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litics ] in KIDS 글 쓴 이(By): claudia (가 아님...맧) 날 짜 (Date): 1997년12월18일(목) 00시05분16초 ROK 제 목(Title): 고민되는 밤... 게스트로 들어와 사리에 맞지 않는 이야기를 하면서 꼭 자신은 누구 지지자라고 밝히는 사람들은 정말로 누구를 위해 그런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 하여튼, 이제 때도 다 되어가니 가벼운 에세이나 하나... (근데, 가벼운가? 머리써서 생각해야 할 글은 아니니 가볍기는 하겠군) 내가 처음 대선투표를 하던 때는 87년이었는데, 그 때 나는 군대에 있었고 부재자 투표를 통해 대선에 참여했었다... 예전에도 이런 이야기를 한 번 했던 것 같은데, 그 때 누굴 찍었냐고? 노태우... 당시 말단 소총병이었던 나는 우연한 기회에 사단 사령부에 며칠 동안 가 있게 되었다... 그 때 사단 사령부 사람들의 내무반에서도 대선 이야기가 많았는데, 대부분이 문제의식이 깊었던 사람들이 아니라서, 군부재자 투표가 치사하다는 정도로만 이야기하고 있었 다... 예를 들어, 사단 보안대장이 치사해서 부재자 투표 기표기의 줄을 짧게 만들어 1번 외에는 찍기 힘들게 만들었다는 둥... 그런 이야기들이었다... 그러면서, 수군수군하는 이야기가 누구를 찍으나 소용이 없다는 것이다... 기표소에서 누굴 찍던 결국 제대로 된 투표함이 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단지, 노태우 득표율이 낮으면 지휘관 문책사항이 되니까 지휘관들이 닥달을 하는 것이란다... 당시까지 서슬이 퍼렇던 군부독재의 그늘에 있었고, 납득못할 부재자 투표의 지지율에 대한 소문은 파다했던터라, 나도 이 수군거리는 이야기를 사리에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지휘관들이라고 전부 노태우만 지지하랴만, 당시는 누구도 정권교체에 대해서 희망을 가지지 않았고 (최소한 군에서는),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자들에 대해 속 좁은 군사정권이 어떤 치졸한 보복을 할지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군대있는 동안 소위 찍히지 않으려고 부하들 닥달하는 것을 꼭 뭐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내가 중대로 돌아오자마자 중대장 면담이 있었다... 중대장이 일일이 사병들을 면담해 노태우를 찍도록 권유(?)했던지 중대 분위기가 상당히 가라앉아 있었다... 누구는 끝까지 노태우 찍기를 거부해 얼차레(기합)을 받았다는 이야기도 들어가며 중대장실에 들어갔다... (아마도 군사정권 시절 북한의 남침이라는 것이 있었다면, 가장 적기는 선거 때였을 것이다.) 나는 여러 이야기를 하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쉽게 나의 결론을 이야기했다... 들은 바가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괜히 반대해서 중대장님만 중간에서 곤란하게 하지는 않겠다고... 사단사령부에서는 사병들도 그런 것을 아느냐고 물어보는 중대장... 어째거나 까다로운 상대 하나가 자발적으로 포기하니 한시름 놓았을 것이다... 중대장 옆에는 형식적으로 천이 둘러진 기표소가 있었고, 나는 주저 않고 기표소로 걸어들어가 기표기를 들어 1번을 조준... 줄이 짧지는 않더군... 그런데, 그 순간 왜 손이 떨렸을까... 합리적인 결론이라고 항상 선뜻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나보다... 떨리는 손을 진정 하기 위해 입을 꽉 다물어야 했고, 그 상태에서 1번을 찍었다... 기표소를 나올 때는 그래도 가벼워 보이는 표정을 지으면서 중대장 에게 표를 넘겨주었다... 얼굴 표정과는 좀 다르게 손이 떨리는 것을 중대장도 느끼는 것 같았다... 얼마 후 내무반 TV에서 국민들의 지지에 의해 당선됨을 감사하는 노태우와 그에 환호하는 군중들을 볼 수 있었다... 92년 대선 때 이제 나는 사회인이었고, 전체적인 선거 분위기도 많이 바뀌어서 이제는 누구를 생각하느냐와 누구를 찍느냐의 차이로 고민할 필요는 없었다... 나는 주저없이 민중후보(당시가 백기완씨 던가? 하여튼)라는 사람을 찍었다... 아마도 주변의 마산친구 두녀석이 가위바위보해서, 누구는 김대중 누구는 백기완씨 찍었다던 때가 그 때였나보다... 상황이 많이 호전되었음에도 나는 여전히 여당 아니면 당선되기 힘들다고, 즉 김대중 쪽이 당선되기는 어렵 다고 보았었고, 실제로 백기완씨 표가 김대중 쪽으로 전부 갔다고 하더라도 김대중이 당선되지는 않았을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그리고, 이번 대선... 이제 나야 세상 흐름에 대해서는 거의 잘 모르게 되었지만, 관성적으로 권영길씨를 찍기로 일찌감치 정했다... 근데, TV 토론회에서 본 권영길씨... 아무래도 카리스마가 좀 부족한 듯... 백기완씨 때는 그저 말이 시원시원해서 백기완씨 찍는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였는데, TV 토론회에서 본 권영길씨는 외려 허경영이라는 사람보다 밀리는 듯 했다... 하지만, 발언의 내용을 고려해 볼 때 아무래도 제한점이 많은 TV 토론회에 적응을 잘못한 듯 했고, 다른 후보-소위 빅3를 포함해서-들하고 소위 1:1로 치고받기식으로 토론을 하면 밀리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째거나, 인물이 양이 차지는 않지만, 민주주의는 내세워진 인물 보다 그 뒤에 선 당(남한에는 노동자 당이 없어 권영길씨 뒤에는 당이 없다... 아마 노동자 당이 생긴다면, 프리버드나 한국논단 같은 잡지는 남조선 노동당이라고 비아냥거리겠지)이 중요하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그의 인물됨이 나의 판단에 크게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 밤을 고민스럽게 하는 것은 권영길이라는 사람 때문이 아니다... 나를 고민스럽게 하는 것은 정권교체라는 또다른 우리의 묵은 과제 때문이다... 누구는 권영길표로 사표 만들지 말고 정권교체를 통해서 문제해결에 접근해야 한다, 또 누구는 정권교체라는 명목으로 김대중에게 가는 표는 의미없고 권영길표는 권영길에게 가야만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 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이분법적인 논리에 동의하지 않으며, 어느 쪽이나 장단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 말은 정권교체론자나 권영길 지지자의 전부가 이분법적 논리로 말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이런 상황인식에서 김대중이 확실히 우세하거나, 아니면 확실히 당선 가능성이 없다면 고민스럽지 않을 것이다... 대선정국 초기 상황에서 나는 확실한 김대중 우세로 생각했었고, 따라서 나의 선택에 망설임이 없었다... 한데, 이토록 어쩔 수 없나 싶게 갈수록 이회창 쪽의 추격이 집요해지면서, 선택에 갈등도 약간씩 생겨났다... 그러다가, 빅3의 마지막 TV 토론회... 이 토론회는 하이텔 어느 사용자의 "상황 끝"이라는 말처럼 상황을 명료하게 만들었다... 토론회 직 후 내 주변에서는 어딜보나 이회창은 당선 가능성에서 멀어졌고, 나도 개운하게 권영길 선택을 생각할 수 있었다... 그런데... 오늘 보면... 이 보드를 보나 주변 다른 곳을 보나 상황은 그리 명료하지 않은 것 같다... 나에게 떨리는 손으로 거짓으로 표를 찍게 만들고, 노태우를 환하게 웃게 만들었던 그 사람들이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무시하지 못할 사람들이고, 아직도 나를 고민스럽게 만드는 사람들인 것이다... 참 엿 같은 놈의 세상이다... - limeli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