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parsec ( 먼 소 류 ) 날 짜 (Date): 2000년 9월 22일 금요일 오후 11시 48분 37초 제 목(Title): 백본 노자 24장에서 위에서 소개한 백본 사이트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http://myhome.shinbiro.com/~fukasci/laozi/silk24.html) -------------------------------- 企者不立의 "企"가 백본에서는 吹(炊)로 돼 있고, 이것은 "잘난체하다"는 뜻이라고 풀이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企의 잘못이라고 하는 설도 있는 모양입니다만... "잘난체하는 사람은 굳건히 서지 못한다"고 풀이해도 말은 되는 것 같습니다. 더우기 백본에는 "과자불행"부분이 빠져 있어서 企라고 해야 어울린다고 말할 근거가 돼 줄 댓구도 없으니 말입니다. ('불다'라는 뜻의 단어가 '자랑하다'라는 뜻으로 전용되는 경우는 영어의 blowhard와 braggart가 동의어라는 데서도 그 예를 찾아볼 수 있다는 말도 있군요) 그리고 마지막 줄의 "有道自不處"도 백서에는 道 대신 欲으로 돼 있지만 작은 도장 등에서 道와 欲의 글씨체가 비슷한 데서 오는 착오일 거라고 설명돼 있습니다. 欲을 그대로 써서 이것을 "야망을 가진 사람은 그런 것들에 거하지 않는다"라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고, "욕심이 있는 사람은 (도에) 거하지 않는다"라고 풀이하는 사람도 있답니다. 왕본등에 의거한 해석은 "도를 지닌 사람은 (앞에서 말한 구더더기들)에 거하지 않는다"가 아무래도 문맥과 어울려 보입니다. "도를 지닌 사람은 머물지 않는다"라는 해석도 도덕경 전체 내용과는 어울리는 해석이지만 이 장의 이 위치에선 그다지 문맥과 어울리지는 않는 것 같군요. 이 부분을 문맥과 어울리게 만들어 줄만한 해석방법이 있을까요? Henricks는 또 "物或惡之"를 "物; 或惡之." 로 잘라서 "이것을 어떤 사람은 싫어한다"라고 해석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par·sec /'par-"sek/ n. Etymology: parallax + second Date: 1913 : a unit of measure for interstellar space equal to the distance to an object having a parallax of one second or to 3.26 light-year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