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sTech ] in KIDS 글 쓴 이(By): nllkkem (April Lee) 날 짜 (Date): 1995년05월03일(수) 21시11분27초 KST 제 목(Title): 여학우들만 보세요..특히 여학이나 총학에 아래글은 부천 성고문 사건의 고발장입니다.. 예전에 어느 책에서 읽은 건데 법원자료를 뒤적이다가 우연히 발견해서 올려봅니다..관심있는 학우여러분들이 여성운동등에 자료로 사용해주세요. 기계90 태경.. 고 발 장 고 발 인 : 고영구 / 김상철 / 박원순 / 이돈명 / 이상수 / 조영래 / 조준 희 / 홍성우 / 황인철 (이상 전원 변호사) 피고발인 : 문귀동(부천경찰서 수사과 형사) / 옥봉환(부천경찰서 서장) / 성명불상(부천경찰서 수사과장) / 성명불상 3인(부천경찰서 수사과 형사, 성고문 시 입회자) 1. 우리는 공문서위조 피의사건으로 인천소년교도소에 수감중인 권양의 변 호인들로서, 권양을 접견한 후 풍문으로 전해들은 성고문행위가 사실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놀라움과 분노를 금할 길이 없었다. 저 나치즘하에서나 있었음직한 비인간적인 만행이 이 땅에서도 버젓이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경악과 공분을 느낌과 아울러 인간에 대한 믿음마저 앗아가는 듯한 암담한 좌절 감을 느끼게 되었다. 단순히 충동적인 음욕때문에 일어난 것이 아니고, 성이 고문의 도구로 악용되어 계획적으로 자행되었다는 점에서, 이 사건은 우리에게 더 큰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이제 우리는 사건의 실상을 확인하고서도 계속 침묵을 지킨다는 것은 변호인으로서의 최소한의 의무마저 포기하는 것이라고 결 론짓고, 이 사건 관련자를 고발하여 처벌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 2. 고발내용 6.4. 밤 9시경 집에서 형사들에 의해 부천서로 연행되어 4층 공안담당실(?)로 가 서 그 다음날인 6.5 새벽 3시경까지 조사를 받았다. 권양의 혐의 사실에 대한 조사 외에도 양승조 등 인천사태 수배자들 중 지면관계가 있거나 소재를 아는 사 람이 있는지 여부에 관하여 집요하게 캐물었다. 6.5. 아침 9시경 1층 수사계 수사실로 끌려갔다. 정오도 경사가 권양에 대한 수사를 담당키로 되어 4층 420호실(421호실인지도 모른다)로 데려갔다. 이때부 터 오후 6시경까지 공문서(주민등록증) 위조 혐의와 수배자에 관한 조사를 받고 보호실로 가서 하룻밤을 잤다. 6.6. 새벽 4시에 누군가가 데리러 와서 상황실로 데려갔다. 이때 부천경찰서에 무슨 비상이 걸린 모양으로 형사들이 다들 이미 출근해 있는 상태였다. 서장이 권양을 보더니 "권양이 수사에 너무 협조를 안하는군"하고 화를 내며 밖으로 나 갔다. 수사에 너무 협조를 안한다는 것은 형사들이 권양에게 인천사태 수배자 들(대부분 인천노동운동연합 관계자들)의 명단을 대면서 그중에서 아는 사람이 있는지 여부를 묻고 특히 인천노동운동연합 양승조 위원장을 알고 있거나 또는 양승조를 아는 사람이라도 알고 있는지를 캐물었는데, 권양이 이에 대하여 아는 사람이 있는데도 협조를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였다. 서장이 밖으로 나간후 상 황실장(눈이 크고 약간 튀어나온 듯한 인상, 당시 전투복을 입고 "상황실장"이라 는 완장을 두르고 있었다)이 말하기를 권양이 너무 말을 안하는데 아무래도 지금 까지 조사과정에서 나온 사람들(인천사태 수배자들을 지칭한 듯함)과 한 팀이 아 니냐고 하면서 형사 문귀동("문기동"인지도 모른다. 형사들이 "문반장"이라고 부르고 있었으며 얼굴은 검은 편, 입술이 두껍고 눈이 매서운 험악한 인상, 키는 보통, 나이는 35-36세 정도로 보이고 말씨는 서울말씨, 스스로 밝힌 바에 의하면 예전에 "부평"에 있었다고 함, 이하 이름 "문귀동"이라고 부른다)을 보고 "문귀 동 - 자네가 맡아서 해 보게"하면서 수사를 지시했다. 이에 문귀동은 권양을 1 층 수사계 수사실("조사실"인지도 모른다)로 데리고 가서 새벽 4:30부터 6:30분 경까지 사이에 걸쳐 아래와 같이 추잡한 성고문("1차 성고문"이라 부른다)을 자 행하였다. (1) 우선 문귀동은 권양에게 "네 죄는 정책변화로 풀려날 죄도 아니고 하니 수배자 중에서 아는 사람을 불어라. 불기만 하면 훈방하겠다"고 강요하였다. 권양이 끝내 모른다고 하자 문귀동은, "이년 안되겠군"하고 운을 떼면서 "나는 5.3사태때 여자만 다뤘다. 그때 들어온 년들도 모두 아랫도리를 발가벗겨서 책 상에 올려 놓으니까 다 불더라. 네 몸(자궁)에 봉(막대기를 지칭한 듯 하나 정 확히 무슨 의미인지는 모른다)이 들어가면 안 불겠느냐"고 협박하였다. (2) 권양이 겁에 질려서 벌벌 떨고 있으니까 문귀동은 권양에게 옷을 벗으 라고 강요하였다. 권양이 상의 겉옷(자켓)과 남방만을 벗고 티와 브래지어 및 바지를 입은 채로 있자 문귀동은 다른 형사 1명(젊고 직급이 낮은 듯함)을 불러 들여 옆에 서 있게 한후 스스로 권양의 바지 단추와 지퍼를 풀어 밑으로 내리면 서 "너 처녀냐? 자위행의 해 본 적 있느냐?"고 브래지어를 들추어 밀어 올리면서 "젖가슴 생김으로 보니 처녀가슴 같지가 않다"고 하는 등 더러운 수작을 하면서 곧이어 제발 살려 달라는 권양의 애원을 뿌리치고 권양의 바지를 벗겨 내렸다. (3) 이에 권양이 극도에 굴욕감과 수치심과 공포를 이기지 못하여 엉겁결에 한 친구(노동현장취업과정에서 사귀게 된 이 모라는 여성으로 그 이름이 본명인 지 여부도 모른다. 인천사태와 관계없는 사람임)의 이름을 대자 문귀동은 권양 에게 그 친구의 인적사항을 자세히 적으라고 요구하였다. 권양이 위 이 모양의 인적사항에 대하여 자세히 모른다고 하자 문귀동은 옆에 서 있던 형사에게 "고춧 가루 물을 가져오라"고 지시한 후 권양에게 책상다리 위로 올라가라고 하면서 "기어이 자궁에 봉을 집어넣어야 말하겠느냐?"라고 협박하였다. 권양이 위 이 모양이 자취하던 집이라는 곳의 위치를 적어넣자 문귀동은 그제서야 일단 수확을 거두었다는 듯 조사를 중단하고 권양의 바지 지퍼를 올리게 했으나 그러면서도 다시 "진짜 처녀냐?"고 물었다. (4) 뒤이어 대공과 형사들이 권양에게 수배자의 사진을 보여주면서 위 이 모양이 수배자들 중의 하나가 아닌지를 확인하였다. 그후 권양은 보호실로 끌 려가서 그곳에서 하룻밤을 잤다. 6.7.(토요일) 아침 7시경 문귀동이 다시 권양을 데리고 가서 "너 양승조 안다고 그랬지?" 라고 물어, 모른다고 대답하자 "더 아는 사람이 있으면 얘기하라"고 몇번 다구치 더니 돌려보냈다. 아침 9시경 누가 권양을 데리러 와서 1층 수사과로 갔는데 가보니 상황실에 상황실장, 정오도 경사, 문귀동 등 10여명의 형사들이 모여 있 었다. 그들은 권양이 일러준대로 이 모양의 자취하던 집이라는 곳을 방문해 보 니 그런 사람이 자취한 일이 없다고 하더라면서 집주인 여자를 권양과 대질시켰 다. 대질신문결과 그들은 권양이 이제까지 한 말이 거짓말이라고 판단, 경사 정오도가 권양을 한대 후려쳤고 상황실장은 권양에게 "앞으로는 이제까지 대우한 것과는 달라질테니 있다가 오늘 저녁에 두고 보라"고 협박하면서 옆에 있던 문귀 동을 보고, "저녁때 그런 방법으로 조사해"라고 지시하였다. 문귀동이 권양을 다시 보호실에서 대기하면서 불안과 초조에 떨었고 한시바삐 검찰청으로 송치되 기만을 기다리는 심정이었다. 그러나 다른 수감자들에게 물어본 결과 여기서 한 열흘쯤 있어야 검찰청으로 넘어간다는 절망적인 대답을 들었다. 밤 9:00경 문귀동이 다시 권양을 1층 수사과 조사실(문귀동이 조사하는 방의 옆방)로 불러 냈다. 당시는 수사과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였고 청내는 모두 불이 꺼진 상태였 으며 조사실 역시 불이 꺼져 있었는데 다만 건물 바깥에 있는 등에서 나오는 외 광(外光)에 의해 방안의 물체를 어렴풋이 식별할 수 있는 정도였다. 문귀동은 토요일 밤에 퇴근도 못하고 "일"을 해야 된 데, 무척 화가 난 듯 권양에게 "독한 년"이라고 하면서 "남들은 다 퇴근했는데 네년때문에 한밤중에 또 조사를 해야 된다. 위에서 그년 되게 악질이니 족치라고 했다."라고 겁을 주고 나서 다른 (남자)형사 2명을 불러들여 권양의 양팔을 등뒤로 돌려 놓은 상태로 양손목에 수 갑(이른바 "뒷수갑")을 채우게 하고 그 자세로 무릎을 꿇려 앉힌 후 안쪽 다리 사이로 각목을 끼워 넣고 넓적다리와 허리부위 등을 계속 짓밟고 때리게 하면서 권양에게 이 모양의 본명과 출신학교, 사는 집 등을 불도록 요구했다. 이로 인 하여 권양의 넓적다리는 시퍼렇게 멍이 들고 퉁퉁 부었다. 권양이 고통과 공포 를 참지 못하여 비명을 지르자 문귀동은 "이년이 어디서 소리를 꽥꽥 지르느냐, 소리지르면 죽여버리겠다. 너같은 년 하나 죽이는 건 아무 것도 아니다"라고 윽박질렀다. 뒤이어 문귀동은 권양에게 수배자 중 아는 사람을 대라고 추궁하 다가 계속 모른다고 하니까 옆에 있던 형사에게 고문기구를 가져오라고 소리쳤 고, 그 형사가 검은색 가방을 가져오자 불을 켜더니 인천노동운동연합 소속 수배 자 20명의 인적사항과 사진 등에 편철되어있는 서류철을 꺼내어 한장씩 넘기면서 아는 사람을 대라고 다구쳤다. 권양이 모른다고 하자 문귀동은 "이년 안되겠 다"고 하면서 형사들을 내보내더니 권양을 조사실 옆에 있는 자기 방(양쪽이 창 문으로 되어 있음)으로 데리고 갔다. 이때가 밤 9:30경으로, 이때부터 밤 11:00경까지 약 1시간 반 동안에 걸쳐 문귀동은 인면수심의 실로 천인공노할 야 만적 추행을 저지르면서 권양을 고문하였다. 이 한시간 반 동안 방안에는 계속 불이 꺼져 있었고 권양은 계속 뒷수갑을 찬 채로 문귀동과 약 2평 정도의 방안에 남아 있었으며 주위에서도 전혀 인기척을 느낄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에 처해 있 었다. 문귀동이 저지른 추행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먼저 권양에게 아버지가 뭘 하느냐고 물어 권양이 식당을 한다고 거짓 대답하자(권양의 아버지는 법원서기관인데 권양이 공무원신분에 영향이 있을까봐 걱정이 되어 거짓 대답한 것임) 문귀동은 비시시 웃더니 "간첩도 고문하면 다 부 는데 네년이 독하면 얼마나 독하냐"는 취지의 말을 하면서 권양에게 옷을 벗으라 고 명령하였다. 권양이 웃옷만을 벗자 문귀동은 권양에게 다시 뒷수갑을 채운 후 브래지어를 위로 들어올리고 바지를 풀러 지퍼를 내리더니 권양국부에 손을 집어넣었다. 권양이 비명을 지르자 소리지르면 죽인다고 하면서 윽박질렀다. (2) 권양의 팬티마저도 벗겨내리고 의자 두 개를 서로 마주보는 상태로 놓 고 권양을 한쪽 의자 위에 수갑찬 손을 의자뒤로 돌린 상태에서 앉게 하고 문귀 동 자신은 맞은편 의자를 바짝 끌어당겨 그 위에 앉아 권양의 몸과 밀착된 자세 를 취한 다음 계속 수배자의 소재를 불 것을 강요하였다. 권양이 제발 이러지 말라고 애원하였으나 문귀동은 들은 척도 않고 "너같은 년 하나 여기서 죽어도 아무 일 없다"고 협박하였다. 이때부터 문귀동은 수시로 권양의 젖가슴을 주무 르고 국부를 만지며 권양의 몸에 자신의 몸을 비벼대었다. (3) 그후 문귀동은 권양을 일으켜 세워 바지를 완전히 발가벗기고 웃도리 브래지어를 밀어올려 젖가슴을 알몸으로 드러나게 해놓은 상태에서 뒷수갑을 찬 채로 앞에 놓인 책상 위에 엎드리게 한 후 자신도 아랫도리를 벗고 권양의 뒤쪽 에 붙어서서 자신의 성기를 권양의 국부에다 갖다대었다 떼었다 하기를 몇차례에 걸쳐 반복하였다. 이때 권양이 절망적인 공포와 경악과 굴욕감으로 인하여 거 의 실신상태에 들어가자 문귀동은 권양을 다시 의자위에 앉히더니 담배에 불을 붙여 강제로 몇모금을 빨게 하였다. (4) 잠시후 문귀동은 권양을 의자 밑으로 난폭하게 끌어내려 바닥에 무릎을 꿇게 하고 앉힌 후 자신은 의자에 앉아 권양이 자신의 성기를 정면으로 보도록 하는 자세로 조사를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문귀동은 권양의 얼굴을 앞으로 잡 아댕겨 입이 자신의 성기에 닿도록 하면서 자신의 성기를 권양의 입에 넣으려 하 다가 권양이 놀라서 얼굴을 돌리니까 난폭하게 권양의 몸을 일으켜 세운후 가ス 로 몇차례 키스를 시도하였다. 권양이 입을 벌리지 않고 고개를 돌리니까 문귀 동은 입을 권양의 왼쪽 젖가슴쪽으로 가져가더니 유두를 세차게 빨기를 두어차례 에 걸쳐 하였다. (5) 그후 문귀동은 다시 권양을 책상 위에 먼저번과 같은 자세로 엎드러지 게 해 놓고 뒤쪽에서 자신의 성기를 권양의 국부에 몇차례 갖다 대었다 떼었다 하는 짐승과 같은 동작을 반복하던 끝에 크리넥스 휴지를 꺼내는 소리가 들리더 니 그것으로 권양의 국부를 닦아내고 옷을 입혔다. 이때가 밤 11시경 (6) 위와 같은 짐승과 같은 동작을 계속하는 동안에도 문귀동은 집요하게 권양에게 아는 수배자의 이름을 대라고 강요하였고 권양이 비명을 지르면 죽이겠 다고 하면서 윽박질렀다. 또 위와 같은 동작을 하는 중간중간에 문귀동은 권양 을 서너차례 정도 쉬게 하면서 억지로 불붙인 담배를 입속에 밀어넣고 물을 마시 게 하였으며, 그리고나서는 다시 갖은 협박을 하면서 수배자에 관한 추궁을 계속 하였다. 그동안에 권양은 고통을 이기지 못하여 자신의 집에 찾아왔던 어느 여 성 한사람의 이름과 동인이 종전에 다니던 회사의 이름을 댔으며 문귀동은 권양 이 말한 내용을 종이에 쓰게 하였다. 위와 같은 추악한 만행을 저지른 후 문귀 동은 권양에게 호언하기를 "네가 당한 일을 검사앞에 나가서 얘기해봤자 아무 소 용없다. 검사나 우리나 다 한 통속이다"라고 하였다. 밤 11시가 지나 문귀동은 기진맥진해있는 권양을 보호실로 데리고 가서 권 양의 소지품을 챙기더니 유치장으로 끌고갔다.(이때 권양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 부된 상태였음) 일반적으로 유치장에 처음 입감될때는 몸수색을 위하여 속옷을 벗게 하는 것이 상례인데, 이때 문귀동은 여교관을 부르더니, "내가 다 봤으니 몸검사는 필요없다. 독방을 주어라"고 지시하고는 돌아갔다. 그후 권양은 검 찰에 송치되기까지 유치장에서 열흘간을 보냈는데 한동안은 아무 것도 먹지 못하 였고 먹으면 계속 체했으며 밤에는 악몽에 시달리느라고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 했다. 몇차례나 자살을 하고 싶은 충동이 엄습해왔으나, 점차로 자신의 여성으 로서의 전도를 희생해서라도 이와 같은 끔찍한 일이 다시는 일어날 수 없도록 하 기 위하여 끝까지 싸우겠다는 결의가 굳어지면서 가까스로 자살충동을 이겨내었 다. 6.16. 교도소로 옮겨온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도 권양은 계속 악몽에 시달리고 있 다. 원주법원의 서기관으로 재직하던 권양의 부친은 이 사건의 충격으로 사표 를 제출하였다. 권양의 소식이 인천교도소내의 재소자들에게 알려지면서 교도소 내 양심수 약 70명이 문귀동의 구속 등을 요구하는 무기한 단신투쟁에 들어갔고 권양 자신도 6.28부터 시작하여 7.2 현재까지 닷새째 단식을 계속하연 건강이 극 도로 악화하였다. 3. 이상이 국가권력의 집행자인 경찰에 의하여 저질러진 저 전대미문의 추 악한 성 폭행고문에 관하여 피해당사자인 권양이 변호인들 앞에서 밝힌 내용의 개요이다. 우리는 권양의 진술태도나 기타 모든 정황으로 보아 위 내용이 진실 인 것으로 확신한다. 우리는 이 입에 담기에도 더러운 천인공노할 만행이 다른 곳도 아닌 경찰서 안에서 다른 사람도 아닌 경찰관에 의하여 저질러졌다는 사실 에 대하여 실로 경악과 전율을 금치 못한다. 더우기 이같은 만행이 인권옹호직 무수행자라는 경찰에까지 상세히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그 범인이 아직까지도 버젓이 경찰관신분을 유지하면서 바깥 세상을 활보하고 있는 데에 이르러서는 이 나라에 과연 법질서라는 것이 형식적으로나마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를 근본적으 로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최고학부까지 다닌 한 처녀가 입에 담기조차 수치 스러울 저 끔찍한 강제추행을 당한 사실을 스스로 밝힌 이상 그 밖에 또 무슨 "증거"가 필요해서 수사를 못한다는 말인가? 경찰서 안에서는 목격자만 없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도 좋다는 것인가? 검찰이 경찰의 인권유린행위에 대하여 이 와 같이 수수방관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무고한 시민들이 경찰권력의 횡포아래 희생되는 것을 막을 길도 전혀 없게 된다. 이 사건의 진상이 철저히 규명되고 직접 범행을 저지른 자는 물론 관계책임자들이 모두 엄중히 처단되지 않는 한, 이후 여성들은 경찰서 앞을 지날 때마다 공포에 질리게 될 것이다. 이에 우리 는 필설로 이루 형언할 수 없는 분노에 치를 떨면서 먼저 저 인간의 탈을 쓰고서 는 차마 상상도 할 수 없는 패륜을 저지른 문귀동을 고발한다. 피고발인 상황 실장, 성명불상자와 경찰서장 옥봉호는 제반 정황으로 보아 문귀동의 범행에 공 모.가담하였거나 교사.방조하였거나 또는 적어도 이를 알면서도 묵인.방치하고 단속하지 아니하였음이 명백하다고 인정되므로 아울러 고발한다. 피고발인 형 사 성명불상자 3명 역시 문귀동의 범행에 공모.가담 또는 방조한 혐의로 고발한 다. 이 사건을 그대로 두고서는 실로 인간의 존엄성이니 양심이니 인권이니 법 질서니 민주주의니 하는 말들을 입에 올리기조차 낯뜨겁다. 우리들 고발인 일 동은 문귀동을 비롯한 피고발인들 전원이 지체없이 의법처단되지 않는 한 이 사 건에서 한치도 물러나지 않고 모든 합법적 수단을 동원하여 기어이 고발의 실효 를 거두도록 총력을 기울일 결의임을 천명한다. 4. 우리는 귀청이 이 사건을 수사함에 있어서 다음 몇가지 점에 유의하여 줄 것을 촉구한다. 첫째, 이 사건은 문귀동이라는 변태성욕에 사로잡힌 한 개인에 의하여 우발 적인 충동으로 저질러진 단독범행이 아니고 경찰권력조직 내부의 의도적인 성고 문계획에 따라 자행된 조직범죄임이 명백하다고 생각된다. 우리는 귀청이 이 끔찍한 조직범죄의 전모를 낱낱이 파헤쳐 이 범죄가 어느 선에서부터 계획되었는 지를 밝히고 피고발인들 외에도 일체의 관련자들을 남김없이 의법처단하여 주기 를 강력히 요청한다. 둘째, 피고발인들의 소행은 강간죄 내지는 강체추행죄로 이률될 수 있음은 물론이나 이 점은 친고죄이므로 이 고발에서는 제외하였고 다만 인신구속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의 폭행 및 가혹행위에 해당하는 부분만을 들어 고발한다. 그 러나 우리는 이 사건이 종래에 흔히 볼 수 있던 통상의 고문.가혹행위수법이 아 니라 여성에 대한 인간적 파괴를 노리고 반인륜적인 성고문수법을 사용한 범행이 며 더우기 피의사실에 관한 조사가 아닌 단순한 수배자의 검거를 위한 수단으로 이와 같이 끔찍한 범행이 자행되었다는 점을 중시한다. 우리는 1984.9.4.에도 청량리경찰서 전경들로부터 경희대 여학생들이 성폭력을 당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인천 5.3사태로 구속된 피의자의 가족이 자기 딸도 부천경찰서에서 권양 과 비슷한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한 것을 들은 바 있다. 이 사건으로 인해 우리 는 위 주장도 사실이라는 심증을 굳히게 되었고, 특정서에서 성이 고문의 수단으 로 제도화되어 악용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인간의 존엄성을 최고의 이념으 로 삼고 있는 법치국가에서 위와 같은 야만적이고, 비인간적인 만행이 제도적으 로 자행된다는 것은 더이상 묵과될 수 없다. 이 사건을 최단시일내에 철저히 수사하여 그 진상을 백일하에 드러냄으로써 검찰이 추후라도 이 사건을 은폐하거 나 비호할 의도가 없음을 분명히 하여야 할 것이다. 1986. 7. 5. 고 발 인 고 영 구 이 상 수 김 상 철 조 영 래 박 원 순 조 준 희 이 돈 명 홍 성 우 황 인 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