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artistry (화이트헤드) 날 짜 (Date): 1998년 8월 30일 일요일 오전 12시 50분 44초 제 목(Title): 김민웅/미국경제의 현실과 장래 김민웅의 세계통신⑩ 미국경제의 현실과 장래-공황은 오는가 미국의 패권적 오만이 세계공황 부른다 김민웅 재미 언론인·뉴저지 길벗교회 목사 ------------------------------------------------------------------------------- - 불안해지는 미국경제 미국 경기의 하강 추세까지 겹치는 가운데 세계 증시가 여러 차례 동반 하락하는 현상이 나타나면서 공황이 꾸준히 거론되고 있다. 세계 자본주의의 체제위기가 본격화돼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논란이다. 지난 8월4일에는 뉴욕 증시가 금년 들어 가장 큰 폭인 300포인트 하락했다. 다우존스 지수가 350포인트까지 하락할 경우 이른바 증시의 「회로차단기(circuit breaker)가 30분간 작동해서 모든 증시 거래를 잠정적으로 중단시켜야 하는 수준에 근접한 기록이었다. 전체적으로 보면 9000에서 1만포인트 대까지 치솟았던 다우존스 지수가 8월 초 현재 8500도 되지 않는 불안한 하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우려되는 것은 하강 추세도 추세지만, 그 낙폭의 정도가 심하다는 데에 있다. 이는 증시의 불안정성이 극단화될 수 있는 환경으로 가고 있다는 뜻이다. 이번 폭락은 3일간 폭락사태가 계속되는 과정에 일어났다는 점에서도 주목되고 있다. 이는 지난해 10월27일 단 하루만에 550포인트 하락했던 경험을 상기시키고 있어서 금년 하반기, 즉 9월이나 10월이 되면 그때와 유사한 상황이 반복되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이 날보다 보름 앞선 7월17일에 다우존스 지수가 약 9400 수준이었던 것과 비교해보면 2주일 만에 무려 1000포인트 가까운 폭락이다. 미국경제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좋게 보면 이런 현상은 그동안 이상과열됐던 증시의 자율적 냉각이라는 점에서 긍정적 측면이 있는 반면에, 그 냉각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미국경제의 대응력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는가 하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투기자본의 거품이 빠져나가면서 미국 경제의 불황 가능성이 뚜렷해질 것이라는 논의는 그간 계속돼왔으나, 그 현실이 이제 좀 더 구체적으로 드러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애초에는 아시아 경제위기가 미국 경제에 큰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고 보았지만, 하반기로 갈수록 그 여파의 심각성이 감지되고 있고 미국 기업들의 수익률이 떨어지는 추세가 나타나면서 증시 투자에 위험 부담이 높아지고 있다는 투자자들의 인식이 강해지고 있다. 알랜 그리스펀의 「인플레 억제 발언」에 담긴 뜻 국제적으로는 일본의 엔화 하락과 일본 증시의 동요까지 겹쳐서 뉴욕 증시의 조속한 회복 가능성에 대한 신뢰감이 흔들리고 있다. 아시아의 경우 홍콩의 항생지수도 뉴욕 증시의 폭락 직전에 이미 5% 가량 떨어졌고, 중국 위안화의 평가절하 가능성도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판국이라 증시 폭락에 따른 국제 금융시장의 교란 위기가 닥쳐올 수 있다는 점이 주목되고 있다. 세계경제 전반에 걸친 체제모순이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사태 앞에서 미국 공화당은 국제 자유무역체제를 강화함으로써 미국 시장의 확대에 좀 더 박차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그런 방식에만 의존할 경우 보호주의적 반발이 확산된다는 점에서 우선 내부적으로 연방중앙은행이 금융정책에서 유연성을 발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와 같은 미국 정계 내부의 논의는 미국 자본주의가 서서히 세계 대공황의 가능성에 대비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이와 같은 미국 내의 움직임은 쇠고기 시장과 관련한 갈등이나 영화산업의 쿼터제 논란 등에서 보듯이 미국으로부터 압박이 더욱 거세지는 동시에, 미국 금융시장에만 매달려서 문제를 풀려는 김대중 정부의 외자도입 위주 정책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예고하는 것이다. 자체적인 산업자본의 보호와 이에 대한 적절한 지원 없이는 강대국조차도 남의 사정을 봐주기가 어려워질 세계적인 불황이 올 때,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여지가 사라지리라는 게 분명해지고 있다. 내부 자본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는 치밀한 산업전략이 중심이 되고, 이에 기초한 금융정책을 세우지 않는다면 증시의 불안정성을 감당할 수 없는 상태가 되어 또 다시 무서운 충격에 휩싸일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난 번 외채협상에서도 똑똑히 보았지만, 위기 국면이 닥치면 미국 등 서방자본은 자신들도 부담해야 할 문제를 다른 약한 나라들에 전가할 방도를 찾는 일에 골몰한다. 미국 경제가 불투명한 터널 속으로 들어갈 가능성이 높아지는 이즈음 그런 방식에 또 다시 희생당하지 않도록 정책 전반의 본질적인 검토와 논의가 절실하다고 하겠다. 미국 증시의 불안정한 요동 현상은 최근 들어 부쩍 빈번해지고 있다. 바로 얼마 전만 해도 미국의 연방중앙은행 총재 알랜 그리스펀은 『아시아 경제위기의 여파에도 불구하고 미국 경기는 성장세에 있으며, 인플레 조짐에 대한 대응책을 강구해나갈 것』이라고까지 말했을 정도였다. 이것은 곧 경기를 냉각시키기 위해서 이자율을 올리는 조치를 예상할 수 있는 발언으로, 이후 뉴욕 증시는 빠르게 하락세를 보였다. 알랜 그리스펀의 발언은 미국경기가 팽창하고 고용이 지속적으로 증대되면서 이른바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떨어지고 있으므로 이를 시정하겠다는 논지로 압축된다. 여기서 「유연성」이라는 말은, 사실 실업자들이 좀 있어줘야 노동시장의 가격을 사용자측 입장에서 조절할 여지가 생긴다는 의미다. 다시 말해, 이자율 인상으로 경기를 다소간 위축시키면서 인플레를 막고, 경기위축에 따른 실업률 증가를 감수하고라도 노동가격을 통제하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또 경기가 과열 팽창할 경우, 그 후 시장의 포화상태로 인한 이윤율 하락과 불황대비책이라는 의미를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알랜 그리스펀의 발언은 일차적으로 그 공략대상을 이자율 압박에 의한 자금 긴축과 그에 따른 기업들의 고용조정 과정에 나타나는 실업 발생으로 노동가격을 통제하는 동시에, 인플레를 저지함으로써 금융자본의 이익을 도모하겠다는 것임에 주목해야 한다. 인플레가 발생하면 봉급 생활자가 직접적인 영향을 받지만, 그보다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돈 가치의 하락을 두려워하는 금융자본이기 때문이다. 알랜 그리스펀이 통화주의자라는 점은 이러한 그의 정책기조를 설명해주는 배경이기도 하다. 이와 같은 정책에서는 이윤을 찾아 증시와 외환시장, 은행 등 사방으로 투자 현장을 신속하게 이동시킬 수 있는 금융자본에 비해서, 그럴 수 없는 노동자들이 매우 불리하다. 따라서 이것은 미국경제 내부의 계급갈등을 격화시킬 수 있는 요건이자, 장기적으로는 실물경제의 기반과 수요시장의 확대재생산에 부정적인 역할을 할 자충수가 된다. 갈수록 증폭되는 「카지노 자본주의」 양상 그런데 이렇게 「미국 경기의 거품론」까지 제기되던 상황에 인위적인 냉각정책을 구사하기도 전에 사태는 전격적인 변화의 지점을 넘어서고 있다. 실물경제의 위기를 심화시키면서 금융시장이 흔들리는 경기하강의 충격을 감당해내야 하는 현실이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증시활황과 경기상승이란, 종국에는 실물경제의 제약을 받게 마련이다. 금융시장이 갖는 상대적 독자성 내지는 압도적인 지배력의 한계는 결국 실물경제가 건강한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미국의 무역적자가 지난 5월 이후 매달 160억달러 가까이 발생하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증시 활황의 한계가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 신호임을 염두에 둬야 한다』고 언급했다. 이 신문은 또 카지노판처럼 산지사방에서 투기를 벌이고 있는 미국 금융시장이 이러한 외부 요소에 민감하게 영향받게 된다는 점을 환기시켰다. 다시 말해서 미국 경제는 지금 실물경제의 실질적인 성장은 오히려 타격을 받고 있는데도, 아시아 위기로 판돈을 걸 데가 없어진 돈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 판돈을 키우고 있는, 날이 갈수록 카지노 도박장처럼 돼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카지노 자본주의」라는 양상이 세계화되고 있지만, 지금처럼 아시아 경제위기가 심각한 상황에 세계경제가 실물경제의 복구에 노력하기보다는 도박판이 커지는 추세에만 의존한다면, 이 판이 깨질 경우 이미 취약해진 실물경제가 엄청난 충격을 받게 된다는 점에서 이는 결코 간단치 않은 문제라고 하겠다. 실물경제의 성장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않은 채 카지노판의 생리대로 가게 된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현재 고평가돼 있는 증시와 실물경제에 기초한 현실적인 이윤 사이에 거리가 벌어지면서, 어느 날 이 간격이 거품으로 판정돼 경제 전반이 지각변동을 일으키며 붕괴될 가능성이 있다. 금융시장의 카지노성이 심화되면 될수록 이런 경향은 더욱 분명해질 것이고, 그런 과정에 투기로 조장된 거품이 경제 전반에 걸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것이다. 이런 전망은 시간이 흐르면서 대체로 올바른 관찰로 판명되고 있다. 투기적 금융자본의 불안정한 생리에 좌우되는 미국경제가 투기 공세로 잠시 이득을 취한 것처럼 보이지만, 금융자본의 성장을 긍극적으로 보장해주는 실물경제 기반을 파괴시킴으로써 자해적 궁지에 다다르고 있다는 것이다. 아시아의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상황에 미국이 직면하게 될 현실이 이러할진데, 최근 국내 외환시장에서 실수요 증명을 하지 않고도 외환거래를 할 수 있도록 해 투기 목적의 외환거래가 가능하게 한 것은 매우 우려되는 일이다. 그렇지 않아도 투기 자본에 그만큼 당했고 미국조차 작은 변동에도 민감하게 요동치는 금융시장의 불안정성 때문에 위기관리 능력에 타격을 입고 있는데, 또 다시 그런 여지를 확대하는 정책을 선택한다는 것은 한국 경제에 또 하나의 심각한 문제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경제를 압박하는 요인과 아시아경제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아시아의 위기가 결국은 미국의 실물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리라는 것은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다. 그래서 미국 철강산업은 이미 일본과 한국산 철강에 대한 덤핑 판정을 통해서 자국산 제품에 대한 보호주의 장막을 치고 있는 데, 이것은 국제 경쟁을 격화시키면서 증시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게 된다. 왜냐하면 가격경쟁은 결국 이윤율 하락을 가져오고, 그것은 증시의 실물경제적 기초를 취약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증시 자체의 과열현상은 과도한 투기 바람을 반영하고 있는데, 미국의 경우 일반 대중이 증시에 투자하는 비중과 규모 또한 커지고 있다. 따라서 증시가 일단 충격을 받게 되면 그 파장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는 너무나도 분명하다. 증시 투자에 의존하는 대중경제의 본질적인 취약성이 한꺼번에 드러나게 된다는 것이다. 큰 맥락에서 보면, 현재 IMF를 제외하고는 국제적 금융위기에 대한 특별한 대응장치가 존재하지 않으며, 금융위기에 대한 국제적 협조체제나 그 부담을 합리적으로 분담하는 방식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그러니 금융시장에 다소라도 위기 조짐이 보이면 참여 주체들이 패닉 상태에 빠지게 되고, 그것은 순식간에 복합 반응을 일으켜 국제적으로 여러 곳에서 상당한 낭패를 볼 수도 있다. 금융자본이 실물경제의 능력에 비해서 과도하게 집중되면 당연히 그 자본은 투기성을 지닐 수밖에 없게 되고, 그 투기의 목적이 어느 정도 실현되고 더 이상의 이윤확보가 한계에 이르면 그 자본의 집단적인 퇴장은 당연한 순서다. 그 퇴장이 가져올 충격을 미국경제가 과연 충분히 소화해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미국 금융시장의 규모가 그런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고 보는 낙관론도 있지만, 그것은 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순환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치밀하게 주목하지 않은 견해라고 반박하는 의견도 있다. 결국 미국의 현실은 실물경제의 기초가 없는 금융시장 확대가 가져올 구조적 한계와 모순을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다. 내부적으로는 GM 파업의 여파, 즉 자동차산업 가동률 30% 감축에 따른 생산성 하락이 끼치는 영향을 비롯해서, 아시아 시장의 불황이 가하는 압박이 미국 경제를 사방에서 조여가고 있는 것은 미국 경제의 카지노적 성격과 겹쳐서 사태 해결을 점점 어렵게 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현 단계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비판적인 이해가 전제되지 않을 경우, 그 해결책은 갈수록 사태를 꼬이게 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다. 월스트리트·미 재무부·IMF의 삼각복합체 그런 점에서 미국 경제가 지니고 있는 본질적 성격과 아시아 경제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지난 호에도 잠깐 언급했던 브라운 대학의 로버트 웨이드 교수가 최근 「뉴 레프트 리뷰」(228/1998)에 발표한 「아시아의 위기 : 고부채모델 월가·재무부·IMF 복합체」라는 논문을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 로버트 웨이드는 1990년에 프린스턴 대학이 출간한 『시장과 정치』라는 저서에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신흥 공업국가들의 정치·경제적 특징에 대해서 전문적인 업적을 내놓은 학자다. 그는 아시아의 위기가 아시아 자체에서 초래된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사태의 올바른 인식에 심각한 오류를 가져온다고 전제하면서, 아시아가 그간 발전경로로 잡아온 「국가의 시장 개입과 육성」에는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시장에 대한 국가의 개입과 조절기능을 폐기하는 것은 아시아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자해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아시아의 경제위기는 기본적으로 서방 금융자본이 과잉 투자와 과잉 대출의 위험성을 충분히 알면서도 이윤극대화를 위해 이 지역에 과도하게 돈을 뿌렸고, 이 돈에 대한 의존도가 엄청나게 높아진 아시아 국가들이 과잉생산으로 시장포화 상태를 자초했으며, 결국 경쟁 격화와 가격 인하에 따른 이윤율 하락으로 나타났다. 이후 서방 금융자본이 급속하게 빠져나가면서 강도높은 자금 압박을 가한 것이 사태를 심각하게 악화시켰다고 분석한다. 이런 상황에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들은 국가의 부채가 아니라 사기업의 부채라는 점에서 모라토리움 선언을 통해 채권자측을 압박해나갈 수 있었으나, 그러기는커녕 온갖 무리한 요구를 다 들어주는 식으로 사태에 대처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시아 국가들은 이제라도 외채국들간에 카르텔을 형성해 서방 금융자본이나 IMF와 집단적인 협상을 벌여나가야 한다고 웨이드 교수는 주장했다. 그는 미국에서조차 은행들이 파산해서 경제에 부담과 파행을 가져오지 않도록 정부가 적극적인 회생정책을 구사하는 판에, 미국이 한국 등의 나라에는 그런 압박을 가해서 금융·실물경제 일체를 파국으로 몰아넣고 한국 경제의 주도권을 외국 자본의 손아귀에 넘기게끔 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판했다. 한국은 자신의 경제적 주도권을 미국 등 서방 금융자본에 내주는 정책을 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그는 금융시장의 완전 개방이 갖는 위험성을 경계하고 있다. 이 글의 결론 부분에서 그는 케인즈의 말을 인용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상, 지식, 예술, 친절, 여행 등은 본질적으로 국제화돼야 한다. 상품은 그 지역에서 생산할 수 있는 것이라면 가급적 그 지역의 것을 쓰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특히 금융만큼은 최우선적으로 그 나라가 소유하도록 해야 한다』 금융이 외국 자본에 넘어가면 일체의 다른 주권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웨이드 교수는 『이렇듯 민족국가 단위의 권력에 의해 통제받지 않는 금융자본에 과도하게 노출된 경제의 종말은 위기의 반복뿐』이라고 경고했다. 이 글에서 웨이드 교수는 주목되는 한 가지 개념을 제시했는데, 그것은 과거 냉전시기에 미국의 대외정책을 배후에서 결정한 사실상의 주체가 「군산복합체」였다면, 세계화라는 자본의 세계적 통합과정을 밟고 있는 지금은 「월스트리트와 미재무부, IMF의 삼각복합체」가 막후의 주체라고 한 대목이다. 이런 개념은 콜럼비아대학의 경제학 교수인 자그디시 바그와티가 올해 「포린 어페어즈」 5/6월호에 게재한 논문(The Capital Myth)에서 규명한 월가와 미재무부 간의 복합체에 IMF를 추가 확대시킨 것이다. 이 세 기구는 인적으로도 상호 이동이 이뤄지고 있으며, 정책결정 과정에 긴밀하게 협의를 할 뿐 아니라 그 이해관계도 서로에게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월 스트리트·미 재무부·IMF 삼각 복합체」는 앞으로 우리에게 중요한 연구대상이 돼야 할 것이다. 아무튼 그의 논지에 따라서 오늘의 미국이 겪고 있는 진통을 해부해보자면, 미 재무부·월 스트리트·IMF의 의도에 따라 움직이는 금융자본에 대한 통제를 상실해버린 세계 경제가 아시아 경제를 과도하게 압박했고, 부메랑처럼 그 대가를 미국이 치러야 하는 사태가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경제가 자신의 경제논리를 관철해내느라 세계적으로 어떠한 충격을 자초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에 대한 도전 아시아 위기가 진행되고 있는 와중에 미국은 몇몇 국가들에 대해 경제제재 조치를 철회하는 쪽으로 결정을 내렸다. 경제제재라는 족쇄를 채운 상태에서 미국 경제가 모색할 수 있는 돌파구가 제한적일 수밖에 없음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경제제재 조치에 대해 유럽과 캐나다 등 서방국가들의 집단적인 반발이 거셌고, 미국 정부가 이들 나라와 계속 갈등을 빚을 경우 국제적 영향력을 유지·확대하기보다는 오히려 손해가 더 크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미 정부와 의회는 쿠바, 이란, 이라크, 리비아 등을 비롯해서 북한 등 아시아 국가들에 대해 가하고 있는 경제제재 조치가 실효성은 떨어지고 외교적 저항만 불러올 뿐 아니라 미국 경제에도 상당한 부담을 준다는 자체 평가를 따르기로 했다. 특히 미국 농업부문과 산업부문에서 제재를 풀라는 정치적 압력이 거셌다. 경제제재 조치를 계속할 경우,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국가와의 경제관계에서 다른 나라에 밀린다는 주장이 먹혀들어간 것이다. 다시 말해 경제제재 때문에 이들 대상국의 시장에 참여하지 못해 미국이 불리해진다는 현실인식이 기존 논리를 압도한 셈이다. 미 상공회의소를 비롯해 676개 회사의 연합조직인 USA 인게이지 측은 『미 정부의 일방적인 경제제재 조치가 외국 경쟁자들을 날이 갈수록 유리한 위치에 서게 하고, 미국을 신뢰하기 어려운 거래 상대로 만들고 있다』며 경제제재의 부작용을 강조했다. 이런 분위기에 따라 미 의회는 핵실험을 한 인도와 파키스탄에 대한 식량수출 제재조치를 해제했는데 이는 경제제재가 계속될 경우, 예를 들면 미 농업시장이 파키스탄으로부터 주문받은 3700만달러어치의 밀수출 계약이 파기되는 등 손해가 발생하기 때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캐나다와 러시아, 그리고 유럽국가들이 이미 미국의 경제제재에 도전하며 제재 대상국내에서 치열한 무역전쟁을 벌이자 미국의 외교도 어쩔 수 없이 바뀌게 된 것이다. 지난번 프랑스가 이란의 천연가스공사 프로젝트에 참여하자, 미국 정부가 미국 내 프랑스 기업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위협했다가 유럽 국가의 집단적 반발을 초래한 것에 상당히 충격을 받은 셈이었다. 또 대(對) 쿠바 경제제재에 대해 카리브해 국가들과 라틴 아메리카 국가들이 단합해서 미국을 비난하고 쿠바를 라틴 아메리카 경제권에 포함시키겠다고 나서자 더 이상 경제제재로 밀어붙이는 데 한계를 느낀 것이다. 현재 국무부와 미 의회 관련 위원회는 경제제재를 한꺼번에 모두 철회할 수는 없는지라 일단 제한적인 해제를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자유무역주의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 제한적 해제도 실효성이 없다는 견해가 많기 때문에 미국의 경제제재 외교는 이제 그 시대적 수명을 다했다고 할 수 있다. 워싱턴에 위치한 국제경제연구소가 제시한 통계에 의하면, 50년대에서 90년대에 이르기까지 경제제재 조치 빈도는 급격하게 증가한 반면, 경제제재가 실질적으로 정책목표를 달성한 비율은 70년대와 80년대에 들어서서 엄청나게 줄어들었다. 가령 50년대와 60년대에는 60∼70%의 성공률을 기록한 반면, 70년대에는 18%, 80년대에는 10% 미만으로 뚝 떨어진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미국만이 유일하게 포괄적인 경제지원을 할 수 있었던 50∼60년대와는 달리 세계경제가 다양하게 성장해왔고, 또 어느 한 쪽의 봉쇄가 그 봉쇄를 추진하는 국가에 이롭지만은 않은, 상호의존적 체제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미국의 세계전략은 유일 초강대국 위치를 내세울 것이 아니라 국제적 협력을 주제로 새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즉 미국은 유일한 패권에 집착하는 방식이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야 할 시대를 맞이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지난 7월 말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아세안 회의의 기조와 방향은 주목할 만하다. 미국과 미국이 배후에서 작용하고 있는 IMF의 역할에 대해 동남아 국가들이 단단히 벼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이 이들에게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가 주목되던 상황이었는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마닐라 도착 전 샌프란시스코에서 행한 연설에서 상당히 일방적인 주장을 펴서 아세안 소속 일부 국가들이 미국에 대해 매우 불편한 심기를 갖게 했다. 「인터내셔널 헤럴드 트리뷴」도 그녀의 연설이 일부 동남아 국가들의 저항감을 불러 일으켰다고 지적했을 정도였다.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은 『경제개혁의 약이 쓰기는 하지만, 이는 경제회복을 위해서는 핵심적인 작업』이라고 말하며 『아시아 국가의 노동자들과 가족들에게 그 결과가 어렵고 공정하지 못하다 해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혁과정에 발생할 희생은 고통스럽지만 불가피하다는 논조였고, 그에 대한 사회적 대응책은 중요한 문제로 취급하지 않았던 것이다. 오만한 미국에 반기 든 아시아 또한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경쟁은 더욱 부추겨야 하고, 직접 투자의 공정한 조건이 수립돼야 하며, 부패는 척결돼야 한다』고 말했다. 부패문제야 그녀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당연한 얘기가 되겠지만, 아시아 국가의 현실을 부패한 것으로 규정해버렸다는 점에서 이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 또한 경쟁가치를 강조한다든가, 직접 투자의 조건에 대해 말한 부분은 경쟁력이 강한 미국 등 서방자본의 활동을 보장하라는 요구로 들렸다. 전반적으로 아시아의 현실을 잘 살펴보고 무엇을 도울 수 있는지 배려하는 자세보다는, 고압적으로 가르치려 든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다.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은 일본에 대해서 일본정부가 경제에 대한 각종 규제를 풀고 은행체제를 정비하는 것이 긴요하다고 말했다. 한 마디로 올브라이트 장관의 연설은 미국이 어떻게 아시아 국가들의 경제 위기를 도울 것인가는 제쳐두고 미국 입장에서 요구하는 측면에만 비중을 뒀던 것이다. 문제는 아시아 국가들 자신에게 있는 것이니만큼 고통스럽고 다소간 불공정하더라도, 그리고 IMF가 완벽하고 무오류한 기구는 아니지만 지금으로서는 아시아 위기의 불을 끌 유일한 기구이므로 이 기구가 제시하는 경제개혁 노선을 따르는 것이 해결의 길이라는 것이다. 최근 세계 도처에서 일고 있는 IMF와 미국의 역할에 대한 비판을 고려했다는 인상을 전혀 받을 수 없다. 이와 관련해서 아세안에 속한 동남아 국가들은 국제금융기구, 즉 IMF와 미국을 비롯한 서방 국가들이 현재 아시아 국가들에 긴급 금융지원을 하는 대신 요구하는 각종 개혁조치가 이들 국가가 치러야 하는 「정치사회적 비용」에 대해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경고한다. 돈 좀 빌려줬다고 온갖 무리한 요구를 하는 미국 등 서방 국가들이 아시아가 겪고 있는 정치적·사회적 고통과 희생에 눈을 감아서는 안 된다는 분노에 가까운 항변이었다. 미국과 IMF가 요구하는 노선에 충실할수록 정치·사회적 불안정과 고통이 깊어지고 있으며, 그것이 경제회복을 결정적으로 가로막을 수 있다는 현실인식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아무런 보장책 없이 사회 구성원 일부를 고통속에 몰아넣고서 IMF 등이 요구하는 노선으로 나라를 이끌고 가는 것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으며, 그 결과는 미국 등 서방을 향한 분노로 발전될 수도 있다는 시사인 것이다. 미국 등 서방의 입장에서 볼 때 이건 부메랑이었다. 국제 투기자본 통제에 중국도 나설 움직임 아세안 국가들이 미국 등 서방에 이렇게까지 강력하게 경고 메시지를 표면화시킨 적이 없었다는 점에서 현재 아시아 국가들이 갖고 있는 반감이 어떤 수준인지 알 수 있다. 이들 참석국가들의 일부 대표들은 사석에서 미국과 서방국가들이 이번 아시아 위기를 기화로 아시아 시장이 서방의 이해에 봉사하도록 개방을 강요하고 있고, 인도네시아 같은 나라에 대해서는 정치적 변화까지 압박하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말레이시아의 안와르 이브라임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미국과 IMF가 인도네시아에는 약속한 자금지원을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미루고 있는 데 반해, 러시아는 러시아가 요구한 이상으로 자금지원을 결정했을 뿐 아니라 그 시행 속도도 인도네시아의 경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빨랐다』며 이는 명백하게 불공정한 조치라고 비판했다. 그는 또 『이것은 단지 IMF의 문제가 아니라 IMF를 좌지우지하는 부자 나라들의 정치적 횡포』라면서, 국제금융기구의 이러한 투명성·일관성 결여는 매우 위험한 것이라고 강도높게 비난했다. 결국 이번 아세안 회의는 대응책에 대한 특별한 합의 없이, 미국 등 서방자본과 아시아 국가들 간의 간격이 점점 벌어지고 있음을 노출한 채 끝났다. 미국은 기존 방식을 더욱 강력히 추진하면서 자신에게 닥칠 부담을 전가하려 하고 있으며, 아시아 국가들은 그런 방식이 가지고 올 결과에 대해 경고하고 나선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 특히 중국의 발언이 주목을 받았다. 투기자본에 대한 강력한 대응책을 마련할 것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중국은 국제투기자본의 움직임을 통제하는 가운데 아시아의 경제안정을 이룩해야 하며 『그 안정의 핵심은 각국의 경제주권을 방어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이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가 국제 투기자본에 대해 공동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는데 중국도 그들과 같은 의견』이라면서 『국제 투기꾼들에 대한 아시아의 공동 대응책이 속히 실현돼야만 아시아 경제는 안정을 찾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중국의 입장 표명은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이 이 부분을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 미국과 IMF가 아시아 국가들에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과정에 투기자본에 대한 통제조치를 반대하고 있다는 점과 크게 대조적이다. 중국의 이러한 발언은 그간 말레이시아 마하티르 총리가 고독하게 부르짖어온 투기자본에 대한 국제적 공동대응의 구체화에 상당한 힘이 실리게 됐음을, 의미하는 동시에, 아시아적 대응을 위한 연대를 형성할 분위기가 성숙해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미국경제의 보편성, 그리고 그 돌파구 이러한 상황은 미국으로 하여금 어떻게 대아시아 정책을 펼쳐나갈 것인가를 고민하게 만들었다. 대아시아 정책의 진로에 따라서 미국경제의 미래가 좌우될 수 있으며, 세계적인 공황상태를 저지할 수 있을지도 결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주목되는 사실은, 미국이 자국의 기준을 인류 보편의 기준으로 내세우려는 태도가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는 현실이다. 구(舊) 유고연방의 보스니아 사태가 확산되면서 전범처리 문제가 국제적으로 논란이 되자 그동안 유엔 차원에서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에 대한 논의가 꾸준히 있어왔다. 미국은 애초에 이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에 적극적이었고, 이를 통해 국제사법관으로서 미국의 위상을 높일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다가 막상 유엔대표단이 로마에서 본격적인 추진 단계에 들어가자 미국이 갑작스럽게 반대를 하고 나선 것이다. 미국 내에서 이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에 강력하게 반대한 것은 다름 아닌 국방부였다. 미 국방부는 국제전범재판소의 법적제재 대상에서 미국은 제외돼야 한다는 입장이 수용되는 경우에만 이를 지지할 것이라고 했고, 세계전략을 놓고 국방부와 대립하기를 원하지 않는 클린턴 정부는 국제외교상의 위신추락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정책 변화를 고수하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로마에서의 유엔대표단 회의는 미국의 입장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국제형사재판소 설립에 서명한 나라들도 미국에 전범 혐의가 발생할 경우 미국도 전범재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고 천명했다. 미국으로서는 외교상 중대한 패배를 겪은 셈이다. 이와 관련해서 보수적인 「워싱턴 포스트」는 미국의 입장에 동조한 반면, 「뉴욕타임스」는 『이렇게 창피할 수가 있는가』라고 개탄했다. 미 정부와 국방부의 논리는 다음과 같다. 『지금 세계에서 미국은 유일한 초강국이다. 따라서 미국은 국제질서를 유지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그런 나라가 국제질서를 유지하기 위해 기존 국제법을 위반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면 그렇게 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 과정에 미국 군대가 전범 혐의를 받게 되면 미국의 국제적 역할이 제대로 수행될 수 있겠는가? 미국이 국제경찰 역할을 하는 것은 세계가 바라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러한 국제법상의 장애가 그 역할에 제동을 건다면 곤란하다. 그러므로 미국은 국제전범재판소의 사법판단 대상에서 제외돼야만 한다』 말하자면 미국을 초국제법적 존재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미국의 국내법적 위치에 있을 뿐인 경제제재를 세계가 다 따라야 한다고 해서 유럽국가들이 거세게 반발을 한 것이 바로 얼마 전의 일인데, 군사적 질서에서도 미국은 누구의 견제나 제동을 받지 않고 초법적 지위를 가진 나라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누가 봐도 명백한 제국주의적 발상과 논리가 아닐 수 없다. 국제형사재판소 설립과 관련한 미국정부의 정책은, 미국이 원하는 질서가 바로 「보편적인 질서」라고 강변하는 것과 다름없다. 최근 국내의 일부 식자층에서 전개된 세계화를 지향하는 탈민족주의 논쟁과 영어를 공용어화하자는 논쟁도 그런 미국의 패권질서를 보편적 질서로 인정한 데서 출발한 것이다. 세계질서의 현실을 그대로 수용하자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인식이 아닐 수 없다. 한계에 다다른 미국식 자본주의 지금 인류사회가 지향해야 할 방향은 어느 유일 강대국이 자신의 논리를 내세워 특권적 국제질서를 만들어내는 것을 저지하고, 각 민족국가가 누구에게도 부당하지 않은 정의로운 위상을 서로 보장해주는 세계질서일 것이다. 미국이 이런 방식으로 무리하게 자신의 입지를 확보하려는 것은 냉전 시기 미국의 군사·외교정책의 유산 위에 서 있는 세계 자본주의의 통합과정에 전개되고 있는 패권정책의 소산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책을 밀고나가면 나갈수록 미국의 국제적 권위는 손상될 수밖에 없다. 세계는 그와 같은 미국의 논리를 배제하고 새로운 질서를 향해 가려는 노력을 더할 것이다. 미국의 「초국가적 활동성을 가진 자본」이 다른 지역의 실물경제 기초를 약화시키고 반복적인 위기를 배태시키고 있다는 현실에 대해 자기반성적 고민과 그에 따른 진로 수정 없이는, 실로 세계적 차원의 공황은 필연적이다. 개별 국가의 통제력을 벗어난 미국 경제의 금융시스템이 결국에는 전세계 경제의 안정적 발전을 파괴하면서 자기 존립 논리를 펼쳐나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 자본주의의 특권적 위치를 확보하려는 운동일 뿐이며, 그로써 여타 국가의 경제는 이 특권적 질서의 하부체계로 존재하게 하려는 의지인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의지가 실현되기 어려운 사태가 벌어지면, 시스템의 총체적 기반은 붕괴할 수밖에 없으며 그것은 곧 운명적으로 세계경제의 위기로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미국은 지금 세계적인 경제위기에 대해 미국식 질서가 보편성을 확보하면 사태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논리가 오히려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음을 외면하고 있다. 또 미국은 지금 위기의 원인과 그에 따른 결과적 현상을 혼동하고 있다는 점도 인식해야 한다. 아시아 경제의 위기는 독자적인 원인에서 비롯됐다기보다는, 미국이 주도하는 국제 금융자본의 행동방식에 따른 결과라고 봐야 한다. 일본을 포함한 아시아 경제의 부흥은 미국의 세계 자본주의 관리방식이라는 커다란 틀 속에서 이뤄진 것이며, 이 틀이 아시아 경제의 생존조건에 부정적 변화를 가하게 되면 사태는 어렵게 굴러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시아 경제의 위기극복은 그 근본 원인을 제공하고 있는 미국 경제의 국제적 행동방식에 변화가 오지 않는 한 되풀이되거나 극복에 근본적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미국경제가 지향하는 질서는 세계적으로 빈부의 양극화를 확대재생산해왔고, 이에 기초한 경제적 지배체제를 유지해왔으며, 약소국들로 하여금 자신의 고유한 발전을 위한 잉여 확보에 제약을 가해왔던 것이다. 한국의 외채위기 협상과정에 채무부담이 가중된 것은 바로 그런 제약의 구체적 실례이며, 이 무거운 부담을 지느라고 허덕이는 경제의 미래가 밝을 수 없다. 과잉 투기자본의 모순을 어느 일방에 전가함으로써 전세계의 실물경제가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오히려 파괴해버리고 있는 미국 경제의 행동방식은 결국 자신을 위해서도 유리하지 못하다는 것이 실증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 미국은 자신의 논리가 보편적 우월성을 지니고 있다거나 우월성을 지녀야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그리고 지구촌에 살고 있는 여러 민족과 국가들이 인류가 직면한 부담과 위기를 어떻게 감당하면서 풀어나가야 할 것인지 모색해야 한다. 이 작업을 위해서는 자본의 이익만을 최우선으로 하는, 무자비하고 경쟁적인 생존방식이 아니라 「인류의 필요」를 채우는 제3의 경제체제를 지향하는 논의가 전제돼야 할 것이다. 물자가 갑자기 부족해져서도 아니고 돈이 갑자기 사라져서도 아닌, 오히려 물건들은 공장에 쌓여 있고 돈은 어느 한편으로 불균형하게 과잉 축적되어 있는 이 세계경제의 위기 앞에서 인류가 선택해야 할 진로는, 이제 미국의 자본주의가 제시해왔던 모델이 한계에 직면했음을 집단적으로 인식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이 위기 속에서도 여전히 한국 사회의 일부는 엄청난 부를 더 많이 누리게 됐으며, 그 외 대다수는 빈곤의 나락으로 빠져들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 모두 함께 물어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 - Copyright(c) 1998 All rights Reserv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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