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Convex (4ever 0~) 날 짜 (Date): 1998년 5월 28일 목요일 오전 11시 06분 01초 제 목(Title): 전두환 성적과 박정희에 관해 전두환 성적은 뒤에서 세는 것이 더 빠릅니다. 잡지에도 여러번 실렸으니 틀리리라고 안봄. 뒤에서 50등 안쪽이던가 그렇지요. 전두환 장인이 육사교장이어서 그랬는지 어쨌는지는 몰라도 보스 기질을 가졌었죠. (나이 많으면 대빵 시키던 시절) 그리고 5.16 쿠테타 때 육사생들의 지지시위를 주도하기도 했지요. 당연히 박통 눈에는 이뻐보일 수 밖에요. 승진 잘하고 하는거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 아웅산에서 순직한 김재익 경제 수석이 전두환에게 경제 이론 과외 가르치다시피 했지요. 아마 전두환이 저보다 경제 이론을 더 많이 알거라 생각합니다. (농담 아님) ****** 전두환은 돌이라는 얘기들이 많이 나오는데 사실 동기간 중에서 공부 못했었다 합니다. 그래서 돌이라기 보다는 돌이라고 급속히 소문 퍼지게 된 배경은 외국 잡지에(뉴스윅 아니면 타임) stonehead 라고 전두환을 소개 시켰기 때문이죠. 돌머리라는건데.. 원래 미국에선 머리가 안좋다라는 뜻으로 할 때는 pumpkin(?) head 라고 한답니다. 단단한건 나쁜 뜻이 아니라고 합니다. stonehead 는 잘 밀어부치는 강경론자라는 뜻이 있다고 얼핏 들었습니다. 그 잡지를 보고 한국식으로 직역하여 '돌대가리'라고 말한 사람들이 꽤 있었고 그래서 퍼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뭐 전두환이 진짜 돌대가리냐 아니냐에 대한 야그는 모르겠고.. 어쨌던 그것이 퍼지게 된 경위. ******** 그리고 70년대 말은 2차 오일 쇼크가 있었지요. Gravis님의 분석에 100% 동의합니다. 77년즈음에는 당시 유행어 중의 하나였던 '바쁘다 바뻐'라는 말이 일본 신문에 한국 경제를 표현하는 말로 쓰일 정도로 잘나갔었지요. 2차 오일쇼크만 없었다면 당시 계획하고 있었던 경제 단지를 예정대로 할 수 있었을거고 아마 더 빨리 성장할 수 있었을 겁니다. 물론 요새 기업들이 그런 식으로 다 하다가 망해서 IMF사태를 몰고왔지만. 1차 오일쇼크였던 73년은 진짜 황당했어요. 택시 기본요금이 110원에서 갑자기 160원으로 오르고, 기름은 배급받아야만 했고, 기름 보일러로 겨울 나는 사람들은 추위에 오돌오돌 떨어야 했고. 반면에 2차 오일쇼크는 면역이 생겼는지 비교적 충격이 덜했다고 보여집니다. ****** 그리고 조갑제 기자의 말은 대부분 사기라고 보면 되는데 위에 나온 말은 그럴듯 하군요. 사실 김재규가 아니었으면 학생들이나 시민이 궐기하려고 준비해 있었답니다. 당시 어느 교사도 그랬어요. 10.26 터지자 다음다음 날이 디 데이였었다고. ***** 박통때 한가지 웃기는 사건 하나. 제 7광구라는 노래도 있지만.. 기름 한방울 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기름이 나왔다며 그 질은 세계 최고 수준이더라고 하면서 그 기름을 보면서 흐믓해하는 박통 사진이 신문에 대대적으로 다뤄졌었죠. 그 뒤 그 기사가 진짠지 가짠지 모르겠으나 follow up 기사는 없었음. 어떤 유언비어까지 나왔냐면 거기(아마 포항 근처일듯)에서 정밀 시추결과 매장량이 엄청난 것으로 판명되어 박통이 기분좋아 5.16일에 기념일을 맞아 국가공휴일 이틀간 선포하기로 했다는둥.... 기억나는 사람 있어요?:) ****** --,--`-<@ 매일 그대와 아침햇살 받으며 매일 그대와 눈을 뜨고파.. 잠이 들고파.. Till the rivers flow up stream | Love is real \|||/ @@@ Till lovers cease to dream | Love is touch @|~j~|@ @^j^@ Till then, I'm yours, be mine | Love is free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