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워싱턴사과) 날 짜 (Date): 1999년 1월 10일 일요일 오후 05시 25분 50초 제 목(Title): 한국/ 박정희 논쟁쟁점 5가지 [박정희 신드롬] '경제발전' '독재' 양극을 달린다 01/06(수) 14:50 박정희와 그 시대에 대한 평가는 극과 극으로 엇갈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문제가 되는 부분이 ‘한강의 기적’으로 일컬어지는 경제발전과, 인권탄압과 민주주의 말살로 대표되는 독재의 문제다. 맨 오른쪽 입장부터 차례로 정리하면 ‘독재는 경제발전을 위해 불가피했다’에서부터 ‘경제발전은 잘했지만 독재는 잘못했다’, ‘경제발전도 너무 많은 희생을 전제로 한 것이었고 독재도 발전을 위한 것이 아니라 정권 유지를 위한 것이었다’ 등등 다양한 스펙트럼이 나온다. 박정희(시대) 평가에 중요한 쟁점 5가지를 한국정치연구회가 펴낸 ‘박정희 를 넘어서’에 다루어진 부분을 중심으로 주장(고딕체 부분)과 그에 대한 반론 식으로 정리해본다. 1. 박정권의 독재는 경제성장을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박정희 개발독재론은 한국의 고도성장이 개발을 위한 독재의 결과라는 인과적 가설과 이같은 고도성장이 그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바람직한 선택이었다는 가치론적 가설로 이루어진다. 그러나 라틴아메리카의 ‘개발독재’ 경험 사례를 참고할 때 한국의 경제성장은 순조로운 자본주의 발전을 가능케 한 토지개혁, 유교 전통에 따른 높은 교육열이 제공하는 양질의 저임금 노동력, 장면 정권때 미리 준비된 경제개발 계획 등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결과이다. 개발독재는 백번 양보해도 경제성장의 여러 복합적 원인중 하나에 불과하다. 쿠데타와 집권연장을 위한 명분으로 경제개발을 내세웠다는 점은 명백하다. 특히 유신체제는 경제발전 심화와는 무관한 종신집권 야욕에 의한 것이다. 2. 성장제일주의는 올바른 목표였다. 박정권의 경제제일주의는 GNP와 수출액으로 대표되는 외연적 성장제일주의이다. 이러한 성장제일주의는 생산력 발전을 위해서는 다른 모든 것을 희생시켜도 좋고 과정보다는 결과만이 중요하다는 ‘군사주의’의 확산을 가져왔다. 또 목표달성을 위한 손쉬운 방법으로 재벌에 의존하는 결과를 가져와 중소기업의 육성이나 산업지역간 유기적 연관을 통한 경제적 하부토대의 구축과 유연성 확보에는 실패했다. 70년대 후반 들어 이미 중화학 투자 중복과잉이 문제가 돼 안정정책으로 일부 선회하게 되는 데서 보듯이 이러한 시스템은 한국경제가 IMF 체제를 맞는 데 본질적인 기여를 하게 된다. 3. 박정권이 등장하는 1960년대초 한국 사회는 민주주의 보다는 권위주의에 극히 우호적인 상황이었다. 당시 여건상 민주주의가 어려웠다는 주장은 60∼70년대 한국 사회상황이나 민주주의 조건에 대한 엄밀한 검토를 거치지 않은 가설이다. 만일 그렇다면 헌법 전문에 명시된 4·19혁명 정신의 계승부분은 고쳐야 한다. 민주주의와 경제발전을 동시에 요구한 4·19는 한국의 발전단계와 시대사적 과제를 간과한 때 이른 집단행동일 것이기 때문이다. 반유신투쟁을 선도한 김영삼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도 지난날을 반성하고 자숙해야 할 것이다. 박정희는 이승만보다 산업화뿐 아니라 민주화를 추진할 수 있는 더 나은 여건에 있었다. 당시 상황은 권위주의 등장에 유리한 요인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 진전에 고무적인 사회적 조건들이 성장하고 있었다. 4. 박정희 시대에 이룩한 산업화야말로 오늘날 민주화의 원동력이다. 이런 주장은 성공적인 산업화의 어떤 결과가 민주화를 진전시키는 데 어떻게 기여했는지 명시하지 않는다. 한국 민주화의 가능성을 개척한 것은 정치적 참여로부터 배제되고 경제적 분배로부터 소외된 민중이었다. 이들은 권력 획득의 가능성을 영원히 박탈당한 야당과 저항연합을 구축, 유신 붕괴와 이후 정치개방을 가져온 민주화의 원동력이 됐다. 5. IMF 위기는 박정희가 이룩한 업적을 하루 아침에 망쳐버린 김영삼 정권 때문이다. 전두환 정권은 박정희 신화 만들기에 두 가지 큰 기여를 했다. 첫째 집권 과정에서 광주 문제로 박정희의 비교우위를 극대화시켰다. 그 결과 철권을 휘둘 렀던 박정희가 숨쉴 여지를 주었던 소박하고 자애로운 인물로 격상됐다. 또 전 70년대말 경제위기를 원만하게 뒤처리해 90년대까지 성장이 이어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오늘날의 경제발전의 기원을 박정희 체제에서 구하도록 만들었다. IMF 위기의 원인이 박정권 때 시작돼 40년 가까이 계속된 한국형 성장모델 때문이라는 것은 학계의 정설이다.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 조갑제(54) 월간조선 편집장이 신문에 연재중인 시리즈물을 엮어 낸 일종의 박정희 전기. 지금까지 3권이 나왔다. 박정희 어록에서 따온 제목이나 ‘근대화 혁명가 박정희의 비장한 생애’라는 부제처럼 도전적인 박정희 복원을 시도한다. 필자가 이 책을 쓰기 위해 발로 뛰며 발굴한 박정희 육필 일기 등 각종 일차자료는 박정희 연구자들에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그의 박정희 복원 작업이 사회과학적 분석을 거치지 않고 일방적인 시각으로 ‘미화’에 빠지고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1권에 실린 머리글 ‘한 소박한 초인(超人)의 생애’는 필자의 시각을 분명히 보여준다. 그중 한 구절. “박정희는 인권 탄압자가 아니라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획기적으로 인권 신장에 기여한 사람이다. 인권 개념 가운데 적어도 50%는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일 것이고, 박정희는 이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다음 단계인 정신적 인권 신장으로 갈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박정희는 1급 사상가였다. 그는 한국 지식인들이 갖지 못한 것을 두 가지 갖고 있었다. 전쟁과 군대, 그리고 전략에 대한 안목과 자주 정신… 전두환 대통령이 퇴임한 88년에 군사정권 시대는 끝났고 그 뒤에 우리 사회는 다시 상무(尙武), 자주 정신의 불씨를 꺼버리고 조선조의 문약성으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 복고풍이 견제되지 않으면…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세 대통령의 영도 하에서 1류 국가의 문턱까지 갔던 우리나라는 원래의 우리 수준, 즉 3류 국가로 전락할 것이다… IMF 관리체제는 88년부터 시작된 민주화 10년의 비싼 대가였다는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네 무덤에 침을 뱉으마 독일 베를린자유대 철학과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진중권(36)씨가 조갑제씨의 책 제목을 패러디해 낸 박정희 신드롬 비판서다. 박정희 되살리기를 추구하는 모든 시도를 극우 전체주의인 파시즘으로 규정하며 통렬한 야유와 비난을 퍼붓는다. 그러면서도 비판대상자들의 언급 하나하나를 독일 나치나 일본 제국주의 파시스트들의 주장과 1대1로 대비시켜 가면서 그 사상적 친근성 내지 동일성을 유감없이 폭로한다. 진씨는 “다 낡아빠진 극우 파시스트들이 멍청한 얘기를 해대는 것까지는 좋은데 언론매체를 타고 지나치게 영향력을 확대하는 것 같아 쐐기를 박기 위해 책을 썼다”고 말한다. 그는 전화인터뷰에서 ‘비난’ 대상으로 삼은 인사들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조갑제 월간조선 편집장과 소설가 이인화씨는 정확히 파시스트입니다. 두 분 다 아직 독일 나치 이론까지 접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조씨는 박정희에게 영향을 준 일본 전전(戰前) 우익의 냄새가 납니다. 반면 이씨는 상당히 미학적인 경향을 띱니다. 특히 문학적 낭만주의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우익총단결을 외치며 할복자살한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 류의 전후 일본 신우익쪽 서적을 접한 듯 합니다. 두 사람 다 체계적으로 우익 이론서를 연구했다기 보다 자신의 입맛에 맞는 부분만 골라 채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반면에 소설가 이문열씨는 보수적인 가부장제를 맹신하는 지나친 보수주의자 정도인 것 같습니다. 박홍 신부도 그저 지나친 반공주의자 정도로 봐야지요.” 언어분석철학자 비트겐슈타인 연구로 학위논문을 쓰고 있는 진씨는 “앞으로 박정희 신드롬의 토대가 되는 파시즘을 정리하기 위해 일본 우익 이데올로기 연구서를 써볼까 한다”고 장래계획을 밝혔다. ------------------------------------------------------------------------------- - (C) COPYRIGHT 1998 THE HANKOOKILBO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