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LONE (언덕에서~) 날 짜 (Date): 1995년04월08일(토) 22시49분25초 KST 제 목(Title): 김석원씨의 정치 참여에 대해. 쌍용 회장 김석원씨가 민자당에 입당, 달성-고령지구 지구당 위원장을 맡게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현대의 정주영씨가 국민당을 만들고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었을 때 '정경유착'이라며 그렇게 비난하던 민자당이 정세가 불리해지자 또다른 재벌 회장을 영입한 것이다. 각 신문들의 논조를 알아보았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예상대로, 한겨레신문이 가장 신랄했고, 조선일보가 가장 미온적이었지만) 각 신문의 사설은 전부, 민자당의 조령모개식 처사를 비판하고 있었다. 물론, 결론은 뻔하다. 대기업 집단의 소유주가 여당에 가입하여 정치를 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이야기다. 감정 이전에, 평이한 '이해관계 상충' (Conflicts of Interests) 논리로도 쉽게 결론이 난다. 김석원씨는 이렇게 말할지도 모른다. 선친인 고 김성곤씨 (SK란 애칭으로 유명했던)도 정치와 기업경영(당시는 '금성방직'이란 이름이었음)을 같이 하지 않았느냐고. 실제로, 김석원씨가 정치에 뛰어들겠다는 결심을 한 것도 아버지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과연 그는 아버지의 정치 경험을 냉정하게 분석했던 것이었을까. 여기서 제3공화국 시절, 김성곤씨의 정치 경력을 한 번 뒤돌아보자. 5.16 군사 쿠데타로 정권을 잡은, 박정희씨를 주축으로 한 군부 세력은 정권의 하부구조 확립을 위해 일부 재력가들과 구 정치인들을 포섭하게 된다. 박정희씨는 공화당 내의 양대세력인 군출신 인맥과 이 '민간인' 인맥을 조정하면서 절대권력을 구축하게 되고, 그 와중에서 등장한 '민간인'들이 바로 소위 '4인체제'인 김성곤, 김진만, 길재호, 백남억 제씨들이었다. (김진만씨는 현재 동부그룹 회장인 김준기씨의 부친이다) 박정희씨는 3선개헌으로 김종필씨 세력을 제거하면서 바로 이 '4인체제' 를 활용하지만, 곧바로 4인체제를 제거하고 영구집권 계획인 유신체제로 달려가게 된다. 정치에 환멸을 느낀 김성곤씨는 기업경영에만 전력하게 되고, 실제로 '쌍용'이 오늘날의 '재벌'의 위치를 굳힌 것은 그가 정치에서 손을 뗀 1970년대였다. 생각해 보면 재미있기까지 하다. 고 김성곤씨와 정치적 라이벌 관계에 있었던 김종필씨는 그 후 20여년간의 정치유전을 거쳐 현재 '자민련'을 구성, 김영삼씨와 다시 적대관계로 들어섰고, 김영삼씨는 김성곤씨의 아들인 김석원씨를 정치판에 불러들여 김종필씨와 대적하게 만들어 놓았다. 김석원씨가 정치에 뛰어든 것도 분명 선친과 김종필씨의 이상한 인연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김석원씨는 선친의 '교훈'을 잊은 것일까? 김성곤씨는 결국 박정희씨에게 이용만 당하고 물러났고, 실제로 기업의 확장도 그가 정치에서 손을 뗀 이후에 더 활발했던 것인데... 이런저런 생각을 해 보니 참 허탈하기까지 하다. 3공화국 시절의 악연까지 상기시켜 재벌 회장을 다시 정치에 뛰어들게 만드는 것, 이것이 신한국인가? 1993년 초, 김영삼씨가 한창 '개혁'의 기치를 높이 들 때는 나도 혹시나 했지만 역시 한국 정치는 어쩔 수가 없는 것인가? 한때 모든 신문에 연재되었던 3공 시절의 '정치 비화'를 다시 떠올릴수밖에 없는 내 기분은 지금 너무나 우울하다. 결론은 간단할 수도 있다. 달성-고령의 유권자들이 내년에 김석원씨를 낙선시키면 되니까. 그런데, 그렇다면, 현 국회의원인 구자춘씨는 과연 국회의원으로써의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역시 정치란 건 어렵다는 걸 새삼 느낀다. 하지만... 어쨌든 한국 제 6위의 재벌 주인인 김석원씨가 정치에 참여하면 안 된다. 이것은 '원칙'이다. 이탈리아의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도 결국 6개월을 못 버티고 물러났지 않는가. 어쨌든, 김석원씨의 영입은 작년 이회창 총리 해임 이후 김영삼씨의 가장 큰 정치적 실수가 아닌가. 싶다. 그리고... 혹시, 이렇게 되면 삼성이 쌍용자동차를 매입하는 일이 벌어지지나 않을까. 한 번 '억측'을 해 본다. (3공화국 시절의 정치상황, 그리고 특히 '쌍용은 김성곤씨가 정치에서 물러난 뒤인 1970년대에 재벌의 위치를 굳혔다'는 제 언급은 논란의 소지가 있음을 밝힙니다. 1960년대의 '금성방직'도 10대 재벌 소리를 들었고, 거기에는 분명히 주인이 여당 중진이라는 요소도 작용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당시의 '금성방직 재벌'이 오늘날의 '쌍용 재벌'로 성공적으로 바뀐 것은 1970년대이고, 이 과정에는 상대적으로 정치적 요소가 덜 개입되었던 것으로 판단됩니다.) Running over the same old ground, | 봄을 기다리는 언덕에서.... What have we found? | With my best wishes, The same old fears. | From Spring Hill. Wish you were here. | soh@husc.harvard.edu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