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parsec ( 먼 소 류 ) 날 짜 (Date): 2000년 6월 30일 금요일 오전 12시 04분 57초 제 목(Title): 노자 20장 해석 絶學無憂, 배움을 그치면 근심이 없습니다. 唯之與阿, 相去幾何, `예'와 `응'의 차이가 얼마이겠습니까? 善之與惡, 相去若何,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이겠습니까? 人之所畏, 不可不畏, 남이 두려워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까? 荒兮其未央哉, 허망하기가 그지없습니다. 衆人熙熙, 如享太牢, 如春登臺, 사람들은 다 즐거워하기를 봄에 큰 소를 잡아 누각에 오르듯이 하는데(제사지내러?) 我獨泊兮其未兆, 如영兒之未孩, 나만 홀로 담담하여 표정도 없고 (아직)웃을 줄 모르는 어린아기 같습니다. 래래兮若無所歸, 돌아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고단함이여, 衆人皆有餘, 而我獨若遺, 사람들은 모두 여유가 있는데 나 홀로 뒤쳐진 듯합니다. 我愚人之心也哉, 沌沌兮, 나는 어리석은 자의 마음과 같아서 흐리멍덩함이여, 俗人昭昭, 我獨昏昏, 세상 사람들은 총명한데 나만 홀로 어리석고, 俗人察察, 我獨悶悶, 세상 사람들은 똑똑한데 나만 홀로 아둔합니다. 澹兮其若海, 澹兮若無止, 고요하기는 바다와 같고 움직이기는 그치지 않는 듯합니다. 衆人皆有以, 而我獨頑似鄙, 사람들은 모두 (행동의)이유가 있는데, 나는 홀로 고집스러워서 촌스러운 듯합니다. 我獨異於人, 而貴食母. 나는 홀로 사람들과 다르니 이것은 오직 어머니 자연을 먹고 살기 때문입니다. 조금 자의적으로 해석한 부분도 있지만 제가 원문을 이해한 방식을 반영해서 번역했습니다. 생존경쟁의 전장에서 물러나 홀로 유유자적하고 있는 사람을 묘사한 것처럼 보이는데, 요즘 세상에 어디 이렇게 살기가 쉽겠습니까만 어느 스님에게서 들은 얘기처럼 이렇게 한두 사람씩이라도 빠져준다면 나머지 사람들이야 조금 편해질지도 모르죠. 노자 시대에도 드물었던(어쩌면 정말 노자 혼자만이 실천할 수 있었던) 이런 삶의 방식이 수십년동안 남과 경쟁하며 살아가는 법만 배운 현대의 우리들에게 가능할 것 같지는 않군요. 그저 비유적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으려나...? 거기 숨어계신 고수님들, 뭐라고 한 teaching 베풀어 주시와요. par·sec /'par-"sek/ n. Etymology: parallax + second Date: 1913 : a unit of measure for interstellar space equal to the distance to an object having a parallax of one second or to 3.26 light-year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