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clearsea (청해) 날 짜 (Date): 2007년 12월 26일 수요일 오후 10시 46분 27초 제 목(Title): Re: 당청 분리와 제왕적 대통령 탈피 >틀렸다기보다는 관점이 조금 다른것 같습니다. > >'기본동력'이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열린우리당 창당과정동안 계속된 화두는 > >누가 여당 당권을 가지느냐의 문제였다고 생각하고, 진성당원을 뒤에 업은 > >신주류가 당내 힘겨루기에서 밀려서 창당을 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진성당원을 뒤에 업은 신주류”라고 표현하셨는데 정확한 표현은 “노당선자/대통령을 뒤에 업은 신주류”일 것입니다. 2003년 2월~5월 당시에 진성당원제는 개혁당 쪽의 초미의 관심사였고, 민주당에서는 당개혁의 한 방안 정도였습니다. 물론 구주류와 신주류 사이에 진성당원제에 대한 입장 차이도 있었습니다만 그것보다는 당개혁 방식(리모델이냐 신당이냐)과 관련된 권력투쟁 그 자체가 핵심이었죠. 진성당원제는 나중에 열린우리당이 구체화되면서 큰 이슈가 되었죠. 그 때 진성당원제를 “업은” 개혁당 쪽과 그 내용을 완화시키려는 신주류 쪽의 대립이 표출되죠. 신주류가 구주류에게 당내 힘겨루기에서 밀렸느냐 아니냐는 관점에 따라서 달라지겠습니다. 노무현과 신주류가 민주당을 리모델링하는데 만족할 정도였으면 당내 힘겨루기에서 밀렸다는 관점이 설득력을 가질 수 있는데, 제가 알기로는 리모델링 정도로는 안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습니다. 저는 힘겨루기에 밀려서 창당한 것이 아니고 후단협/구주류 측과 노무현 측의 근본적인 입장 차이가 이미 있었고, 그것이 신당 창당의 근원이 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만약 노무현 취임때 구주류가 쉽게 2선으로 퇴진했다면 신당창당 같은건 > >없었을거라고 보는데, 신당 창당과정에서 재보선 참패가 영향을 끼치긴 했으니까 > >관점에 따라 청해님 이야기가 맞을수도 있겠죠. > >아무튼 저는 열린우리당 창당과정이나 민주신당 창당이 단순한 당명바꾸기 이상의 > >정치적 의미가 (좋은 의미던 나쁜의미던 혹은 정치공학적이던)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 >그런데 솔직히 청해님이 뭘 주장하시려고 서두를 쓰신건지 잘 모르겠어서, > >제 관점이 청해님 관점과 뭐가 다른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관점이 약간 다른 것 같습니다. 제가 원 글에서 서두를 그렇게 시작한 것은 노정권에서 당청 협력이 잘 되지 않은 첫 주요 사례가 신당 추진과정이었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