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litic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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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Param (GoSeahawks)
날 짜 (Date): 2006년 1월 24일 화요일 오후 09시 28분 26초
제 목(Title): 펌/ 세금으로 양극화를 해소할 수 없다 


출처: 원출처는 모르겠고, 진보누리에 퍼올려진 글을 재펌. 

사회적 일자리는 대공황 위기때나 필요한 응급조치
세계화를 거부하고 '자주적'으로 굶겠다는 것인가?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7일 신년연설에서 “일자리 창출이 양극화해소의 
해법”이라고 했다. 전적으로 옳은 말씀이다. 일자리 창출을 위하여 중소기업을 
활성화시키고, 고학력 청년실업의 해결을 위하여 의료, 금융, 물류, 컨설팅 등 
양질의 일자리 창출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역시 옳은 말씀이다. 활성화시킬 
대상으로 중소기업만 꼽은 건 문제지만 어쨌든 전체적으로는 옳다.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사람을 아연하게 만든다. 작은 정부만 주장할 게 아니라 
보육, 간병, 교통, 치안 환경관리 등의 분야에 사회적 일자리를 만들어야 
한다면서 올해 사회적 일자리 13만개를 공급할 예정이라는 말에는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노대통령이 말하는 “사회적 일자리”라는 것은 예를 들어 비영리단체가 
장기실업자를 고용하여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맞벌이 부부의 미취학 아동을 
돌보는 따위의 일을 시킬 경우 정부가 1인당 70만원을 지원하는 형태의 
일자리다. 올해는 작년보다 2배 늘이겠다고 이미 예산이 잡혀 있기도 하다.

그런데 이 사회적 일자리라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 일자리일까 생각해보자. 쉽게 
말해 평생직업으로 삼을 만한 일인지 생각해 보면 된다. 도대체 어떤 사람이 
이런 일자리를 평생 직업으로 삼고 싶을까. 봉사하는 기쁨으로 이러한 일을 
하고 싶다는 사람은 논외로 치자. 우리는 지금 경제를 논하고 있으니까.

이러한 일자리는 본질적으로 “집에서 노느니 이런 일이라도 하겠다”는 
수준이고, 정부로서도 “그냥 돈을 줄 수는 없으니 이런 봉사활동을 하면 돈을 
주겠다”는 수준 아니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사회복지사업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회적 일자리 정책이 오히려 성스러운 일을 더럽힌다고 불쾌해 하기도 
한다. 사명감을 가지고 즐겁게 해야 할 일을 ‘취로사업’으로 전락시켰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심각한 것은 그 발상이다. 사회적 일자리의 본질은 차치하더라도, 
세금을 써서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터무니없다는 얘기다. 
뉴딜정책과 같이 정부가 예산으로 실업자를 구제하는 것은 대공황같은 
패닉현상이 발생하여 기업과 가계가 투자나 소비를 할 엄두를 내지 못할 때에나 
응급처방으로서 효용이 있다. 이런 때 외에는 예산으로 일자리를 만든다는 것은 
넌센스에 가깝다. 이는 케인즈(Keynes)의 마법에서 풀린 경제학자들에게는 
상식이 된 견해다.

우리의 실업률이 높고 불경기라 하나 극단적인 재정정책을 써야 할 대공황이 
아님은 물론이다. 노대통령도 정확하게 진단하였듯이 우리는 소비위축과 
내수시장 축소로 인한 장기적 저성장현상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그렇기에 
소비기업을 활성화시키고 문화, 관광, 레저 등의 서비스산업을 
육성·고급화시켜야 한다는 노대통령의 처방은 지극히 옳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세금으로 월급 주는 사회적 일자리를 늘려서 실업을 
줄이겠다고 주장하고 있으니 영 앞뒤가 맞지 않는다. 세금을 늘리겠다면서 
어떻게 소비위축, 내수시장 축소 현상을 피할 수 있겠는가. 어려운 
경제학이론을 동원할 것도 없이 100원 벌어서 세금 30원 내고 70원을 쓰다가 
세금 40원을 내면 소비가 위축되고 그래서 내수시장이 축소될 것이 뻔하지 
않은가 말이다.

노대통령은 기본적으로 세금은 많이 거둘수록 좋은 것으로 보는 듯하다. 이번 
신년사에서도 그런 생각이 묻어나지만, 노대통령이 지난해 8월 25일, KBS에 
출연하여 “우리나라의 조세부담률은 19%인데 부담률이 높을수록 건강하고 좋은 
것”이라면서 조세부담률을 “1%라도 올리는 노력을 통해서 우리 사회가 골고루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언명하였으니 말이다. 

노대통령은 높은 조세부담률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철저한 복지정책을 폈던 
북유럽의 나라들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 같다. 사실 우리가 학교에 다닐 때 
북구의 복지국가를 지상낙원으로 배웠다. 그런데 이런 복지정책의 폐해가 
드러남에 따라 이제는 영국병이나 독일병으로 불리면서 치료대상으로 
전락했는데, 노대통령은 언제적 얘기를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한편, 노대통령은 일할 능력이 없거나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약자들에 대하여 
국가가 보호하는 사회안전망 확충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전적으로 동감이다. 
바로 복지로 보호하여야 할 대상이다. 이러한 사회적 안전망은 우리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과제이기도 하다. 

복지는 바로 여기까지다. 일할 능력이 있고 혼자 감당할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복지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일할 기회가 필요한 것이다. 힘들게 
일하느니 편하게 실업수당 받는 게 좋다는 사람이 많은 사회라면, 여기서 
실업수당은 복지가 아니라 마약일 뿐이다. 이게 독일병으로 대표되는 
복지병이다. 조세부담률이 높을수록 좋은 사회라고 보는 노대통령의 견해는 
이런 복지병에 걸릴수록 좋다는 말이 되고 만다.

일자리를 창출하려면 세금을 늘릴 것이 아니라 줄여야 한다. 복지도 일할 
능력이 없는 사람에게는 늘려야겠지만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는 줄여야 한다. 
이것이 세계화시대의 생존 전략이다. 세계화가 좋든 싫든 우리에게 세계화의 
대세를 거스를 능력은 없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은 북한처럼 문을 걸어 
잠그고 세계화를 거부하면서 ‘자주적’으로 굶던가, 아니면 아일랜드처럼 
세계화에 앞장섬으로써 유럽의 지진아에서 유럽의 총아로 거듭나든가, 둘 중의 
하나다. 

이런 세계화 시대에 세금을 자꾸 늘리는 것은 들어오려는 외국기업은 막고 
국내기업은 외국으로 몰아내는 일이다. 바로 세계화를 거부하는 일이고, 
일자리를 줄이는 일이다. 이렇게 계속하면, 몇 십 년 안에 남북한이 
‘우리끼리’ 굶고 앉아 있을지도 모르겠다.

세금으로 일자리를 창출하고 세금으로 양극화 해소하겠다는 대통령, 세금을 
늘려서 복지병이 걸려야 건강하고 좋은 사회라는 대통령의 연설을 들으면서 
딱하다는 생각만 든다. 아니, 딱한 것은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이겠다. 양극화 
해소의 유일한 방법은 경제를 활성화시켜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에 있고, 
그러려면 오히려 세금을 줄여야 하는데, 대통령은 자꾸 늘리자고 하니 이 딱한 
국민들은 어찌할꼬.

이재교 (변호사,법학박사)




That old law about "an eye for an eye" leaves everybody blind. The time is 
always right to do the righ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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