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Konzert () 날 짜 (Date): 1999년 7월 11일 일요일 오전 01시 07분 56초 제 목(Title): 타인 헐뜯는‘반쪽 지식인’은 가라 시사저널 1999. 7. 9. 고대 유적과 신화를 연구하는 한 교수가 “요즘 젊은이들은 왜 ‘사건과 구조’ 같은 낯선 주제만 다루는가?”라고 물었다. 그런 데 ‘사건’이나 ‘구조’가 왜 낯선 주제일 까. 이 말들은 일상 생활에서도 자주 쓰는 말이 아닌가. 혹시 최근의 연구동향을 매도 하려는 그 교수의 강박 관념이 이 친숙한 단 어들을 낯설다고 말하게 한 것은 아닐까. 시대가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외면한 채 자신 의 탐구 주제에 파묻힌 사람들은 때때로 이 런 말로 스스로를 정당화하려는 것 같다. 또 ‘유행을 따른다’는 말도 자주 한다. 그렇 다면 동시대의 문제를 다루면 모두 유행을 따르는 것일까. 몸은 20세기의 한국에 있으 면서 관심은 저 멀리 그리스·중국·히브 리… 등에, 또 고대·중세에 있는 사람들은 때때로 이런 말로 자기들을 정당화한다. 자기 정당화 위해 남을 매도하지 말라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태도와 정확히 대칭적 인 태도도 존재한다. 우리 눈앞에서 벌어지 는 현상들, 오늘날의 현실을 다루는 사람들 은 플라톤이나 공자, 고대의 유적, <우파니 샤드> 등을 붙들고 씨름하는 학자들을 종종 비웃는다. 그리고 <국가> 한번, <순수 이성비판> 한번 꼼꼼하게 읽어본 적이 없으 면서 걸핏하면 전통 사상을 굴비 엮듯이 묶 어서 ‘세계를 해석만 해왔지 변혁시키지 않 았다’ ‘알고보면 언어적인 오류투성이이 다’ … , 또 최근에는 ‘이성의 폭력이다’ 라고 단적으로 매도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 신들의 이해 수준을 넘어서는 글을 보면 ‘딱딱하다’ ‘현학적이다’ ‘고리타분하 다’고 하면서 자신을 정당화한다. 인간이 가진 강한 욕망 가운데 하나가 자신 을 정당화하려는 욕망인 것 같다. 그런데 참 으로 이상한 것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꼭 타인을 매도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논리 가 엉망인 문학자는 철학이 ‘너무 메마르 다’고 매도하면서 스스로를 정당화하고, 피 폐된 정서와 상상력 부재에 시달리는 철학자 는 문학이 주관적이라고 깎아내린다. 이론에 몰두하는 사람은 현실을 파고드는 사람을 표 피적이라고 하고, 더 현실적인 작업을 하는 사람은 이론에 몰두하는 사람을 ‘그게 현실 과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힐난한다. 역사 가는 철학이 너무 추상적이라고 낮추고, 철 학자는 역사가 너무 잡다하다고 비웃는다. 고전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현대 사상가들이 원전도 제대로 읽지 않고 말한다고 비난하 고, 현대 사상가들은 고전 연구가들을 현실 과 거리가 먼 고풍 취미에 갇혀 있다고 비난 한다. 동양학을 하는 사람은 서양 학문을 하 는 사람을 마치 뭔가 잘못 하는 사람인 것처 럼 쳐다보고, 서양 학문을 하는 사람들은 동 양학 하는 사람을 학문적으로 무시하곤 한 다. 이렇게 사람들은 스스로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타인을 헐뜯는다. 인생은 원이라기보다는 타원이 아닐까. 가끔 씩 이런 생각을 해본다. 고전이 있으면 현대 가 있고, 이성이 있으면 감성이 있고, 자연과 학이 있으면 인문학이 있다. 남자가 있으면 여자가 있고, 어른이 있으면 아이가 있다. 세 상은 하나의 중심만이 있는 외로운 존재가 아니라 두 중심이 때로 대립하지만 근원적으 로는 서로를 보완하는 존재가 아닐까. 그렇 지 않을 경우 세상은 기우뚱 기울어질 것이 다. 오늘날 지식인들은 ‘반쪽 지식인’인 경우가 많다. 온전한 지식인이 드문 것이다. 아니 온전한 지식인이 되지 않아도 좋다. 사 람의 능력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어느 한쪽에 치우치는 것이 잘못은 아니다. 다만 자신이 하나의 초점에 위치해 있다고 해서 다른 하 나의 초점을 매도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타원을 지탱해 주는 것이 바로 두 초점이라 는 것을 잊어버리고 다른 하나의 초점을 부 정한다면, 결국 그 타원은 무너져 버릴 수밖 에 없다. 한 초점에 몰두한다 해도 다른 초 점이 내가 위치해 있는 초점과 상보적(相補 的)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것이 온전한 지식인일 것이다. 고전 연구자와 현대 사상가, 역사학자와 철 학자, 논리학자와 시인, 이론가와 실천가…, 이 모든 사람들이 서로를 상보적인 존재로 여길 때 반쪽 지식인의 비극은 극복될 것이 다. 스스로를 정당화하려는 강박 관념에서 벗어나자. 아니 자기를 정당화한다 해도, 그 것을 위해 타인을 매도하지는 말자. 이정우 (철학자·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