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chaconne (샤콘느) 날 짜 (Date): 1999년 11월 12일 금요일 오후 07시 34분 50초 제 목(Title): 극단적인 허무주의는 보수화된다 냉소주의와 허무주의는 구별해야 합니다. 냉소주의자들은 현실에 발을 담그지 않습니다. 단지 싸늘한 시선으로 현실을 바라보고 한두마디 쏘아 붙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현실에 책임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나라에는 정치에 관한한 냉소주의자가 유난히 많습니다.) 냉소주의자! 그들은 자신의 무기력감을 강한 자존심으로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 니힐리즘 이라고 하는 것이 삶에 대한 냉소적, 혹은 한발 물러선 > 객관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나요? 이건 패배적인 허무주의, 즉 비판정신과 현실적 추동력을 상살한 부정적인 의미인 것 같습니다. 허무주의에 있어 중요한 점은 허무함을 느낀 그 다음에 어떤 행동을 취하는가의 차이입니다. 현실의 고통과 허무감으로 좌절하여 패배주의에 빠지는 것과 그 허무를 딛고 또 다른 희망을 찾는 것은, 동일한 상태에서 출발했지만 완전히 상반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1. F.니체는 허무주의자가 아니다. ~~~~~~~~~~~~~~~~~~~~~~~~~~~~ 니체의 철학을 허무주의로 귀결시키는 것은 부당하다고 봅니다. 또한 그의 철학을 전체주의와 연결시키려는 시각은 오해로 판명되고 있습니다. 니체 철학의 핵심은 신의 없어져버린 현대의 허무를 극복하는 데 있습니다. 이는 도스도예프스키가 '신이 없다면 모든 것이 허용될 것이다' 라고 표명한 것과 상응하는 것입니다. 니체는 "디오니소스"란 고삐 풀린 열정의 정신이 아니며, 고통과 공포를 감내하는 생에 대한 긍정의 상징이라 하였습니다. "문제는 고통의 의미이다. ...... 비극적 인간은 가장 혹독한 고통도 긍정한다." ~~~~~~~~~~~~~~~~~~~~~~~~~~~~~~~~~~~~~~~~~~ [힘에의 의지] 육체적,정신적 고통속에서도 냉소주의나 환락에 빠지지 않고 삶을 긍정으로 이끌어내는 니체의 초인적 의지의 구현이 바로 '짜라투스트라'입니다. 2. 실존철학은 염세주의가 아니다. ~~~~~~~~~~~~~~~~~~~~~~~~~~~~ 실존철학은 개인의 사회적 책임과 행동을 강조하는 철학입니다. ~~~~~~~~~~~~~~~~~~~~~~~~~~~~~~~~~~~~~~~~~~~~~~~~~~~~ '존재는 본질에 앞선다' 는 말로서 황량하고 고독한 (신이 없기에) 세계에 던져진 존재인 개인(주체)에게 규정된 것이나 주어진 것 보다는, 주체의 자유로운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는 철학사조입니다. (물론 실존철학내에는 현상학에 가깝고 우파적인 메를로 퐁티, 현실참여적이며 맑스주의에 관심을 보인 사르트르, 그리고 중도적인 입장의 A.까뮈 등 다양한 조류가 있습니다.) '여성은 여성으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여성으로 길러진다' 는 시몬느 보봐르의 전투적인 페미니즘도 이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사르트르의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를 참고하면 좋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비판정신이 빠진 채 전후 세대에게 하나의 염세철학으로 탈색되어 수입되었고, 겉멋든 먹물사이에서 유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실존철학하면 프랑스 식민지였던 알제리의 독립투쟁을 옹호하는 데모를 하는 사르트르 보다는, 샤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 란 연극에서 졸리는 분위기에 잔뜩 인상을 쓰고 있는 배우를 떠오리게 됩니다. 가장 최근의 포스트모더니즘 논쟁 또한 비판정신이 상실된 채 수입되었습니다. 그래서 한때 압구정동 소비문화를 포스트모던하다고 추켜세우기도 했습니다. 고상하게 말해서 '담론'이지 '말잔치' 일뿐입니다. 3. 극단적 허무주의는 보수화된다. ~~~~~~~~~~~~~~~~~~~~~~~~~~~~ 극단적인 허무주의는 보수주의로 회귀합니다. 그리고 그 허무주의는 히피문화처럼 극단적인 개인주의의 색채를 띠거나, 이러한 사회적 혼란을 빌미로한 전체주의 형태로 나타납니다. 에리히 프롬은 [자유로부터의 도피] 에서 이를 심도 있게 분석했습니다. 유럽과 미국에서 학생운동의 정점이었던 68년 5월 사태의 주역들이 그 이후 좌파적 시각을 버리고 동양사상, 히피문화 등으로 후퇴한 것도 이러한 경향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이 허무적인 색채를 띠는 것도, 그가 그 유명한 일본의 전공투 세대에 속하기 때문이랍니다. 김지하, 황지우 등 열열히 민주화 운동을 했던 인사들이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사회주의 국가가 붕괴한 90년대 이후 허탈감에 빠져, 동양사상에 심취한 것이 그 예가 될 것입니다. (하여간 우리나라는 사회문화나 사상사적 면에서도 20-30년 이상 뒷쳐져 있습니다. 폐쇄적인 군사문화가 지연시켜 놓은 사회현상중의 하나겠죠.) 최근의 예로, 후기산업자본주의 사회에서 상업적으로 조작된 이미지가 현실세계를 압도하는 사회적 현상을 예리하게 분석했던 쟝 보드리야르의 경우를 들 수 있습니다. 그는 현대사회에서의 개인의 무기력함으로 인한 허무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정치적으로 보수화되었습니다. 결론적으로 자주 입에 오르내리는 이야기로 끝맺겠습니다. 수많은 젊은이들을 자살에 이르게 한 염세철학의 대표자 쇼펜하우어. 정작 그 자신은 73세까지 장수했습니다. chaconne : ykkim21@netian.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