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 민 형) 날 짜 (Date): 1995년07월01일(토) 15시14분02초 KDT 제 목(Title): cocoa님께 저는 삼풍 백화점이 무너지던 날 밤에 거길 들렀습니다. 그리고 의대 학생증을 내보이고선 의료 보조원으로 자원봉사에 참가할 수 있었지만 그때 당장은 할 일이 없어 집에 가서 키즈의 가비지 보드에 '김영삼은 책임을 면할 수 없다'는 요지의 글을 쓰고 새벽 4시인가 5시에 다시 현장으로 향했습니다. 숨을 쉬기 어려운 먼지와 가스 속에서 지하실로 구조 작업을 하러 들어가는 분들도 방독면이 부족한 상황이라 마스크로 먼지만 대충 피하며 간간이 실려나오는 부상자 들을 보살폈습니다. 먼지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끊임없이 눈물이 흐르더군요. 지리멸렬한 조직과 미숙한 대처 능력... 민방위 교육을 받으러 갔던 날이 떠올랐습니다. 오전 내내 김정일은 미친 놈이다... 라는 얘기만 듣고 끝난 민방위... 제가 알기로 민방위 교육의 주요 목적 중 하나가 재해 예방, 구호, 복구 훈련일 텐데 체제 교육 이외에는 그림자도 찾아볼 수 없었지요. 코코아님의 말씀은 원칙적으로 옳습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다시 한 번 추스려야 합니다. '대충대충' 근성을 깨끗이 벗어야 합니다. 자신의 책임을 무섭게 느껴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에겐 대통령을 욕할 자격이 없다'는 말씀에는 결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대통령을 욕할 자격 따위는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습니다만 우리에겐 대통령을 치죄할 '의무'가 있습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지하로 발암물질을 들이마시며 들어가는 구조대원들, 사사로운 일들을 접어두고 달려와 일하는 시민들... 이들의 입에는 '김영삼 개새끼' 라는 말이 입버릇처럼 붙어 있습니다. 처참한 모습의 부상자가 실려와도 '김영삼 개새끼', 절단기가 없으니 잠시 기다리라는 말을 들어도 '김영삼 개새끼', 경찰의 교통 통제 실패로 인해 견인차와 앰뷸런스가 멀리서 대기하고 있는 꼴을 보고도 '김영삼 개새끼'... 온통 개새끼입니다. 이분들 앞에 가서 '당신들은 대통령을 욕할 자격이 없다'고 한 번 떠들어 보시지요. 개개인의 의식 개혁은 꼭 필요합니다. 그 점에 있어서는 코코아님께 동의합니다. 그렇지만 과연 그것만으로 그만인가요? 우리가 철저한 책임감과 시민 의식만 갖고 있으면 재해 대책은 지금처럼 치졸해도 좋습니까? 한 사람 한 사람이 재해 예방에 만전을 기하는 자세만 되어 있다면 건축물 감리와 보전에 관한 현재의 말도 안 되는 구멍 투성이의 규정과 제도는 개선하지 않아도 됩니까? 안전제일의 의식과 생명 존중의 올바른 기업 윤리만 제대로 서 있다면 삼풍 사장과 관련 당국자들의 문책은 국민 화합의 차원에서 대충 넘어가도 괜찮은가요? 국민들이 알아서 잘들 움직여 준다면 경찰과 공무원들의 기강 해이와 무사 안일주의쯤은 극복할 수 있습니까? 현장 인부들만 안전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서 있다면 부실 공사를 부추기는 건설 하도급 제도의 모순은 '하면 된다' 식으로 극복됩니까? 개개인이 새롭게 각오를 다지는 것, 그리고 통치자가 책임을 지는 것, 둘다 똑같이 중요하고 똑같이 필요합니다. 김영삼은 정원식을 시장 만드는 데에만 골몰하여 성수대교 사건과 대구 폭발 참사 이후 국민들에게 약속했던 건조물 시공과 관리에 대한 제도 정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으며 재해 대비를 위한 실속 있는(겉보기만의 개선이 아니라) 동원 체제를 구축하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직무유기이며 과실 치사죄입니다. 금요일 새벽 7시쯤 구조대원 중 한 명이 가벼운 찰과상을 입고 의료반을 찾았습니다. 떨어지는 콘크리트 조각에 맞아 관자놀이쯤에 피가 스며나오고 있었지요. 얼굴에 거즈를 대고 현장에서 한 발 물러나 앉아 제가 권한 담배를 피우며 그 분은 무엇이 그리도 분한지 계속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개새끼, 맨날 죽어나는 건 우리같은 쫄따구들이야..." 그러나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분은 다시 헬멧을 고쳐 쓰시고 일어섰습니다. 그 분은 과연 김영삼이를 개새끼라고 부를 '자격'이 없는 것일까요? ----------- Prometheus, the daring and enduri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