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Convex (Gambler) 날 짜 (Date): 1994년07월16일(토) 04시28분19초 KDT 제 목(Title): 반공 이데올로기.. 언더비비에 올려져 있는 내용을 그대로 올립니다. 사실 이런 이야기는 어떤사람에게는 다 아는 얘기가 될 것이고 그래서 따분하기도 할 것이다. 한편으로는 처음 들어보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그런 사람에게는 믿어지지 않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수십년 전부터 기자들 사이에서 정설로 인정받고 있는 이야기이며, 몇몇사건에는 생존해있는 증인도 있다는 사실을 밝히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한다. 우선 어릴 때 받았던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부터 짚고 넘어가야겠다. 반공소년 이승복 어린이.. 도덕교과서에 단골로 등장했던 이야기다. 무장공비에게 죽었다는 사실은 맞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라고 외쳤다는 증거는 아무데도 없다. 그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 현재 ㅈㅅ일보 데스크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 당시 다른사람이 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갈 즈음에 특종을 내야겠다는 공명심으로 허위보도를 한 것이다. 마침 반공교육이 필요할 때라서 그 사람은 높으신 분들로부터 엄청난 칭찬을 받았고 그 이후 출세가도를 달리게 되었다. 살신성인의 강재구 소령.. 이것 역시 도덕시간에 배웠던 이야기. 이야..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 다 있다니.. 부하의 실수로 인하여 참으로 아깝게 갔다.. 다들 그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부하의 실수 아닌 강소령 자신의 실수였고 (강소령 -- 당시는 대위-- 은 수류탄 안전핀 뽑은뒤 잠시 놓았다가 재빨리 다시 줏어서 던지는 위험한 놀이를 했다한다. 그것을 주으려던 손이 미끄러지면서 수류탄을 놓치게 되었고 이판사판으로 수류탄을 덮치게 되었다 한다. 군에서는 군 사기 앙양의 목적으로 스토리를 조작하게 되었던 것이다. 위장간첩 이수근(?) 사건.. 북에서 내려온 간첩 이수근이 자수를 했는데 위장으로 전향한뒤 또 간첩활동을 하려 했다는 것인데.. 나중에 죽기전 그랬다고 한다.. " 나는 남도 싫고 북도 싫다.." 그 간첩은 제대로 전향을 했는데 공명심에 불타던 정보부장이 공안정국을 유리하게 이끌고자 조작한 사건이라 한다. 북한의 선전중에 "남파된 간첩은 자수를 해도 죽이더라.." 는 말이 그 때만큼은 사실이 되었던 사건이다. 거물간첩 황태성(?) 사건.. 5.16 직후 민주공화당을 창당할 당시 배후조종을 했다고 하는 일설이 있는 거물이다. 사실상은 김일성이 보냈던 밀사였는데 민주공화당이 공산당 지령을 받는듯이 보여지게되자 미국측에서 간섭하려 하게되었다. 그것에 대한 해명으로 박정희장군은 거물간첩으로 몰아세워 사형시켜버렸다. 박정희 대통령 친형의 절친한 친구였다고 한다. 김일성이 그렇게까지 밀사를 보낸 이유는 박정희 장군이 여순반란사건에 깊이 관련 되어서 사형당할뻔 했던 좌익전력이 있기 때문이었다. 백선엽 장군이 목숨을 살려주어서 나중에 6.25 일어나자 다시 장교로 복무하게된다. 그 때의 은혜 를 갚고자 인천을 백선엽 인엽 형제가 주물럭 거리도록 해주었다. (선인학원..) == == ==== 그리고 해방전까지는 만주에서 일본육사(만주군관학교) 출신으로서 우리 독립군을 때려잡는 일을 하게된다. 좌익운동도 결국은 친일파라는 것을 모면하기 위하여 했던 것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좌익운동을 했다면 나중에 좌익을 그렇게 모질게 탄압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친일행적때문에 독립군 장교출신이던 장준하에게 늘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은 그에대한 탄압으로 나타나게된다. 박정희 대통령은 늘 4인방체제를 굴리면서 자기에게 충성경쟁을 하도록 만들었다. 2인자 자리를 특정인에게 주는 법은 없었다. 그래서 김종필은 늘 불편한 심정으로 보냈다고 한다. 원균과 이순신의 관계도 조작하여 그냥 영웅이었던 이순신 장군을 성웅으로 만들기 위하여 원균을 나쁜놈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렇다고 이순신장군을 깎아내리겠다는 의도는 아니고.. 당시는 군인중에서 하나의 영웅을 부각시킬 필요가 있었나보다. 긴급조치 위반혐의로 수많은 인재들이 목숨을 잃거나 아까운 청춘을 썩히게 했다. 가령 이철의원 같은 경우를 보자. 김일성을 만나고 왔다는 죄목으로 사형선고까지 받았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5공때도 사형이 가능했었는데 왜 그런일은 없었고 나중에 85년도 국회의원 선거까지 나와야 했을까? 많은 재일교포 학생들이 한국대학으로 유학왔다가 간첩으로 몰려 죽거나 오랜기간동안 감옥에 갇혀있는 경우가 많았다. 간첩조작하는 일은 정보부에서 식은죽 먹기였다. 일단 무조건 두들겨 패고 보는거다. 그리고는 당근과 채찍을 동반한 수법으로 "너 참 힘들지? 나도 사실 힘들어.. 너 했다고만 불어라. 그럼 편하다. 했다고만 하면 정상참작 해줄께.." 그 때 넘어가서 자술서 (정보부에서 조작한..) 에 싸인해버리면 그것이 바로 재판할 때 확실한 증거물이 되어버린다. 김근태같은 사람은 끝까지 법정에서 고문당했다며 외신기자들 보는 앞에서 고문 당했던 흔적을 옷까지 벗어가며 보였기에 망정이지.. 그런 힘도 없이 고개를 떨구며 저항도 못하고 억울한 옥살이 당했던 사람이 한두사람이 아니다. 범양상선이니 대우니 하는 것들이 다 대통령이 뒤를 밀어주어 커 나온 것들이다. 당시에 뉴스위크니 타임이니 하는 잡지들은 검열을 받고난뒤 시중에 나왔다. 가위질이 되거나 매직팬으로 찍찍 그어진 문장들이 여기저기 눈에띄는 상태로.. 시청앞 한복판에서 일어난 일도 외국있는 교포들은 알더라도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일반 대중들은 모르는 상태였다니 어느정도인지 알만하겠는가? 솔방울로 수류탄 만들어서 던졌다는 김일성에 대한 이야기나 이승복어린이 이야기나 다 체제를 확고히 하기위한 조작이었다. 반공 이데올로기 교육의 희생자가 아니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 정치학교수 서대숙 교수는 이렇게 얘기했다고 한다.. "김일성에 대한 우상화 작업 때문에 사실조작이 너무 많고 또 남한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하여 더 신빙성 없는 이야기들이 많아서 정확히 평가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몇년전 소련(?)에서 나온 자료에 의하면 김일성은 어릴 때부터 독립운동을 한것이 사실이다. 소련군소좌로 있기전에는 중국군에 편입되어 있었다 한다. 어릴 때의 이름이 김성주인것은 맞다. 하지만 그것이 가짜 김일성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아니한다. 이주일의 본명이 정주일이라 해서 그가 가짜 이주일이 아니듯이.. 독립군 중에 가명을 쓰는 사람이 꽤 있었다한다. 본명을 쓰면 그걸로 추적을 하여 가족에게 해꼬지를 할 수도 있고 또 신분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김일성 행세를 하는 사람이 꽤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어느 누구도 진짜 김일성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만큼 커다란 활약을 못했다 한다. 지금의 김일성이 가짜라면 진짜 김일성에 대한 기록들이 나와도 벌써 나왔어야 한다고 한다. 월북한 지식인이 100만이 넘고 200만까지 될 수도 있다고 추정한다면 믿을까? 지난주 미국신문(시카고트리뷴)에 난 이야기다. 대부분이 지식인이었고 반면 월남한 사람들은 비슷한 숫자이고 대부분이 지주계급이거나 종교인이었 다고 한다. 월북작가들에 대한 작품들이 해금된것이 10년이 채 되지 않을거다. 제자들과 동료교수들까지 끌고갔던 당시 서울대 화학과(?)교수도 있다. 일제시대 (무장)독립투쟁의 축은 좌익세력이었다. 그들이 빨갱이었다고 하기보담은 조국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공산주의를 이용했다고 보는 편이 타당할 것이다. 홍범도장군 하면 박통시대에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 였는데.. 신출귀몰하고 김좌진장군의 청산리 전투도 실상은 홍범도 장군과 연합작전한 결과였다고 한다. 나중에 홍장군은 소련으로 건너가 레닌 훈장까지 받았다고 하는데 그 사실때문에 홍범도 장군 이야기는 별로 박통 때 들어보지 못하게 된다. 그럼 친일파들이 살아남는 길은? 일제시대때 독립투사들을 잡아들이고 고문하고 했던 조선인 순사들 대부분이 나중에 경찰로 다시 복귀하게 된다. 이승만은 그들을 이용했다. 친일행적으로 주눅이 들어있던 친일파들의 손을 하나하나 잡아가면서.." 외국에서 독립운동하면 다냐? 오히려 이 땅에서 조상 묘를 지키고 있었다는 것만 해도 큰 애국이야.. 기죽을 필요 하나 없어.." 그러자 그들은 감동하여 이승만에게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한다. 그것이 바로 자기들의 살길이기도 했다. "우리는 반공이니 좌익이니 하는 것은 모릅니다. 다만 이승만박사님이 하는 행동이 옳다고 믿으며 따라하는 것일 뿐입니다.." 아직까지도 떵떵거리고 잘사는 집안들이 많다. 그럴듯하게 독립운동 했다고 조작하면서.. 반면 진짜 독립운동 했던 사람들은 달동네 사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독립운동의 여파는 3대가 간다고 했다. 얼마전 돌아가셨던 청산리전투 에 참가했던 최후 생존자도 잘 곳이 마땅치 않은 상태로 고생고생했다. 당시 대학생들은 좌익세력이 더 많았다고 한다. 좌익쪽 교수가 아니면 인기가 없었다고 얼마전 돌아가신 이병주 선생이 회고하였다.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전쟁"을 토대로했던 PBS특집에서도 6.25때 인민군이 서울을 점령하자 남한 대학생의 60%이상이 지지했다고 밝히고 있다. 좌익세력은 김일성이 키운 것이 아니라 일제시대에 이미 자생하고 있었다고 보아야한다. 아니면 그 훨씬 이전 갑오농민전쟁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