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 : loud (배 영호) Date : Mon Jun 8 22:19:33 1992 Subject: 광인의 시 어디다가 post 해야 할지... 성격이 참 묘한 글이라서, 그냥 제가 속한 postech board에다 실었습니다. 제가 한 번 써 본 글인데 보시고 조언은 loudness@pluto.postech.ac.kr 이나, loudness@lion.postech.ac.kr 로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광인의 시 - 어느날 밤 문득 잠에서 깨었다. 시계를 보니, 오전 4시. 아직은 일어날 시간이 아니었다. 졸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답답했다. 담배를 피워물어도, 음악을 들어도 답답함이 가시지 않았다. 답답함.... 이 답답함을 벗어 나고 싶었다.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굴레로 부터 자유롭고 싶었다. 어릴적 나는 광인을 동경한 적이 있었다. 어린 내 눈에 비친 어떤 광인의 모습은 행복 그 자체였다. 늘 즐거운 얼굴에, 눈은 언제나 피안의 저편을 쫓고 있었다. (입가의 royal jelly로 인해 image가 반감되기는 했지만... ) 그런 광인의 모습은 내 안에 오랫동안 남아있었으며, 문득 그 모습이 생각날 때마다, '나도 커서는 그런 광인이 될꺼야' 하는 다짐을 하고는 했다. 커가면서 나의 어릴적 다짐은 잊혀져갔지만, 중고등학교 시절, 시험등을 앞두고 압박감이 심할 때면, 어릴적 광인의 추억이 되살아 나곤 했다. 장 사르티에가 쓴 저서에 의하면 (제목을 까먹었네요.)에 보면, 광인이 사회로 부터 격리되기 시작한 시기는 중세 이후부터라고 한다. 그 전에는 광인을 '하나님을 만난 사람', '신과 함께한 사람' 등으로 부르며 이들을 신성히 했다고 한다. 중세에 이들을 격리수용하기 시작하면서 부터, 이들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취급을 받았고, 멸시를 당하였다. 나의 성장과정에서, 나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위의 압력에 떠밀려 다녔다. 마치 바다에 떠다니는 쓰레기들 처럼. 목적도 없이, 이유도 없이. 물론, 어린 나에게도 목표로 여겨지는 것이 있었다. 그러나, 이는 주위에 의해 만들어진 허상임을 깨달은 것은, 내가 그 가짜 허상을 붙잡고, 기쁨의 눈물을 흘린 뒤였다. 이제와선 속아버린 것을 후회할 수도 없다. 더이상 나는 어린아이가 아니니까... 시간은 나를 용서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수록 나는 나만을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나와 연관된 많은 사람의 책임을 맡게 된다. 이러한 책임은 나에게 또 다른 목표를 내밀며 앞으로 전진하기를 요구한다. "뛰어라 뛰어, 지쳐 쓰러질 때까지.." 나에게 이런 말을 하며 채찍질을 가한다. 이미 나의 등은 갈라지고 터져서 피가 흐르는데도... 오늘 같이 그 채찍의 아픔이 심한 날은 어릴 적 광인의 모습이 선명하게 떠오른다. 광인의 환영을 씻어내려 하였다. 구석구석 배인 광인의 냄새들을 지워버리려 하였다. 마구 문질러 떨어내려 하였다. 살갗이 벗겨져 피가 배어나올 때까지... 돌아와 거울앞에선 내 모습을 보았다. 거울속엔 슬픈 눈의 광인이 조용히 웃고 있었다. - shower를 하다가 피를 본 loudness가 썼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