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STECH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GuEsT) <141.223.84.94> 날 짜 (Date): 1999년 6월 1일 화요일 오전 03시 21분 04초 제 목(Title): 개벽의 소리? 떨리는 소리? 느끼는소리? [� 꾸준히 연재하시는 권오대 교수님의 글입니다. 자연 현상, 수학적 명제, 그런 진리와 기술, 그것에 약간의 예술적인 것을 버무리면 이공계의 빵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런 것들을 제외한 인간문명과 사회현상을 주무르고 사는 부류가 인문사회계이다. 포항공대에 온 교수와 학생들은 대개 이공계의 빵을 주식으로 삼으려는 부류이다. [교양학부교수 및 직원들의 전공들이 다른 것임은 논외로 하자. 물론 위의 분류는 매우 형식적이지만 분류가 주제는 아니다. ]오래전 공과대학을 선택하였던 나도 그중의 하나이다. 오래전 나는 상대와 법대 같은 인공적인 냄새를 피는 학문을 혐오한 적도 있었다. 나를 자기처럼 만들려던 숙부의 직업인 변호사 직업을 혐오하였고, 돈으로 멍드는 삶들을, 그리고 그런 경제관련 직업들을 혐오하였다. [공학이 바로 인공적이고 인문계는 인간적이라는 지적이 가능한데, 내가 말하는 '인공적'이란 말은 나쁘게 MANIPULATE하는 것을 내포한다.] 625의 폐허 위에서 자란 나는 더 근본적이고 원초적인 물음들을 생각하였다. 왜 사는가? 어찌 사는가? 왜 이렇게 살게 되었나? 괴로움은 어떻게 극복하는가? 외로움은 어떻게 승화하는가? 아름다움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진리는 어떻게 찾을까? 그리고는 나는 공과대학으로 갔다. 나의 삶과 진리 내닫기를 일단 공학 열차 선반에 올려놓기로 하였다.그리고 많은 시간이 흘렀다. 공학 열차 창으로 비쳐드는 아름다운 바깥풍경에 넋을 내놓은 적도 있었다. 그 열차가 강원도 산골을 달릴 때는, 그 열차가 해외의 낯선 밤을 달릴 때는 캄캄한 나락을 본 적도 있었다. 그래도 해외로 나간 그 열차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 주었다. 그리고 나는 선반에 얹어 놓았던 나의 짐을 가끔 꺼내볼 수 있었다.새로운 지평, 사막의 고행에서 나는 진주를 발견하기도 하였다. 사막의 하늘에서 끝없이 푸르른 미래를 보기도 하였다. 땀은 흘렀지만. 사막의 시간에서 인공적인 것들이 삶의 부분을 많이 차지하는 풍경도 점점 더 자주 보았다. 사막의 시간을 걷는 나의 신발은 인공 모래무지?[서서히 몸이 빠지는 함정을뜻하는 낱말이 생각나지 않음]들에 빠지기도 하였다. 사막에서 발버둥치며 나는 인공과 자연을 잇는 다리를 보기 시작하였다.나는 그 다리 위에 올라가 볼 것을 생각하기 시작하였다. 나의 공학 열차가 고국으로 돌아왔을 때비가 쏟아짐을 볼 수 있었다.얼마나 반가운 빗소리이던가! 그러나 그곳에는 인공의 컴컴한 나락이 나타나고 있었다.사막이 끝난 곳에서 진흙탕이 차창에 흙탕물을 뿌리고 있었다. 차창은 안에서 닦아야 소용이 없었다.달리는 열차의 바깥차창을 닦는 재주가 없었다.나는 시야를 막는 것들에게 손을 흔들며 쫓아 보았다. 허수아비처럼........... 미라보다리 아래를 흐르는 강물처럼 한강을 따라 흐르는 우리의 숙명처럼 시간은 좁은 외나무다리에서 서성거리는 나에게 인공과 자연의 물이 소용돌이치는 곳들을 보여주었다. 흔들어서 생기는 흙탕물에서 수정하는 물고기의 탄생처럼이 소용돌이에서 새로운 생명이 우짖는 소리가 들렸다. 지나간 시간에서 두어번 들렸던 그 소리가 다시 들렸다.나는 그 소리를 따라 다리에서 일어설 것이었다. 흙탕물의 소란 속을 탈출하며 가늘게 떨리는 그 소리.흙탕물 속에서 소용돌이 속에서 어느 소리가 들린다.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김경일 교수의 책]그 외치는 소리가 점점 우렁차다.그것은 흙탕물이 부딪치는 차창을 때린다. 어른과 군자정치의 기만과 위선남성적 우월과 가부장적 쇼비니즘주검의 문화와 스승의 권위 속에 말살되는 젊음과 창의성 협잡이 판치는 패거리 문화와 분열성그 흙탕의 빗물은 공자구름을 타고 왔다는 것이다. 유교의 유효기간은 끝났다고 선언한다. 동양의 뿌리, 극동의 뿌리를 짓밟고 나섰다.용기인가 만용인가?사실인가 매도인가?부활인가 부관참시인가?희망의 메시지인가 절망인가 ? 새삶의 진리인가 허깨비인가?나의 코털이 부르르 떨린다.우리의 새천년을 준비하는 소리인가?어떤 길로 열차를 안내하는 소리인가? 흙탕물의 소란 속을 탈출하며 가늘게 떨리는 그 소리인가?아닌가? 혹시 또 다른 탈선사고를 예비하는 소리일까? 비나리는 이 땅에는 수많은 소리들이 있었다.나는 귀를 기울였었다.아픈 소리들이 있었다. 쾌재 하는 소리들로 변하였다. 바른 소리들이 있었다. 그러나 금방 사라져갔다.바르다가 굽어지는 소리들도 있었다.그 소리들은 흔히 인공의 괴성들로 판명되었다. 그것에 식상한 나는 자연의 소리들을 찾았다.이것은? 개벽의 소리?나는 지금 귀를 기울인다. 다시 열심히. 스승의 권위인지 뭔지 걸레로 만든지 오래인 이 땅이다.그래도 나는 소위 가르치는 사람이다. 걸레옷을 걸친 채. 좋든 나쁘든 나의 행위가 새사람들의 열차를 준비한다그 연료만 준비하는 것은 아니다.그 열차의 내부장식까지 돕고 그 바깥풍경을 마련한다. 그래 그런 것들 어느 정도 마련하였다고 나는 생각한다.그 흙탕물을 밖에서 닦을 방법을 찾는 것도 나의 몫이다!지금 이곳은 비나리는 땅이기에. 공학 열차를 탄 나는 저 다리를 건너보아야 할 것이다.저 다리를 건너는 사람이 저 쪽에서는 아무도 없기에. 저 쪽의 사람들 떠드는 소리는 들리지만 움직이지 않기에.그들의 떠드는 소리들은 많이 들어보았기에. 그리고도 아직 흙탕물은 더욱 세차게 차창을 때리기에.공학열차의 많은 새사람들도 저 다리를 건너보는 것이우리들의 새천년일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흙탕물의 소란 속을 탈출하며 가늘게 떨리는 그 소리를나는 찾아 나서야할 듯하다.[우리 공대식구들, 앞으로 당신에게 따로 들리는 떨리는 소리가 있으면, 아니다 이것이다 하고 나에게도그 소리를 =만나는 소리=느끼는 소리를 들려 주시기를 기대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