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osophyThou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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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hilosophyThought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바람몰이)
날 짜 (Date): 1995년12월31일(일) 22시56분09초 KST
제 목(Title): 독일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


   ▲한상진교수=21세기를 앞두고 서구문명의 한계를 지적하는 소리가  
   많습니다. 우선 지난 30여년간 한국이나 일본이 보여준 동아시아의 발 전을
   어떻게 보시는지 궁금합니다.    

   ▲하버마스=서구문명의 단순한 모방과는 다른 가능성을 발견합니 다. 특히
   과학기술의 독자적 발전이 흥미롭습니다. 전세계적으로 보면 세계 시장에
   의해 촉진된 자본주의적 근대화가 불가항력적으로 계속되 면서이에 대한
   반응이 다양하게 나오고 있습니다. 방어적인 것도 있고 혁신적인 것도
   있어요. 서구문화에 대한 도전이 강한 것같고 문화들간 만남의 지형도
   근본적으로 변화한다는 생각입니다.  

   ▲한=동양을 어떻게 볼 것인가는 서구인에게 이미 오래전부터 중요 한
   문제였습니다. 마르크스나 베버도 중국을 이해하는데 한계를 보였 습니다.
   중동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중인 문화이론가 에드워드 사이드 의
   「오리엔탈리즘」은 서구의 동양관이 얼마나 선택적인지를 잘 보여줍 니다.
   이런 맥락에서 당신이 주장하는 「계몽의 보편주의」 또한 서구의 관점을
   비서구사회에 강요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 니다.
   
   ▲하버마스=계몽주의 전통에 대한 탈현대적 비판의 핵심은 서구의
   자기중심주의를 폐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계몽의 변증법」으로 우리 는
   근대화의 이면에 있는 자기파괴적인 경향을 파악해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철학과 사회과학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동기입니다. 그 러나
   추상적 대립의 함정은 피해야 합니다. 동양과 서양의 도식적 구분 은 사실
   서구철학의 숨겨진 단면일 뿐입니다. 아시아인은 이런 함정에 빠지지 말고
   독자적 문화에 대한 자각에서 출발해 우리 서구인의 한계, 즉 타자를 항상
   자기의 눈으로만 보는 습관에 종지부를 찍도록 도와주 었으면 합니다.
   하나의 보기는 인권문제입니다. 인권은 서구의 전유물 이 아닙니다. 인간의
   기본권리를 어떻게 해석하고 지킬 것인가에 관해 다양한 문화적 해석과
   대화가 필요합니다. 서로가 상대로부터 배울 준 비를 해야하지요.

   ▲한=당신의 의사소통이론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 치중해 있어 환
   경문제에 대한 대안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하버마스=나는 일상적 의사소통의 구조 안에 정의의 개념이 포함 돼   
   있다고 생각합니다. 합리적 대화는 포용적이고 평등한 특징을 갖습 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대화하려면 모든 사람의 목소리를 평등하게 고 려해야
   하지요. 그런데 동물이나 식물, 자연환경은 오직 말할 수 있는 존재인  
   인간의입을 통하여 소리를 낼뿐입니다. 수백년간 이 소리가 무 시됨에 따라
   자연은 이제 우리를 위협하고 복수를 하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지구차원의 정의문제에 부딪칩니다. 이를 위해 보편 주의적 
   윤리가 필요하지요. 생태계 문제는 우리 인류가 엄청난 위험을 공유한
   운명적인 공동체로 서로 연결돼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우리는 인구증가와
   경제성장 제일주의의 패턴을 억제해야 합니다. 이 준엄한 생존의 명령에
   관해 가장 큰 과오와 책임은 선진산업사회에 있지요.       

   ▲한=오늘날 서구에는 여성운동이 매우 활발한데요. 여기서 발견하 는
   해방의 잠재력은 무엇일까요.

   ▲하버마스=여성운동은 유일하게 성공적인 것은 아니지만 서구사회 에서 
   현재 가장 강력한 사회운동입니다. 다른 운동과 비교할때 순수하 게    
   비폭력적입니다. 성에 따른 관계를 변화시키면서 사회의 가장 기초 적인
   제도, 즉 가족과 사회화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또한 가족으로부 터  
   사회전반으로 여성적인 가치를 옮겨가지요. 나는 이로부터 우리 정
   치문화가 혜택을 받기를 기대합니다. 서구는 도덕적, 법률적, 정치적
   보편주의의 전통을 지니고 있지만 여성운동을통해 우리는 놀랍도록 선
   택적이고 은밀한 방식으로 사회적 불의가 작용하고 있음을 발견했습니 다.
   루소와 칸트, 헤겔을 거쳐 자유주의와 마르크스주의에 이르기까지 철저하게
   남성 위주의 생각이 유지되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남녀평 등은 한 쪽을  
   다른 쪽에 일치시킨다는 뜻에서 평등화는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것은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는 것이며 서로가 다르 다는 점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여성해방은 가정을 넘어서는 큰 파급효 과를 가져오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아마도 서구보다도 한국같은 사회를 보다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되지 않을까요.  

   ▲한=정보기술혁신이 우리의 의사소통에 미치는 영향은 무엇일까요.
  
   ▲하버마스=새로운 미디어는 정보의 지구적 소통을 촉진할 뿐아니라 파편화
   현상을 가져옵니다. TV채널과 인터넷의 확산은 쟁점에 한정된 채 고립된  
   의사소통의 공동체를 증폭시킵니다. 도시센터가 없는 지구 촌이라고  
   할까요. 그러나 소수의 행위자와 피동적인 다수의 청중의 역 할이    
   분화된다고 해서 그 자체가 합리적인 의사소통을 어럽게 하는 것 은 
   아닙니다. 건강한 공론을 형성하려면 올바른 질문과 함께 필요한 정보가
   순환되어야 하며 주변적인 목소리를 포함해서 찬반토론의 기회 가 넓게
   보장되어야 합니다.

   ▲한=제도정치에 대한 대중의 불만이 세계 어디서나 매우 높아져 가는
   것같습니다. 왜 이런현상이 생겨나며 그 극복방안에 대해서는 어 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버마스=정치가 정치「프로」들에 의해 독점됨에 따라 민주주의의  
   의미가 파괴되고 있습니다. 이들이 얻고자 투쟁하는 권력은 원래 시민  
   들이만드는 여론으로부터 독립된 것이 아닙니다. 대중의 「반정치」기류 를
   넘어서는 유일한 길은 활력있는 시민사회를 가꾸는 것이지요. 그 토양에서
   사회운동이 활성화돼야 합니다. 내가 생각하는 것은 단순한 대중동원이
   아니라 참신한 쟁점과 민주적 압력을 동원할 줄 아는 정치 감각과 상상력을
   갖춘 올바른 사회운동입니다.      

   ▲한=당신의 이론을 공산주의의 붕괴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합니다. 그리고 서구자본주의의 미래는 어떻게 전망합니까.


   ▲하버마스=현대사회는 기본적으로 3개의 매체에 의해 운영되고 있 습니다.
   화폐나 시장, 행정력이나 관료제, 그리고 의사소통-규범-가치 등에의해
   이뤄지는 연대가 그것입니다. 현대사회는 이 세가지 세력의 균형점을찾는
   문제에 직면해 있습니다. 균형이 파괴되면 사회병리현상 이 불가피하게 
   나옵니다. 소련제국의 붕괴는 행정력으로 화폐를 대체 하면 경제체제에 
   심각한 손상이 온다는 점을 보여줬습니다. 아울러 정 당성의 문제가  
   놀랄만큼 비폭력적 방식으로 체제의 내부폭발을 촉진시 켰습니다. 명백하게
   자신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정치체제에 환멸과 소외감을 느낀 지식인들이
   이 과정을 가속화시키기도 했고요.               
   선진자본주의사회는 이와는 다른 보완적 성격의 문제를 안고 있습 니다.   
   자본과 노동시장의 세계화는 개별정부의 경제개입능력을 크게 제한합니다. 
   전형적인 국민경제, 즉 정치적수단의 영향을 받는 경제는 이제 갈수록    
   의미가 없습니다. 서구복지국가의 위기와 풍요 속의 하류 계층등장이라는
   두 가지 모순은 이런 배경에서 나옵니다. 따라서 나는 정치와 경제사이에
   증가하는 균열, 즉 행정력과 화폐 사이의 증가하는 불균형이 서구의 가장
   심각한 도전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독일의 통일과정을 지켜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셨습니까.      
  
   ▲하버마스=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후 한동안은 동서독이 연방제를 향하여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공감대가 있었습니 다. 그러나  
   동독체제가 급격히 무너지면서 헬무트 콜총리는 서둘러 흡 수통일 방식을
   택했습니다. 여기에는 나름의 논리가 있었지요. 그러나 대가도 치렀습니다.
   무엇보다 동독주민들이 자신의 문제들을 공개적으 로 토론할 수 있는
   공론의 장을 갖지 못했던 것이 유감입니다. 자존심 을 박탈당한 것이지요.
   때문에 통일후 동독주민들의 의식구조에 많은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한=한국사회도 이제 내부구조가 복잡해졌습니다. 그런데 사회가 발전할
   수록 진정한 민주주의가 저절로 도래하기보다는 전문가 집단의 지배가
   강화돼 민주주의의 발전을 가로막을 수도 있다는 진단에 대해 서는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십니까.

   ▲하버마스=의사결정과정에 시민이 참여하게 되면 체제의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은 꼭 맞는 것은 아니지만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럼 에도 
   민주화가 필요한 이유는 권력구조를 변화시킴으로써 우리가 추구 해야할  
   공동의 목표를 검증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시민들의 삶에 중요 한 영향을
   미치는 결정은 시민들의 참여 하 에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민주주의의 참뜻
   아닙니까. 이렇게 볼 때 사회 각부문의 민주화, 시민 들의 보다많은 참여,
   권력의분산 등은 복합적인 체제를 운영하는데 핵 심적입니다. 시장과
   관료제만으로는 시민들의 집합적 요구를 만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지요. 

   ▲한=지난 40년동안 학문활동을 해오시면서 견지했던 태도가 궁금 합니다.

   ▲하버마스=나의 모든 작업은 하나의 질문과 직관으로 엮어지고 있 습니다.
   그 질문은 내가 만들어낸 것이 아닙니다. 막스 베버가 그랬듯 이 근대화의
   변증법적 과정으로서 사회문화적 근대화를 이해한다는 것 은 과연 무엇을
   뜻하는가? 나는 이 문제를 체계적으로 분석해왔습니 다. 우리는 얻는 것이
   있듯이 잃는 것도 있습니다. 희망이 약동하는가 하면 위기적 파국도    
   따라옵니다. 나의 직관은 위기적 파국에서도 희망 이 있다는 것입니다.

   ▲한=그동안 당신이 벌인 다양한 분야에서의 논쟁들을 지켜보면서 당신을 
   「살아있는 백과사전」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버마스=터무니없는 말입니다. 나는 기억력이 나빠요. 여러 정 보를    
   얻고 세미나를 준비하기 위해 많은 책을 읽었을 뿐입니다. 나는 철학과    
   사회과학의 결합에 관심이 많았는데 우선 좋은문제를 제기하려 고        
   노력했습니다. 그 다음은 질문의 경험적 내용을 찾았지요. 자연히 가설이
   필요했고 그래서 기존의 학문분야의 토론들을 살펴보게 됐습니 다. 그   
   과정에서 유능한 조교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고 여러 분야의 논 쟁들에서 
   나름의 입장을 개진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그렇다면 최근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인류문명의 중심이 아 
   시아-태평양 지역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가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
   하십니까. 

   ▲하버마스=과거는 몰라도 앞으로 과연 문명의 중심이란 것이 존재 할 수
   있을까요. 그 가설이야말로 앞서말한 서구사상의 잔영처럼 들리 는군요.   
   오히려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문명간의 대화입니 다. 오는 4월
   한국방문을 앞두고 제가 맘설레는것도 그런 대화에 대한 기대 때문입니다.

   ▲한=장시간 대담에 감사드립니다. 더욱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하버마스와의 대담은 95년 12월18일 오후(현지시각) 독일 뮌헨에 서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전원도시 슈타른베르크에있는 그의 사저 에서
   4시간 동안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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