비소집 날은 몹시도 추웠는데 그 추운날 바람이
싱싱부는 강남을 돌아다니고 운동장에서 찬바람 맞고 거기다가 못된 짓(?)까지 
하고 돌아왔으니 몸이 피곤했던 것은 당연지사. 어머니께서는 춥게자면
시험 못본다고 방을 쩔쩔 끓게 덥혀 놓고 계셨다.(바로 그게 문제였어...)

잠시 몸만 녹이려고 방 바닥에 누웠던 나는 돌아온 6시 경부터 밤 9시까지
내리 곯아떨어지고 말았다. 9시에 깬 것도 보다못한 어머니께서 저녁이나
먹고 자라고 하셔서 일어난 것이었다.

근데 문제는...저녁을 먹고 10시쯤 잠을 청하려니까 눈이 점점 말똥말똥해지고
도무지 잠이 오지 않는 다는 것이었다.! 아마 남들처럼 시험전날이라고 너무
긴장한데다가 결정적으로 앞에 3시간을 곤히 자서 몸이 피곤하지 않았던 탓일게다.

잠을 푹자야 내일 시험을 잘 본다는 강박관념은 점점 심해지고... 정신은 갈수록
맑아져서  잠은 더 안오고... 정말 미칠지경이었다. 운동도 해보고 숫자도 세어보고 
정말 별짓을 다 했지만 잠을 못이룬채...결국 내가 잠자기를 포기했을때는
새벽 3시였다.

아아...나는 시험을 망치겠구나... 자리도 나븐자리가 걸렸고 그전날 밤 잠도 
제대로 못잤다.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 때쯤에는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결국 나는 견디지 못하고 부모님 방의 문을 두드릴수밖에 없었다.

"어머니 잠이 안 와요..... ;_; "

어머니께서는 나중에 말씀하시기를 그말을 듣는 순간에 가슴이 덜컹 내려
앉았다고 하셨지만 , 당시의 나에게는 그런 내색 하나 없이 조용히 등을 
쓰다듬어 주실 뿐이었다. 그런 어머니의 무언의 행동이 효력을 발휘했기
때문일까? 난 대략 3시 반경부터는 그런대로 잠을 이룰수가 있었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난 나는 내머리가 지금 완전히 비몽사몽간을 헤메고 있다고
느꼈다. 잠을 제대로 못잔 탓에 머리가 무겁고 도무지 돌아가질 않는 것이었다.
나는 커피의 필요성을 느꼈다..

지금도 그렇지만 나는 평소에 커피를 전혀 마시지 않았다. 왜냐고? 우리집은 
전통적으로 커피를 안 마신다. 아무도.... 그래서 정작 졸립거나할 때에
커피를 한잔 마시면 놀라운 효과를 본다. 커피를 안마시면 오히려 잠이 안온다는
사람도 있지만 나 같은 경우는 오후에 커피 한잔만 마시면 그날밤에 잠자기는
글러버린 것이다. 

그러니 학력고사날 아침 처럼 급박한 상황에서 (졸리니깐...)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커피한잔 이었다. 그런데 재수가 없는 일이 계속 일어난다고 집안에
커피가 하나도 없는 것이 아닌가? 당연하긴 하다. 우리 집에서는 아무도 커피를
찾지 않으니까. 물론 접대용으로 사다놓은 커피가 있긴 했지만 하필이면 그날
그 커피가 다 떨어져 버린 것이다.으으......

그때는 지금처럼 24시간 편의점이 있던 때도 아니고 가게들도 문을 열지 않은데다가 
시간이 촉박해서 커피를 구하러 다닐 틈도 없었다. 결국 나는 무거운 머리를 가지고
졸린 눈을 비비며 시험장으로 향해야 했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시험장 앞에 후배들이 끓여 놓고 있을 커피였다. 그...왜...
입시장소에 가면 각 고등학교 플랭카드가 걸려있고 그 밑에 선배나 후배들이 
입시생들에게 커피를 한잔씩 주지 않는가? 나는 그 커피를 기대했던 것이다.

그런데 재수없는 일은 연속으로 일어난다고 나는 나의 모교 플랭카드를 못찾고
말았다. 아마 너무 서두르다 보니 그리된 모양이다. 애만 태우다가 결국은 
커피를 포기하고 입시를 치루는 중학교 교문에 마악 들어가려는 순간...
(그대는 입시장 인 학교 내에 일체 출입금지 였다. 그러니까 일단 교문에 들어가면
 주사위는 던져지는 것이다.)

"선배님 커피 드셨읍니까? "

하는 소리가 들리면서 누군가가 내 팔을 잡았다. 우리 학교 후배였다. 2학년
이었는데 나처럼 제대로 찾지 못하고 띨띨하게 그냥 들어가는 놈이 있을 것
같아서 아예 보온병과 종이컵을 들고 교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학교 뱃지를
보고 나를 부른 것이었다. 아아...그 때의 그 반가움이란....

난 그 후배가 가지고 있던 커피를 거의 보온병 한통으로 다 마셔 버렸다. 너무
애타게 찾았기 대문일까? :) 시간이 다급해서 나는 그 후배에게 고맙다는 인사만 
달랑 던지고 시험장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리고 시험....

결과적으로 난 커피덕분에 대학에 붙었다. ^_^ 앞글에서 이야기한 대로 난로도 
피워지지 않았고 2교시 수학시간 부터는 커피의 카페인 덕에 쌩쌩 날았다.
물론 커피를 너무 늦게 마신 탓에 1교시 국어 시간은 비몽사몽간에 헤메며
치렀지만 , 87년도 입시를 치른 사람들이 다 동의 하듯이 그해의 국어문제는
제정신으로 푸는 사람이 더 점수가 안 나오는 이상한 문제 였기 때문에 
나에게는 오히려 좋았다.:)

(음... 대학입시 때도 도핑테스트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전날의 피곤함이 결국은 말썽을 일으켜서 마지막 교시 답안지를 내려는 
순간 문제지 위에 코피를 주르륵 쏟고 말았다. 답안지인 OMR 카드위에 
쏟았으면 정말 큰일 날 뻔한 순간이었다.

그리고....커피를 한통이나 마신 탓에 난 남들 다 3년만에 가장 달게 잠든다는
그날밤에 핏발선 눈으로 꼬박 샐 수 밖에 없었다. 그 괴로움...*)

그 다음해부터 입시제도가 바뀌어서 선배들이 자기대학에 오는 후배들에게 커피를 
끓여 주는 처지가 되었는데... 아쉽게도 나에게 그 잊지 못할 커피 한통을 
주었던 후배는 볼 수가 없었다. 아마 딴 학교를 지원한 모양이다.

그 후배가 나에게 베풀었듯이... 그 후배가 정말로 정말로 커피한잔이 필요할 때
누군가 그에게 따듯한 커피 한잔을 주었기를 바란다....

^_^



                                                  landau

                                      오이 냉채 같은 글을 쓰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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