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clearsea (晴海) 날 짜 (Date): 2009년 02월 04일 (수) 오후 10시 52분 02초 제 목(Title):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 최근 어느 인터넷 매체에서 우리나라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글(http://tinyurl.com/kor18vote)을 읽었습니다. 선거는 전형적인 공공선택의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각 개인의 선호를 집단/사회 전체의 선호로 결집하는 것이죠. 그런데 애로우 교수의 불가능성 정리를 참조하면 특정 선거제도를 "잘못된" 것으로 쉽게 판단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단정하기도 매우 어렵다는 것도 알 수 있겠습니다. 궤변처럼 들리지만, 일반적으로 공정한 자유민주주의적 공공선택 방식을 구현할 수 없다는 불가능성 정리의 핵심을 참조하면 일정 기준을 제시해서 특정 선거제도를 "잘못된" 것으로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관점에서는 그 제도를 잘못된 것으로 단정하기도 힘듭니다. 그 글이 주장하는 내용과 제18대 국회의원 선거를 구체적으로 비교하면서 한번 짚어 보겠습니다. 제 18대 총선에서 각 선거구당 한 명을 뽑는 소선거구제 지역구가 245 석, 비례대표 54 석, 총 299 명의 의원을 선출했습니다. 지역구는 제1 투표 및 단순 다득표제로 당선자를 결정했고, 비례대표는 제 2 투표(정당별 투표) 및 3% 이상 득표를 한 정당에게 54 석을 배분했습니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습니다. <pre> 정당 정당 득표율 지역구 의석 비례대표 의석 통합민주 0.252(0.273) 66 15 한나라 0.375(0.407) 131 22 자유선진 0.068(0.074) 14 4 민주노동 0.057(0.062) 2 3 창조한국 0.038(0.041) 1 2 친박연대 0.132(0.143) 6 8 무소속 25 한+친박 0.507(0.550) 137 30 </pre> 이 선거결과에 대해서 그 글은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합니다. "한나라당은 37.5%를 득표했다. 따라서 독일식을 채택해 민의를 그대로 반영했을 경우 한나라당은 37.5%인 112석밖에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 민의를 왜곡하는 잘못된 선거제도 때문에 한나라당은 37.5%밖에 득표를 못하고도 과반수가 넘는 153석(51.2%)을 차지했다. 반면에 민주노동당은 5.7%를, 진보신당은 2.9%를 득표하고도 각각 5석과 0석의 의석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독일식이었다면 각각 17석과 9석을 차지했어야 했는데도 말이다." 일단 "독일식"에 대한 이해가 있어야 되겠습니다. 독일도 연방의원 선출에 우리와 같이 소선거구제 지역구 제1 투표와 정당별 제2 투표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지역구 기준 의석수는 299 석이며, 비례대표 기준 의석수도 299 석, 총 598 석입니다. "기준"이라는 용어를 제가 사용하는 것은 선거 결과에 따라서 의석수가 증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의석 배분은 일단 각 정당의 배분기준 득표율에 비례해서 의석을 배당받습니다. 이 때 지역구 3 석 이상 혹은 정당 득표율 5% 이상의 봉쇄조건이 적용됩니다. 따라서 의석 배분기준 득표율은 봉쇄조건에 걸리는 군소정당의 득표를 제하고 의석 배분을 적용받는 정당들의 득표합이 분모가 됩니다. 실제 득표율보다 배분기준 득표율이 약간 올라가겠죠. 위의 표에서 괄호 안에 표시한 것이 우리나라 봉쇄기준(3% 이상 득표)을 적용한 배분기준 득표율입니다. 독일은 16개 권역으로 나눠서 정당별 권역비례대표를 배분합니다. 그런데 특정 권역에서 어떤 정당이 할당 의석수보다 더 많은 지역구 의원을 배출하면 그것은 그대로 인정합니다. 이것을 "초과의석"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A 정당이 갑 권역에서 배당받을 의석이 25 석인데 26 명의 A 정당 지역구 후보가 그 권역에서 당선되면 1 석의 초과의석이 생기는 것입니다. 독일식은 의석배분 방식이 상대적으로 복잡합니다. 제가 이전에 우리나라 경우도 권역으로 나눠서 독일식 선거제도 시뮬레이션을 해보니 초과의석이 발생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특정 정당의 특정 지역 독식이라는 지금까지 총선 결과를 감안하면 직관적으로도 금방 이해되실 것입니다. 독일식을 보다 정교하게 적용하여 위 인용 부분의 오류를 수정해서 다시 적는다면 다음과 같습니다. 괄호 안은 원글의 수치입니다. "한나라당은 37.5%를 득표했고, 독일식 배분기준 득표율은 40.7%이다. 따라서 독일식을 채택하고 초과의석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한나라당은 122(112) 석밖에 차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 한나라당은 정당별 투표에서 37.5%밖에 득표를 못하고도 과반수가 넘는 153 석(51.2%)을 차지했다. 반면에 민주노동당은 5.7%를, 진보신당은 2.9%를 득표하고도 각각 5 석과 0 석의 의석밖에 차지하지 못했다. 독일식이었다면 각각 18(17) 석과 0(9) 석을 차지할 수 있었는데도 말이다." 수치를 정확하게 수정했지만 그 글이 주장하는 요점은 그대로입니다. 즉, "잘못되지 않은" 선거제도의 기준으로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가 거의 일치하는 것을 상정한다면 제18대 총선 선거제도는 "잘못된" 것이죠. 그런데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가 왜 일치해야 되는지는 의문을 던져볼 수 있습니다. 선거제도에는 일반적인 정답이 없기 때문에 결국 각 사회의 정치적 전통 및 문화를 통해서 발현되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따라서 소위 정치 선진국들의 선거제도도 매우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죠. 우리나라와 독일의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먼저, 정당의 성격이 다릅니다. 독일의 주요 정당들은 이념 정당이지만, 우리나라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일종의 대중 정당입니다. 이념적으로 궁극적인 차이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 다음, 우리 선거제도는 비례대표보다 지역구를 훨씬 더 중요하게 간주합니다. 제 18대 총선에서는 비례대표 의석수가 더 줄어들어서 245대 54가 되었습니다. 약 4.5대 1인데, 독일은 기준이 1대 1입니다. 저도 비례대표 의석수가 증가하고 지역구 의석수가 들어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현행 제도가 결정적으로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할 수는 없습니다. 세째, 지지하는 정당과 지역구 후보가 다를 개연성이 있습니다. 예컨대 특정 정당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 정당의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경우입니다. 정당이나 이념을 잣대로 하지 않고 인물을 기준으로 투표하는 경우가 되겠습니다. 물론 독일에서도 이런 경우는 있겠지만 우리나라 정당의 성격과 각 정당의 인력풀을 감안할 때 더 심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세 가지만 고려해도 정당 득표율과 의석수가 우리나라의 경우에 일치하지 않는 것이 별로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주장도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저는 우리 국회의원 선거제도가 민의를 왜곡하는 매우 "잘못된" 선거제도라는 강한 주장에는 선뜻 동의하기 힘듭니다. 현재 한나라당과 친박연대의 의석을 합치면 179(171+8) 석입니다. 총선 결과에 의하면 167 석인데 무소속 의원들이 한나라당에 입당하여 그렇게 되었습니다. 위의 표에서 두 당의 배분기준 득표율을 합치면 55.0%입니다. 초과의석이 생기지 않는 독일식 선거제도라면 164 석이 되겠죠. 15 석의 차이가 있는데(초과의석이 발생하면 그 차이는 줄어들 수 있음) 우리 정치문와와 선거제도의 특성을 감안하고 무소속 의원들의 한나라당 입당을 고려하면 별로 이상할 것이 없는 의석수입니다. 이 정도를 갖고 무슨 큰 잘못이 있는 선거제도라서 예컨대 독일식을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한나라당이 "속도전" 등을 외치면서 다수당의 올코트프레싱을 보여줘서 생긴 안타까운 마음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왜 이런 의석수 분포가 되었느냐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은 유권자들의 선택에서 찾는 것이 더 적절한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 대통령, 국회의원 선거제도의 개선은 필요합니다. 인용한 글이 주장하는 그런 잣대도 있고, 단순 과반수 원칙, 비례대표 의원수 증가, 정치적 지역주의 완화 등등의 여러 기준이 검토될 수 있겠습니다. 제가 보기에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에서 가장 시급하게 고려해야 하는 것은 정치적 지역주의 완화를 유도할 수 있는 제도 보완입니다. 국회의원 선거제도 개선을 추진하는 대의명분으로도 가장 돋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