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gravis) 날 짜 (Date): 1998년 5월 27일 수요일 오후 08시 28분 35초 제 목(Title): re]박과 전 * 전두환이 육사 수석 졸업했다는 말은 처음 듣는데요.. 하지만 아무튼 전두 환이 동기생들보다 나이도 많았고 육사 졸업 후 동기 중의 선두주자였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동기 중엔 손영길이 전두환의 라이벌이었는데 이 사람은 윤필용 사건 때 몰락했습니다. (윤필용 사건이란 박통 때 수도경비사단장인 윤필용이 이후락과 술 마시면 서 "각하가 나이가 너무 많다.. 다음은 형님(이후락) 차례 어쩌고.." 한 말 이 새어나가 역모 죄로 목이 잘린 사건. 손영길은 윤필용의 부관이었음). 박통은 대구 사범출신에 만주 군관학교 수석 졸업 일본 육사 우수한 성적 으로 졸업 등 당시로는 비교적 좋은 학벌(?)의 소유자입니다. 그리고 광복 후 국군은 대부분 일본군(만주군) 출신이 장악한 상태였기 때문에 그의 일 본군 출신 경력이 열등감으로 작용했다고 보기도 힘듭니다. 하지만 친형이 대구폭동사건의 주역으로 사망한 사실과 본인의 남노당 경 력 때문에 군에서 요직을 맡고 출세할 가능성이 없었던 상태가 그의 쿠데 타 시도의 한 요인이라고 볼 수는 있을 것 같습니다.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출세할 가능성이 막혀버린 권력 의지가 강하고 사무라이 문화에 심취한 후 진국 장군이 무얼 택하겠습니까? ** 박통 사망 전후는 한국 경제가 아주 안 좋았는데 그 이유를 박통의 경제 시스템(시장에서의 공정한 경쟁과 효율성보다는 국가와 관료 재벌이 주도 하고 부패가 자원배분에 주요 역할을 하는 양적 성장 우선주의)이 한계에 달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그의 경제시스템이 좋았다는 게 아니라 그의 기본적으로 그의 시스템은 전 두환 노태우 김영삼 정권에 의해 답습되었기 때문입니다. 아시다시피 박통 이후에도 경제는 기복이 있지 않았습니까? 박통 경제 시스템의 한계는 김 영삼 정권 말기에 결정적으로 드러났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물론 그전에 도 문제가 많았지만 get by 할 수 있었지요. 그럼 박통 사망 전후의 경제위기의 요인은 무엇이었을까요? 자본주의의 특징 중의 하나는 호황과 불황을 반복하는 경기 순환입니다. 5-60년대 호 황을 거친 세계 자본주의는 70년대에 침체기에 들어갑니다. 특히 1차 오일 쇼크를 거친 후 얼마 되지 않아 다시 발생한 2차 오일 쇼크(70년 대말)는 유가를 급등시켜 세계 경제 특히 미국 경제에 큰 타격을 가했습니다. 수출입이 국가 경제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특히 미국 시장에 판로를 의 지하는 한국 경제가 흔들린 건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70년대 중반 이후 박정권은 중화학 공업 해운 해외 건설에 큰 투자를 했는데 과잉 투자가 세계 경기 침체와 맞물리면서 한국 경제의 불황을 더욱 깊게 했습 니다. *** 그럼 전두환 때는 왜 경기가 좋았을까요? 앞서 말한 대로 자본주의 경제 는 순환적 측면이 있습니다. 불황 뒤에는 호황이 오기 마련입니다 (구조적 모순이 한계에 도달하고 이게 시정이 안되면 다시 호황이 온다는 보장은 없습니다만...). 경기가 바닥일 때 집권했으니 좋아질 수 밖예요. 레이건도 마찬가지... 그러나 뭐니 해도 전통 때 호황은 80년 때 중반의 3저(저금리 저유가 저달 라)라는 외적 요건에 힘입은 바 큽니다. 국제 시장의 저금리 때문에 외채 부담이 많았던 한국은 외채 원리금 상환에 부담을 덜 수 있었고 외자를 싼 비용에 조달할 수 있었습니다. 한편 2차 오일 쇼크로 폭등한 유가는 수요 감퇴와 OPEC의 카르텔 붕괴로 과잉생산이 겹치면서 폭락했고 유가뿐 아 니라 대부분의 원자재 가격이 하향 안정화돼 이에 대한 수입비중이 높은 한국 경제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달러도 도움이 됐는데 역설적이지만 이게 수출에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 달러 자체는 수출에 장애임 하지만 당시 원화는 달러와 상당부분 연계되어 있었음). 그 이유는 저달러와 함께 엔고 현상이 두드러져 미국에서 중저가 상품의 일본의 경쟁력이 떨어져 그 틈을 한국 상품이 파고 들 수 있었고 중국과 동남아국가는 아직 한국의 경쟁상대가 되지 못했지요. 아무튼 전통 때의 호황은 전통이 잘해서가 아니라 외적요건이 맞아 떨어져 서 일 뿐입니다. 물론 국가주도의 정경유착적 재벌체제의 약발이 남아 있 었기도 하지만요... 어느 분이 지적한 유능한 경제각료 어쩌고 한 사람은 전통 초기의 경제수석이었던 김제익을 가리키는 듯한데 이 사람은 아웅산 사태로 사망했고 유능하다는 평가는 받았지만 그 사람 덕에 호황이 왔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 결론적으로 박통 말기의 불황과 전통 때의 호황은 세계 경제의 경기 순환 적 측면과 궤를 같이 한 것이라 볼 수 있고 내부적 요인보다는 외부적 요 인에 의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전두환은 지 덕이라고 생각하겠지 요). 약간 말이 빗나가지만 현재의 한국 경제의 위기는 경기 순환적 성격 보다는 구조적 성격이 강하고 그 이유는 박정희식 시스템이 한계에 봉착했 기 때문인 걸로 보여집니다. 박정희와 전두환 중 누가 더 나쁜 놈인가? 제 생각엔 박정희가 더 나쁜 놈인데 조모 이모하는 놈들이 기사와 소설을 통해서 우상화 작업을 시도하 고 본질보다는 현상에 좌우되는 일부 국민 특히 박정희 시대를 체감하지 못한 20대 마저 박정희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려는 세태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할 뿐입니다. 박정희가 왜 나쁜 놈인가에 대해서는 책을 한 권 써도 모자랄 지경이니 정신건강을 위해 여기서 그만 하도록 하겠습니다..... --갈무리 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