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claudia (가 아님...맧) 날 짜 (Date): 1998년03월16일(월) 23시50분31초 ROK 제 목(Title): 우리에게 에밀졸라는 없는가? 어제(일요일) SBS 오후 7시에 문성근이 진행하는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라는 프로그램을 보고 어나니에 있는 몇 글들을 보니, 예전에 키즈 에서 보았던 이런 우스개가 떠올랐다... 김옥균이던가 천상에 올라가서 우리나라에도 천재과학자들 보내달라고 옥황상제에게 졸랐다던데... (기억이 가물하니 이야기가 잘 안맞아도 용서하시길... ^^) 옥황상제가 그 졸라댐에 우리나라에 아인슈타인, 퀴리 부인, 에디슨 같은 역사상 과학기술의 천재 5명을 보내주기로 했댄다... 한 명도 아니고 다섯명이라는 말에 김옥균은 무척 기뻐서 이제 우리나라도 세계 일류 국가로 발전하겠구나 했는데... 그런데, 한참을 지나 김옥균이 천상에서 우리나라를 굽어보니, 우리나라가 세계 일류 국가로 발전하기는 커녕 다섯명의 천재들은 남북한의 꽉막힌 사회에서 모두 사회부적응자로 전락했데나 하던 우스개였었다... TV를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이 날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을 다루었다... 유서와 본인의 필적 같으니 다르니하면서 진보운동권이 분신자살을 조장하다고 진보운동권의 명예에 흠집을 내려던 6공시절 유명한 시국사건의 하나인 유서대필 사건을 모르시는 분은 없을 거고... 프로그램에서는 애초부터 검찰이 유서대필로 결론을 정한 채 폭력과 진실에 대한 왜곡, 은폐수사로 일관했던 모습을 부족하나마 보여 주고, 당시 사건에 연루되었던 당사자들의 증언과 심정을 소개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는 우리의 유서대필 사건을 필적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무고하게 간첩 혐의을 받은 프랑스의 드뤼피스 사건과 비교했다... 드뤼피스 사건 재심의 기폭제 역할을 한 "나는 탄핵한다"는 논설을 발표 하고, 이 때문에 망명까지 해야했던 에밀 졸라도 아울러 소개했다... 결국 드뤼피스 사건을 풀어냄으로써 프랑스의 민주주의가 더욱 성숙하게 되었음도... 그리고, 문성근은 드뤼피스 사건의 에밀 졸라처럼, 한국의 유서대필에 대한 에밀졸라는 없는가라는 물음을 던진다... 그 물음이 주는 여운을 생각하고 있는데, 어나니의 글들을 보게되니 나는 저 위의 우스개가 떠올랐다... 우리에게 에밀 졸라가 있었다면... 혹 유서나 대필한 빨갱이라고 조롱 받으며 고통 속에서 세상에 적응하지 못하고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 이것도 자세히 보지는 않고 TV 틀어논 것을 옆귀로 듣기만해서 기억이 가물 한데, 얼마전 TV에서 1등만 추구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우리나라는 금메달만 인정해 준다"고 말한 동계 올림픽 쇼트트랙에서 은메달을 따고도 실망하는 남자계주 선수의 발언을 계기로 짚어본 프로그램도 있었다... 세계 초일류가 어떻고 하면서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모 기업의 광고도 도마 위에 올랐던 것 같고... 어나니에서 빨갱이가 어떻고하고 조롱했던 사람들 치고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과학기술 방면에서 훌륭한 나라가 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고, 그것이 "창조... 창조..."만 외치면서 연구원들의 머리를 쥐어짜낸다고 되는 것이 아니라, 과학기술 외에도 우리 사회의 문화가 전반적으로 튼튼하고 포용력을 가져야 가능함을 모르지는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이 사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고자하는 진보진영 사람들이라고 해도 인간인 만큼 무슨무슨 잘못을 않을리는 없겠다... 그런 잘못과 왜곡된 정보과 편향된 시각으로만 그들을 바라보는 것이 누구누구가 좋아하는 세계 초일류 국가가 되는데는 해가 되었으면 되었지 결코 득이 되지 않음을 생각할 수는 없을까... 우리의 진보운동권의 수준이 1등이 아니고 20등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가 세계 일류국가가 되기 위해서는 한 둘의 1~2등이 아니라, 그런 20등을 포용하는 든든한 20등들의 저변이 먼저 필요하다는 것도 생각했으면... 끝으로, 아시는 분들도 많겠지만 드뤼피스 사건에 대한 두산백과사전(CD-ROM 판)의 설명을 첨부... 참... 글을 적다보니 limelite도 마치 무슨 일류국가 컴플렉스에 걸린 사람 처럼 적었는데, 오해 없으시길... 이런 말 안적어도 다들 알아서 이해하시는 줄 알았는데, 보니까 좀 주의가 필요한 것 같아서... ^^ - limelite <Dreyfus Affair>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유대인 사관(士官) 드레퓌스의 간첩 혐의를 둘러싸고 정치적으로 큰 물의를 빚은 사건. 1894년 10월 참모본부에 근무하던 포병대위 A.드레퓌스가 독일대사관에 군사정보를 팔았다는 혐의로 체포되어 비공개 군법 회의에 의해 종신유형의 판결을 받았다. 파리의 독일대사관에서 몰래 빼내온 정보 서류의 필적이 드레퓌스의 필적과 비슷하다는 것 이외에는 별다른 증거가 없었으나 그가 유대인이라는 점이 혐의를 짙게 하였던 것이다. 그 후 군부에서는 진범이 드레퓌스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는 확증을 얻었는데도 군 수뇌부는 진상 발표를 거부하고 사건을 은폐하려 하였다. 드레퓌스의 결백을 믿어 재심(再審)을 요구해 오던 가족도 진상을 탐지하고, 97년 11월 진범인 헝가리 태생의 에스테라지 소령을 고발했지만, 군부는 형식적인 신문과 재판을 거쳐 그를 무죄 석방하였다. 그러나 재판결과가 발표된 직후 소설가인 E.졸라가 공개한 ‘나는 탄핵한다’라는 제목의 논설로 사건은 재연되었다. 졸라는 드레퓌스에게 유죄판결을 내린 군부의 의혹을 신랄하게 공박하는 논설을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장 형식으로 98년 1월 13일자 《오롤》지에 발표하였다. 이를 계기로 사회여론이 비등하여 프랑스 전체가 ‘정의·진실·인권옹호’를 부르짖는 드레퓌스파 또는 재심파(再審派)와 ‘군의 명예와 국가 질서’를 내세우는 반(反)드레퓌스파 또는 반재심파로 분열되었다. 전자는 자유주의적 지식인을 비롯하여 사회당·급진당이 가담하여 인권동맹을 조직하였고, 후자는 국수주의파·교회·군부가 결집하여 프랑스 조국동맹을 결성 하였다. 마침내 이 사건은 한 개인의 석방문제라는 차원을 넘어 정치적 쟁점으로 확대되면서 제3공화정을 극도의 위기에 빠뜨렸다. 98년 여름 군부는 어떤 새로운 증거서류에 의거하여 드레퓌스의 유죄를 확언하였으나, 그것이 날조로 판명되고, 체포된 증거서류 제출자는 자살함으로써 반(反)드레퓌스파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 이에 정부도 재심을 결정했으며, 또 이 때 반드레퓌스파에 대항하면서 공화정 옹호를 내세운 발데크 루소내각이 성립되어, 사태는 재심파에게 유리하게 돌아갔다. 99년 9월에 열린 재심 군법회의는 드레퓌스에게 재차 유죄를 선고하였으나, 대통령의 특사로 석방되었다. 무죄 확인을 위한 법정 투쟁을 계속한 끝에 그는 1906년 최고 재판소로부터 무죄판결을 받고 복직 그 후 승진도 하였으며, 프랑스군부도 95년 9월 사건 드레퓌스의 무죄도 공식으로 인정하였다. 자유주의적 재심파의 승리로 끝난 이 사건은 프랑스 공화정의 기반을 다지고, 좌파 세력의 결속을 촉진하는 계기가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