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purunsan (푸르른틈새() 날 짜 (Date): 1996년04월26일(금) 18시37분01초 KST 제 목(Title): geog88님의 질문에 대한 의견. 현대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노동자계급이 적어도 이전에 생각했던 것만큼 단순하지 않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오늘날 육체노동자는 소수일 뿐 아니라, 오히려 중간계급의 생활수준과 생활양식을 누리는 화이트칼라노동자가 다수를 이루며, 실질 임금은 지난 세기 동안 꾸준히 상승했다고 볼 수 있읍니다. 이러한 변화로 말미암아 전통적인 계급구분이 와해되어, 산업사회(혹은 포스트 산업사회)에서는 부르주아와 프로가 서로 적대적으로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방대한 규모의 무정형의 중간계급들의 분포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입장은 독일 사회주의자인 루돌프 바로의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이라는 작별인사에서도 볼 수 있읍니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들은 생산이 아닌 소비의 입장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할 수 있읍니다. 그리고 소비가 아닌 생산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즉, 경제학에서의 계급을 결정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노동의 종류가 아니라 생산관계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위치입니다. 또 한가지 지적할 점은 이와같은 경향 혹은 변화들이 계급의 소멸을 으미하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하지만 특히 포스트주의자들에 의해 이와같은 경향들은 계급의 소멸을 의미하는 것으로 확대해석되곤 합니다. 그리고 소비가 아닌 생산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즉, 경제학에서의 계급을 결정하는 것은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노동의 종류가 아니라 생산관계에서 그들이 차지하는 위치입니다. 아무튼 탈산업화에 대해서는 저는 회의적입니다. 그것은 서구산업사회에서 제조업의 합리화는 값싸고 풍부한 노동력의 제3세계로 노동유형이 이전되는 과정의 일부이기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는 자본주의의 내재하는 모순을 이들 사회에 도입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읍니다. 다음 상징적 소비나, 상부구조의 자율성 등에 대한 입장은 제가 보기에 워낙 민감한 사안이고 앞으로 충분히 검토되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기에 다음으로 입장 표명을 미루겠읍니다. 여성문제에 관한 이야기를 하다가 인용한 푸코에 대한 언급에서 포스트주의에 대한 개관을 시도한 것도 아닌데 어떻게 모든 쟁점을 언급하고 넘어가겠읍니까. 이것이 제가 님에게 질문의 의도가 이상하다고 말한 이유입니다. 어쨌거나 계급내 분화와 역학관계에 대한 저의 견해는 구조는 분명히 변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계급개념'이 생산관계에 초점이 놓여야한다는 것을 뒤집을만한 단서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들 또한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도 아닙니다. 생산성의 향상이 가져온 필연적인 결과이니까요. 또한 오늘날 서비스 노동자들은 결코 특권엘리트라고 볼 수 없읍니다. 그리고 이것은 약간 철지난 감이 없진 않지만 페레스트로이카가 한창 논의되던 시점에 주목을 끌었던 STR(과학기술혁명)에서는 '기술이 직접적인 생산력으로 전화할 수 있다'라는 주장이 있었는데, 이런 주장도 고전적인 생산력개념에 수정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컨대 지금은 각론은 미비하고 총론조차 의문시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하지만 총론에 대한 의문은 이제 서서히 자리를 잡아가고 있으며 이제 각론의 마련을 위해 모두가 고민해야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