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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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claudia (가 아님...)
날 짜 (Date): 1998년 5월 14일 목요일 오후 05시 40분 53초
제 목(Title): 피가 머리에 솟구친다라...


글쎄... 나는 언제 이래본 적이 있었던가...

아마도 기억에는 86년 5월의 어느 날(이던가)에는 그랬던 것
같다... 학교 본부 앞 아크로라는 곳에서 집회가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학생회관 쪽을 쳐다본다... 나도 보니까
누군가가 학생회관 옥상에서 뭐라고 큰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그 사람 주변으로 옥상에는 따뜻한 봄날의 아지랭이가 일렁
이고 있었고... 어떻게 보면 아름다울 풍경이었는데도 나는
순간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걱정스럽기도 하고 당혹
스럽기도 한 그런 이상한 감정에 휩싸였다... 큰소리로 구호
같은 것을 외치던 그 사람이 손으로 어떻게 하는 것 같더니
그 사람 주변으로 갑자기 아지랭이가 많아졌다... 당혹스러움에
황급히 눈의 촛점을 이리저리 맞춰보니 그 사람 주변으로
노랗게 일렁이는 불꽃들을 볼 수 있었다... 옆에서 놀라는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옥상에서 아래로 떨어졌다... 아마도
자신이 뛰어내렸을 것이다...
그 날은 정말 머리에 피가 솟구친다는 표현이 맞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집회가 이루어지지도 못했다... 사람들이 너도 나도
교문으로 나섰기 때문에...

내가 문익환 목사님, 한 번도 직접 만나보지도 못한 이 분에게
유난히 인간적인 친밀감을 느끼는 이유 중 하나도 이 날
때문이다... 그 이동수 학형이 분신할 때 아크로 연사가 바로
문익환 목사님이었다... 나는 순간 목사님의 얼굴에서 우리와
똑같이 당혹스러워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표정을 볼 수 있었다...
이제는 목사님의 얼굴도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그 표정만은
아직도 머릿 속에 또렷하다...
후에 목사님이 학형의 분신을 자신 때문이라고 자책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물론 목사님 때문이지는 않을 것이지만...

그 후로 목사님을 다시 한 번 가까이서 뵐 수 있었던 날이
있었다... 호암아트홀에서 "그 섬에 가고 싶다"는 영화를
보던 날이었다... 나 혼자라면 보러갈 생각을 못했을텐데,
친구놈이 갑자기 전화를 해서 같이 가잔다... 표를 구하고
극장 입구 앞 롯데리아던가에 앉아있는데, 웬 영화배우 같은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그러다가 선해보이는 얼굴표정의
안성기도 나타나고...
"야... 이거 왠 횡재"하고 있는데, 조금 있으면 DJ 선생도
올 거란다(당시 DJ는 92년 대선 패배 후 칩거 상태)...
나는 아무 것도 모르고 쫄래쫄래 따라왔지만, 친구는 이미
이런 정보를 알고서 영화보러 가자고 했던 것이다... 표를
내고 극장 안으로 들어가서 2층 로비(던가? 하여튼 연주회
끝나면 사람들이 모여서 부페 식사 같은 것을 하던 곳)에
DJ 선생, 감독 박광수, 안성기, 문성근 등등과 문익환 목사님
등이 소파에 앉아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눈이 즐거울 수가 ^^"하면서 친구와 좀 떠들었다...
안성기는 사람이 참 선해 보이니, 문성근은 보기보다는 클 때
아버지(문익환 목사님) 속 께나 썩혔겠다는 둥 하면서...
물론 정말 문성근이 그랬겠다는 것 보다도 스타를 보는 기쁜
마음에, 그리고 너무나 연로해지신 문익환 목사님을 보는
안타까운 마음에 그런 말이 나왔던 것이다... 저렇게 연로해
지신 것이 방북사건으로 고초를 많이 겪으셔서가 아닌가하면서
안쓰러웠다...

영화는 뭐 좀 당시로는 새로운 문제의식이기는 했는데... 6.25의
참극이 오히려 아군 때문이지 않겠느냐는 것을 암시했으니까...
하지만, 박광수 감독 특유의 미적지근한 분위기였고...

영화가 끝나고 나오니 관객들이 DJ에게 악수를 청했던 모양
이다... 나는 싫었는데, 평소 DJ를 좋아하던 친구는 악수하는
줄에 끼자고 나를 꼬드꼈다... DJ가 악수를 하면서 내 쪽으로 
오는데 내가 어떤 태도를 보여야 좋을지 약간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곧 국가의 원로격이니 그에 맞는 예절을 보이는
정도면 될 것이라고 생각을 정리했다... 친구가 먼저 악수를
하고... 친구는 DJ에게 뵙고 싶었다는 말을 했고 DJ는 "아!
그래" 하면서 반가와 했다... 나는 별다른 말 없이 그냥 공손
하게 악수를 청했다... 그랬는데, DJ가 뭐라고 웃으면서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이다... '뭐야 이건? 예상에 없던 일이네?'하면서
놀랐지만, 나는 곧 얼굴을 굳히고 눈을 내리깖으로써 그의
말을 외면했다... 쉽게 말해 인상 긁는 상황... DJ는 이런
나의 태도에 적잖히 당황했었던 모양이고, 역시 굳은 표정으로
옆사람 쪽으로 옮겨갔다... DJ 보좌관 중에 한 명인가도
황당해 하는 표정으로 웃으면서 나를 쳐다보고는 지나갔다...
좀 민망스럽기는 하더라... 하지만, 나야 뭐 '그냥 가지 왜
쓸데없이 말을 걸어가지고 봉변이야? 그나저나 왜 나한테
말을 걸지? 아까 너무 떠들었나?'(limelite는 보통은 말도
잘 못하고 꿔다놓은 보리자루 같지만, 분위기가 된다 싶으면
상당히 떠든다... ^^) 이런 생각...

몇달 후 이 날의 사건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하는 신문기사를
읽을 수 있었다... 문익환 목사님이 돌아가셨던 것이다...
그렇게 뵙던 것이 마지막이었구나하고 한참을 가슴 아파했었다...

그렇게 그 날의 사건은 DJ를 만났다기 보다는 문익환 목사님을
마지막 뵌 것으로 내 머리 속에 자리잡았다...

                                             - limel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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