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KK ] in KIDS 글 쓴 이(By): billy (김성수) 날 짜 (Date): 1995년12월05일(화) 11시30분17초 KST 제 목(Title): [퍼온글] '강아지에대한 고양이의 금지된 � 글쓴이: shkwon (수네) 날 짜: Wed Sep 6 19:09:04 1995 제 목: [퍼온글] '강아지에대한 고양이의 금지된 사랑'에관한 감상 어떤 보드에에 올랐던건데, 누가 메일로 보내왔기에 올려봅니다... 절대 픽션이 아닌, 실제경험담이이랍니다... --------------------------------------------------------------------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은 무조건적이고, 숭고하다. 간혹 인륜을 저버린 부모나 자식들의 얘기가 신문지상에 등장하긴 하지만, 그래도 가장 숭고하고 소중한 것은 바로 어머니의 사랑이다. 내가 지금부터 얘기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이야기다. 하지만 그건 인간얘기가 아니라 말 못하는 한 동물에 관한 이야기이다. 언젠가 이웃집에서 키우던 개가 새끼를 4마리 낳았다. 그 집에서는 그 강아지들을 다 키울 생각이 없어서 이웃들에게 나누어 주었기에, 한마리를 데려다가 키웠다. 몇달후 이녀석이 또 새끼를 가졌다. 녀석이 오랜 산고끝에 새끼들을 낳았으나, 주인의 돌봄도 허사로, 녀석은 핏덩어리 새끼 한마리만을 남기고 돌아오지 못할 길을 홀로 떠나 버렸다. 눈도 뜨지 못한 어린 강아지는 어미 젖 한번 빨아보지 못하고 고아가 된것이다. 어린 우리들은 어떻게든 강아지를 살려보려고 젖병까지 구해다가 우유를 덥혀서 먹였다. 하지만 어린 녀석은 우유를 삼키지 못했다. 젓병도 사람의 것이라, 주먹만한 강아지에겐 너무 컸다. 불쌍하지만, 그렇게 삶을 마감할수 밖에 없을것 같았다. 누구도 그 강아지를 맡아 키울만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축병원에서도 별다른 수가 없다고 했다. 손가락에 우유를 묻혀서 빨려보라는 말밖에는 들을 수 없었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강아지는 점점 쇠약해져 갔다. 그러던 어느날이었던가. 옆집에 살던 고양이가 새끼를 낳았는데 모두 태어난지 이튿날 죽었다는 거다. 남의 일같지 않게 들렸다. 어느날, 난 고양이가 우리 강아지 옆에 있는것을 보았다. 행여 해코지를 할세라 난 고양이를 쫓아버렸다. 그런데 고양이는 멀리가지 않고 담장위에서 빤히 우리를 지켜보는 게다. 그런데 동생에게서 희한한 소리를 들었다. 바로, 그 고양이가 우리 강아지에게 젖을 먹이더라는 게다. 별웃기는 얘기도 다 있구나 싶었다. 아닌게 아니라, 그후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자주 보았다. 그 고양이가 사람을 꺼리기 때문에 난 둘이 있는 모습을 보면, 방해가 되지 않게 조용히 뒷문으로 돌아서 집으로 들어가곤 했다. 하지만 내눈으로 젖을 먹이는 것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우유를 먹이지 않아도 강아지가 점점 건강해지는 것을 보면 분명 고양이가 젖을 먹인다는 동생의 얘기가 사실인것 같았다. 이제는 가족 모두가 철천지 천적이라는 고양이와 개사이에 싹튼 이상한 우정을 깨닫고는 그들의 만남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적극적으로 협조해주기 시작했다. 어느듯 고양이는 우리를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자주 우리집을 방문했다. 둘은 이제 완전히 모자지간이 되어있었다. 강아지는 새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장난을 쳤으며, 고양이는 어린 양자의 응석을 받아주었다. 고양이의 주인은 고양이가 우리집으로 자주 넘어가는데 혹시 폐를 끼치지는 않는지 염려해주었다. 강아지는 몰라보게 자랐다. 어느덧 어미고양이와 비슷한 덩지가 되었다. 이제는 강아지의 장난이 더이상 장난에 머물지 않고, 고양이에게 상처를 줄정도로 힘이 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양이는 너그럽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앞발로 고양이의 머리를 툭치면 이제는 고양이가 비틀거릴 정도가 되었던 것이다. 이무렵 우리는 이상한 현상을 목격하게 되었다. 즉, 몸은 개인데, 스스로 고양이라고 여기는 이상한 변종을 보게된 것이다. 늑대에게 양육된 인간의 얘기가 전혀 허구만은 아니란 것을 실감할수 있었다. 강아지의 모든 행동양식은 고양이의 그것이었다. 화가 났을땐 등을 오무리고 꼬리를 꼿꼿히 세우고는 가릉가릉하는 낮은 소리를 내었다. 또 우리가 소파에서 TV따위를 보고 있을때, 다가와서는 우리의 다리에 다가 머리부터 몸통,꼬리까지 몸을 비벼대곤하는 것이었다. 정상적인 개에게서는 쉽게 볼수 없는 행동들이었다. 한번은 현관입구 난간에서 마당으로 1.5m이상이 되는 높이에서 뛰어내리다가 꽝하고 마당에 나뒹구는 모습을 보았다. 진짜 고양이라면 사뿐히 뛰어내렸겠지만, 하드웨어는 '개'인것을 어쩌랴! 어미의 흉내를 내었겠지만, 다행히 다음부터는 그런 무모한 행동을 따라하지 않았다. 그뒤 며칠 안지나서, 강아지는(녀석은 그때껏 이름이 없었다. 그냥 강아지였다. 그 당시 우리는 우리의 강아지를 마치 남-고양이-에게 빼앗긴것 같은 기분을 가졌을때였다) 처음으로 혼자 외출을 감행하였다. 대문밖을 위태롭게 나가는 것을 목격한지 10분도 되지 않았을때였다. 온 동네 개들은 모두 몰려온듯 대문밖이 떠들썩했다. 대문 아래쪽 틈으로 성난 개들의 낚아채려는 앞발질과 성난 이빨이 드러난 주둥이들이 비집고 들어오려고 난리였다. 강아지는 아직도 가뿐 숨을 몰아쉬며 멀찌감치 현관입구 쪽에서 발발떨고 있었다. 이윽고 내가 현관문을 열고 나가자, 녀석은 나를 올려다 보고는 용기를 얻은듯 자못 등을 곧추세우고는 털을 빳빳이하고, 노기등등한 기세로 대문간에 몰려든 동네개들을 향해 성난 소리로 울부짖었다. "야옹" 어색한 개의 억양이 뚜렷했지만, 그건 분명 '야옹'이었다. 믿기지 않지만, 고양이의 말을하는 개가 탄생한 것이다. 야옹소리를 들은 개들은 광분했다. 비록 개의 말을 내가 알아들을수는 없지만 그들의 의사는 분명했다. "아니, 뉘집 자식인데 멀쩡한 개자식이 고양이짓을 해!", "저런 후레 개자식이 있나,어린놈이 우리보고 '야옹'하고 욕을 하네", "저거 빨갱이 아냐 ? 개의 탈을 쓰고 우리의 분열을 획책하려고 파견된 고양이 첩자가 틀림없어, 저런 개x끼는 잡아죽여야혀.", "정말 세상이 개판이라지만 어찌 이런 개같은 경우가 있을까", "2세 교육을 잘못했능가벼, 멀쩡한 개자식이 고양이노릇이라니 쯧쯧.." 뭐 대충 이런 내용이 아니었을까 짐작한다. 결국 분노한 '견중'은 나의 무력진압에 흩어지고, 할일없는 동네 아줌마들은 왜 우리집 대문앞에서 '개규모' 집회가 열렸으며, 그들의 집회가 왜 진압되었어야만 했는지 궁금해했다. 결국 불쌍한 강아지는 첫 외출에서부터 너무나 충격적인 문화적 이질성을 경험한후 두번 다시 나가지 않고, 집에만 은둔하게 되었다. 비록 동족에게서는 버림을 받았지만, 그에겐 언제나 변함없이 따뜻한 '엄마의 품'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럭저럭 세월이 흘러 그런 인연이 비롯된지도 반년 가까이 흘렀다. 운명이란 늘 그러하듯, 그들의 만남을 그렇듯 극적으로 맺어주었건만 너무나 어이없는 사건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만남을 종결짓고 만다. 어느날인가, 캑캑하는 소름끼치는 울음소리에 놀라 마당에 나갔다. 고양이가 쓰러져 있는 강아지 옆에서 울부짖는 소리였다. 이미 강아지는 기력을 잃고 있었다. 어쩌면 죽어있는지도 몰랐다. 내가 다가가서 강아지를 만지려하자, 고양이는 뚜렷한 적대감을 표시했다. 두려워서 선뜻 손을 댈수 없었다. 강아지의 입가에는 음식물 흔적 같은 것이 묻어있었는데, 매퀘한 약냄새가 났다. 어느집에서 놓아둔 쥐약이 든 음식을 강아지가 먹은 것이다. 이미, 강아지는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었고, 여러모로 죽음의 그림자가 뚜렷했다. 난 가만히 강아지의 머리를 땅에다 내려놓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몰랐다. 강아지가 죽는것을 속수무책으로 보고만 있어야 할지, 병원으로 데려가야할지, 아니면 거의 죽어 버린 강아지에게 먹은 것을 토해내게 해야할지...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고양이가 강아지의 입주변에 묻은 것과 토해놓은 것을 핥고 있었다. 난 행여 고양이도 따라 죽을 것을 염려해서 고양이를 잡고 떼어 놓으려했다. 순각 성난 고양이의 할큄에 난 기겁을 하고 손을 뺄수 밖에 없었다. 할퀸 손바닥이 따끔했다. 피가 났지만, 손바닥에는 흉터가 남지 않을 거란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어서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그냥 그렇게 강아지는 죽어갔다. 주인이 옆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탓에... 하지만 내가 무엇을 할수 있었으랴. 우린 강아지를 양지바른 화단구석에 묻어 줬다. 별로 깊은 정은 들지 않았지만(사실 우린 줄곧 고양이에게 질투아닌 질투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도 참 불쌍하단 생각이 들었고, 뭔가 모를 진한 슬픔같은 것이 어린 마음을 아프게 했다. 그리고 고양이도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친자식들을 낳자마자 모두 잃고, 그나마 얻은 수양아들마저도 비명에 보냈으니, 아무리 감정이 없는 짐승이라 한들 그 슬픔이 오죽했으랴. 아닌게 아니라, 그날부터 우린 고양이와 개가 같이 놀던 현관 옆쪽 햇볕이 따사로이 비치는 강아지의 옛집에서, 멍하니 엎드려서 먼산을 바라보는 고양이의 모습을 심심찮게 볼수 있었다. 어느날인가는 내가 다가가도 도망치지 않았다. 난 용기를 내서, 할퀴어질 각오를 하고 고양이를 가만히 쓰다듬어 줬다. 녀석의 등에 손을 가만히 얹어서 녀석의 심장이 뛰는 기운을 느낄수 있었다. 참으로 작고도 고요한 박동이었다. 대개 조그만 짐승들의 심장박동은 빠르게 느껴졌었다. 그날따라 고양이의 심장박동은 고요한 호수같았다. 난 어렴풋이 고양이가 울고 있다고 느꼈다. 잃어버린 자식을 그리는 어머니의 마음인 셈이다. 지나친 상상일까, 고양이의 슬픔이 내게도 전이되는 것을 느낀 것은... 적어도 그때의 느낌으로는 나도 고양이와 같이 슬픔을 공감했다는 것이다. 그뒤로 고양이는 보이지 않았다. 며칠이 지나도 고양이는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짐승에 불과한 고양이에게서 모정이니, 슬픔이니 하는 것을 찾으려한 것은 인간의 부질없는 상상탓이었을까? 옆집아주머니가 골목에서 동네아줌마들에게 자신이 키우던 고양이가 잡으라는 쥐는 못잡고, 멍청하게 쥐약을 풀어놓은 음식을 먹고 죽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을 들은 것은 늦여름 뒤에 일찍 찾아온 추석이 다된 어느 가을날이었다. 난 지금도 그 고양이가 '멍청하게' 쥐약이 든 음식을 실수로 먹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인간이 아닌 동물이 자의로 목숨을 끊을 수 있다고 믿고 싶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것도 하필 똑같은 방식을 택해서.... '멍청하게 죽었다'고 표현했던 아주머니에게서 까닭 모를 분노를 느꼈던 것은 죽은 고양이와 우리 강아지와의 사이에 있었던 불가사의한 사랑을 목격했기 때문만은 아닌것 같다. 그때의 일들이 실제였는지 궁금하다. 비록 내 기억속에는 뚜렷히 각인되어 있지만, 있을 법하지 않은 일들, 타종족간의 사랑, 그것도 부모와 자식의 신비한 인연, 그리고 잇달은 죽음들, 이 모두가 아득한 기억의 먼지속에 희미하다. 난 불교도가 아니지만, 인연이란 것은 참으로 신비하다고 생각한다. 억겁의 세월동안 쌓고쌓아 맺어지는 인연은 종족과 피를 넘어, 한낱 미물인 짐승들에게까지 죽음을 넘어 무섭도록 끈질기게 얽혀드는 것이다. 나의 동생은 아주 어릴적 있었던 그 일들을 이미 기억하지 못한다. 하지만, 난 가을이 오면, 그리고 추석이 가까와 지면 때때로, 그날 나의 어린 영혼 속에 삶과 죽음, 그리고 사랑과 인연이라는 어려운 화두를 던져주었던 두마리의 작은 스승들을 생각하지 않을수 없다. 삶이 죽음을 넘어 환생하는 것이라면, 그들은 다음 삶에서 진짜 모자지간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토록 절실한 사랑이었다면, 운명이라해도 어찌 모른척할수 있었겠는가 ? 그렇게 되었기를 지금도 간절히 빌어본다. 아니 꼭 그렇게 되었으리라 믿는다. 올해도 그해처럼 유난히 추석이 빠르다. 문득 달력에 새겨진 추석을 보고, 한잔의 커피를 마시다보니, 이젠 거의 잊혀졌던 '가을의 전설'이 커피향을 따라 나의 마음에 녹아든다. 이제 눈을 들어 주위를 둘러보자. 진실한 사랑은 그 대상의 귀천과 여건에 구애되지 않고, 이념과 종족을 넘어, 죽음보다 굳게 시공을 초월하여 이루어질수 있다는 가르침을 준 '작은 스승들'의 믿기 힘든 인연을 생각하며, (만물의 영장이라고 오만에 찬)'이제 어른이된 제자'는 겸허한 마음으로 세상과 소중한 생명들을 사랑하며 살아갈것을 다짐하며 스승들에게 속삭인다. "당신들은 말을 할수 없었지만, 인간의 현란한 말들도 당신들이 보여준 사랑앞에선 침묵보다 나을바가 없었어요." 라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