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eyedee (Hur, D.H.) 날 짜 (Date): 1994년11월14일(월) 02시13분56초 KST 제 목(Title): 박정희의 이력서 2 1967 제6대 대통령에 당선 1967 국회의원 선거에서 3.15를 능가하는 대대적 부정선거를 감행 : 국정안정(?)을 위해 국회의석 과반수면 족하지만 3선개헌을 염두에 두고 무리하게 부정선거를 감행, 왜냐하면 3선을 위한 헌법개정을 위해선 국회의원 2/3 이상의 찬성이 필요 했으므로. 이로인해 야당이 등원을 거부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2/3이상을 유지하는 선에서 여당의원 약간명을 부정선거 혐의로 제명하고 사태를 무마 1969 (주로 김종필계인)여당내 반대파를 협박 3선개헌안을 통과시킴 1971 김대중에게 고전끝에 가까스로 제 7대 대통령에 당선 : 이 경험으로 선거를 하지않고 종신집권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함 대대적인 부정으로 간신히 당선( 경찰관등이 양심선언을 통해 폭로하기도 했음) 유세중에 위기를 느낀 측근들이 이번이이 마지막임을 선언해야 한다고 권유하자 장충단공원 유세중 "이번이 국민 여러분에게 마지막으로 표를 부탁하는것" 이라고 말함. 이 약속은 결국 유신으로 대통령 선거제도를 없애 지켜졌는데 약속 당시의 정황으로 보면 3선이 마지막이라는 의미이므로 또 다시 국민을 상대로 거짓말을 한 것임 1972 유신 친위 쿠데타 단행 :당시 헌법상에 대통령에게 부여된 권한을 넘어 국회를 해산하고 비상계엄을 선포, 국민투표를 통해 유신헌법을 반대논의를 금한채 통과시킴 (3 공화국 헌법에 의하면 국회에서만 개헌을 할 수 있었음) 조치내용의 폭압성을 놔두고라도 당시 박정희에게는 이런 조치를 취할 아무런 권한도 없었고 전쟁에 준하는 아무런 절박한 상황도 없었으므로 이는 박정희가 일으킨 두번째 쿠데타 임 :급변하는 국제정세 및 통일에 대처하기 위해 유신(자칭 한국적 민주주의)이 필요하다고 강변. 본인은 왜 국제 정세 및 통일에 대처하기 위해 국시(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헌법일조 ?) 를 부정하고 절대왕정체제 ( 박지만으로의 권력승계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만 빼고는 유신체제는 절대왕정과 다름 없었음)를 도입할 필요가 있었는지 도저히 이해가 안됨 1972 12 친여 유지들로 구성된 통일 주체국민 회의에 단독으로 출마 단 한표의 반대도 없이 대통령으로 당선됨 : 이름을 잘못 표기 했다든지 해서 무효표를 던진 무지한 통대의원들은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를 당함 1972 유신 승인을 거부한 김상현 최형우등 일부 정치인들을 끌고가 고문하고 그중 일부는 구속시킴 1974 긴급조치를 발효 유신비판의견을 개진하는 사람은 영장없이 체포 구속하여 징역에 처할수 있게 함 1974-75 정부에 비판적인 동아일보에 기업광고를 금지시킴 . 이에 쫄은 동아일보 사주와 경영진은 깡패를 동원 비판적인 기자를 몰아 내고 해직 시킴. 조선일보 방우영도 덩달아 자사의 비판적인 기자들을 몰아냄. 1974-75 육여사 사망후 주색에 빠져 한달에 3-4 차례씩 경호실과 중앙정보부에서 동원한 여자들 ( 주로 연예인) 을 겁탈함 :개인의 사생활은 거론할 필요가 없으나 이경우는 권력을 이용한 rape 의 성격이 짓기 때문에 짚고 넘어가야함 채홍사역할을 한 박선홍( 당시 중정의전과장)은 한때 연예인 사진이 있는 달력을 넘기면서 이중에 안가(박정희가 주색을 탐한 장소)를 안거쳐간 여자가 없다 라는 말을 하였다고 함 (동아일보 기자인 김충남의 글에 의함 ) 1978 다시 통대에서 반대없이 대통령에 당선됨] 1979.10 부산과 마산에서 민주화 요구 시위가 일어나자 공수부대를 보내 곤봉으로 시민들을 폭행 시위를 진압 : 한국 사람은 때리면 되는구나 라는 잘못된 교훈을 전두환 노태우에게 줌 1979.10.26 안가에서 여가수와 모델을 불러 술을 마시면서 민주화 운동을 탄압할 궁리를 하다 김재규의 총을 맞고 사망 1979.10.27 이날 아침 박정희의 사망소식을 들은 당시 고등학생이었던 필자는 몹시 기뻐하고 민주화의 기대를 가짐 1979.10.27- 1980초 유신만이 살길이다라고 외치던 높은 사람들이 갑자기 입장을 바꾸고 민주회복은 국민적 합의다 어쩌고 저쩌고 함. 1980.5.17 박정희가 아끼던 정치군인( 전두환은 청와대 경호실 근무를 하기도 했고 전.노는 5.16 직후 학생신분인 육사 후배들을 꼬드겨 쿠데타 지지 시위를 하게했음)들이 쿠데타를 일으켜 민주회복의 기대를 짓밟고 국민을 학살함 : 즉 박정희는 죽어서도 그 후계자들을 통해 조국의 민주발전을 가로막는 결과를 낳음 P.S. 박정희의 유일한 공적으로 경제발전을 거론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 부분에 대해서 시간이 있으면 다음에 제 의견을 소개하겠읍니다. 자본주의 또는 시장경제는 왜 다른 경제체제에 비해 성장면에서 우월한지 어떤 나라는 왜 자본주의체제를 갖고 있으면서도 낙후되어 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읍니다 정치발전과 경제발전은 대립관계인지 보완관계인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