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요키에로타) 날 짜 (Date): 1998년 10월 24일 토요일 오전 09시 56분 22초 제 목(Title): 한21/68은 오월, 98은 10월 68년은 5월, 98년은 10월” 30년 전통의 프랑스 고등학생운동, 교육개혁 아우성의 현장 (사진/10월15일 나시옹 광장에 몰려든 고등학생들. 2만5천여명이 교육부 건물을 향해 행진하며 ‘교사충원’ 등을 요구했다.) 박살났다. 전화박스 유리창은 산산히 깨어졌다. 슈퍼마켓과 카페, 약국도 셔터를 내렸지만 소용없었다. 일부 시위대는 내부로 들어가 물건을 털기도 했다. 주변에 있던 10여대의 자동차는 뒤집어진 채 활활 불타올랐다. 지난 10월15일 오후. 가는 빗줄기가 흐느적거리던 파리의 전역은 그렇게 소란스러웠다. 이날 시위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고등학생. 지난 10월12일부터 교육개혁을 요구하며 간헐적인 시위를 벌였던 이들은 이날을 ‘행동의 날’로 이름짓고 본격적인 집단행동에 나선 것이다. 고등학생들과 조스팽의 악연 그러나 연도에 나와 구경하는 시민들의 반응은 의외로 담담했다. “저거요? 고등학생들이 저럴 리 없어요. 틀림없이 시위대에 끼어든 불량배 짓일 겁니다.” 파리 나시옹 전철역에서 만난 두바이(50)는 학생들을 옹호했다. “이번 시위의 깊은 원인을 따져봐야 한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그들이 사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상실감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실제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열댓명씩 몰려다니는 일부 패거리였다. 대부분의 고등학생들은 이들에게 야유를 퍼부었다. (사진/일부 시위대에 의해 100여대의 자동차가 전복되거나 전소했다. 고등학생들은 이들에게 평화적인 시위를 하자며 야유를 보냈다.) 프랑스 전역에서 열린 이날 시위엔 50여만명(경찰추산)의 전국 고등학생들이 참가했다. 파리 동북지역 나시옹 광장에서 열린 집회엔 2만8천여명이 참여한 것으로 집계됐다. 정오부터 속속 모여들기 시작한 학생들은 30분도 채 안 돼 드넓은 광장을 메웠다. 12시30분이 되자 광장으로 통하는 10여개의 길을 경찰이 통제했다. 진압을 위해서라기보다는 통제불능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광장에 모인 수만명의 학생들은 요구사항을 외치며 수십명씩 떼를 지어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전체를 총괄하는 지도부는 없어보였다. 파리의 라 퐁텐 고등학교에서 왔다는 흐노(17)는 “교사와 학교설비가 너무 부족하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자크 프레베르 고등학교의 소피(18)는 자기 학교의 실태를 이렇게 설명했다. “한반에 36명입니다. 외국어 수업 땐 앉을 자리가 없는 친구도 있어요. 선생님들도 우리와 생각이 똑같아요.” 8년 전 고등학생 시위에 참여했다는 질다스(28)는 후배들의 시위를 적극 변호했다. “정상적인 수준이라면 한반에 25명 이하가 돼야 합니다. 몇년 전부터 고교생들의 요구가 있었지만 정부로부터 외면당했어요. 그 불만이 이제 다시 폭발한 겁니다.” 오후 2시가 가까워지면서 시위대는 예정된 목적지인 교육부 건물을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외치는 구호는 하나. “고등학생이 화났다. 중노동은 이제 그만!”(노예선의 노예들처럼 열악한 조건 속에서 공부한다는 것을 빗대 만든 구호) 시위대가 센강을 건너 당페르 호셰 광장에 접근하면서 다시 도로변에 세워진 몇대의 자동차가 불태워졌다. 인근 상가의 유리창도 파손됐다. 학생들은 거리에 어둠이 깔릴 무렵 수천명으로 줄어들었지만 교육부 건물이 있는 파리 서남쪽 방향으로의 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현재 프랑스 고등학생운동을 주도하는 것은 두개의 학생조직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 하나는 87년에 조직된 ‘민주독립고교생연맹’(FIDL). 이 조직은 ‘인종차별주의 SOS’라는 반인종차별주의 운동에 참여하고 있으며, 대학생 조직인 UNEF-ID와 사회당 좌파의 지원을 받고 있다. 또하나의 조직은 ‘고교생전국연합’(UNL). 주로 지방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사회주의운동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있는 게 특징이다. 고등학생들의 요구사항은 ‘민주독립고교생연맹’이 10월14일 확정한 4가지에 압축적으로 드러난다. 교사 및 안전요원 충원, 학급당 인원수 축소, 수업시간표 개선, 학교생활조건 개선이 그것이다. 프랑스의 고등학생들은 사실 8년 전에도 이와 똑같은 조건을 내걸고 한달 넘게 시위를 벌인 바 있다. 90년 10월 파리 근교 생드니에서 학교 내 폭력에 대한 항의로 촉발된 시위는 교육개혁의 슬로건으로 한단계 뛰어오르며 11월 초까지 계속됐다. 시위가 격화되자 정부와 교육부는 40억프랑의 고교교육예산 투입, 학급당 인원수 축소, 학교시설 개선, 고교생에 대한 사회보조 및 권리보장 등을 약속했다. 그러나 8년 뒤 학생들의 똑같은 주장이 되풀이되는 걸 보면 변한 게 별로 없는 모양이다. 아이로니컬한 것은 조스팽 현 총리가 당시 교육부 장관이었고, 현 교육부 장관인 클로드 알레그르는 그의 특별보좌역이었다는 사실이다. 86년엔 ‘80%졸업’내걸고 거리로 프랑스의 고등학생운동은 68년 5월로 거슬러올라간다. ‘68운동’으로 불리는 당시 대학생과 노동자, 반체제 지식인들의 항거에 고등학생들도 가세해 단단히 한몫을 한 것이다. 한국의 4·19 때처럼 말이다. 그리고 5년이 지난 73년 다시 고등학생들은 거리로 나선다. 21살 이후의 군 징집유예를 철폐하려는 입법안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86년엔 ‘80% 고교졸업’이란 구호를 내걸고 머리끈을 묶는다(사실상의 고교졸업장인, 대학입시자격을 주는 바칼로레아 통과율이 당시엔 32%였다. 현재는 60% 정도). 87년엔 고등교육비 부족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68년은 5월, 98년은 10월!” 한 학생이 높이 쳐든 피켓은 30년의 고등학생운동 역사를 상기시켜주고 있었다. 그 피켓 사이로 석양이 물들고, 도시가 온전히 어둠에 묻힐 즈음 시위는 끝났다. 시위대가 지나간 거리는 아수라장이었다. 경찰은 “5명이 부상하고 수십채의 각종 상점과 카페가 파손됐으며 100여대의 자동차가 전복되거나 전소됐다”고 피해상황을 발표했다. 사회당 정부는 시위가 격화되자 교사들을 새로 채용하겠다며 학생들의 요구를 일정부분 수용할 의사를 비치고 있다. 하지만 학생들은 20일 또한번의 대규모 전국시위 계획으로 화답했을 뿐이다. 고등학생 자식을 둔 프랑스 학부모들은 두달 가까이 질질 끌며 이어진 90년 10월의 고등학생 시위가 재연되지나 않을지 걱정하고 있다. 파리=김계환 통신원 kevin123@club-internet.fr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 "활쏘기는 군자의 덕성과 비슷한 바 가 있으니, 활을 쏘아 과녁을 벗어나더라도 오히려 그 이유 를 자기 몸에서 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