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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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joo (*파트라슈*)
날 짜 (Date): 1993년05월25일(화) 13시16분51초 KST
제 목(Title): 피아노 소리..


대학 1학년때이지 싶다.

영화 사랑의 슬픔에서 보면 나스타샤 킨스키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새벽에 파아란 여명이 틀 무렵

하늘을 가득담은 창가에서 그랜드피아노를 치는 모습이 나온다.

그녀는 죽어가는 중이었는데..

더듬 더듬 거리면서 틀리기도 하면서 치던 피아노곡..

베에토벤의 월광 1악장이었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새벽의 파아란 여명이 아니라

혹 찬 달빛을 담은 장면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그 영화 전체중에서 유독 그장면만이 나의 뇌리에 박혀서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 피아노를 쳐주어야지..하는

낭만적인 계획을 세우고..월광곡 1악장을 카피해서 열심히 연습했다.

월광은 그다지 어렵지는 않았고..느리게 치면 느리게 칠수록..

빠르면..빠른대로 무척 아름다와서..연습하는 시간 자체가 행복이었다.



그때도 학생회관 대회의실에 피아노가 있었다.

점심시간이나 저녁시간에 짬이 날때 치려고 가면 누군가가 꼭 있었다.

1학년때에야 사람도 많지 않았을때인데도..점심, 저녁..

시간엔 늘 그곳이 붐벼있었다. 키타를 치려고 올라오는 사람도 있었고..

바이엘 렛슨을 받는지 연습하러 올라온 사람도 있었고..

그래서 내가 택한 시간이 새벽이었다.

새벽에 아무도 없는 학생회관에서 동이 틀때까지 피아노를 치는것이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피아노를 치는것은 나에게 유일한 스트레스 해소방법이었다.



월광과..그때 붐이 일기시작했던 조지윈스턴의 December..

Canon변주곡..


2학년이 되고..3학년이 되고..하니 점점 사람이 많아진 탓도 있고..

내가 바빠진 탓도 있고..점점 피아노치는 횟수가 줄어졌다.

열의도 식어버린것 같았다. 

이젠..내가 좋아하던 새벽시간까지도 누군가의 시간으로 바뀌어져

오랜만에 악보를 들고 찾아가면 대회의실 밖에서 서성거리다가

내려오곤 했다. 


악보집을 만들어 좋아하는 곡을 카피해서 정리한 몇권의 화일들이

이젠 구석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대학원때는 산기연에 있다는 핑계가 좋았고..그래서 학생회관의 그 ..정들었던

피아노는 점점 잊혀져갔다...


지난 스승의날..박찬모 교수님과 에러카페에 갔었다.

대회의실이 카페로 바뀌는 바람에 피아노는 3층 로비에 나와있었고..

여러 이야기들을 나누고 나오려는데 한 대여섯명이 모여서 피아노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괜히 흐믓하고 좋았다.

교수님께서 노래를 부르고 싶어하셔서 반주를 해드렸다...

그래서 다시 마주한..그 피아노..

여전히 그때의 그 피아노였고..

많이 낡아져 있었고..



이제 여유가 좀 생긴 탓일까..

구석에 썩혀두었던..악보집을 다시 챙기고 싶어졌다.

......



쮸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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