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osTech ] in KIDS 글 쓴 이(By): event () 날 짜 (Date): 1995년01월15일(일) 14시44분00초 KST 제 목(Title): 내가 너의 목을 조여주마! 자살의 유형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그것이 어떤 의미에서건 - 비관자살이건, 염세건 - 그 방식들엔 여러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나 흔히 볼 수 있는 것은 목을 매달아 죽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어떻게 보면 총기류를 구할 수 없는 우리나라 실정에 잘 맞는 것일 뿐만 아니라, 옛날에도 가장 광범히(?)한 자살의 방법으로 쓰여졌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 주목해야 할 사실은 목매달아 죽었다고 해서 다 자살은 아니라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목을 매달아 자살하는 사람은 극도의 쾌감을 느끼는 지는 몰라도 사정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결과론적인 입장, 즉 목을 매달아 죽는 사람은 사정을 하더라라는 그렇다면 극도의 쾌감을 느끼지 않겠느냐는 가정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이것이 문서화 되어 활자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호기심에 자신의 목을 자극하는 - 일부러 목을 심하게 조이지 않을 정도로 매단 다던지 - 행위를 하면서 쾌락을 찾는 사람도 없을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일종의 아이러니라고 볼 수가 있다. 자신의 목숨과도 연결될 지도 모르는 행동을 하면서 일종의 쾌감을 느낀다는 것은 말이다. 사르트르는 물론 이전에 여기에 대한 자세한 해설을 했지만 말이다. 그렇다. 가끔은 사람들 목을 조르거나 자신의 목을 조를 필요가 있다. 쾌감을 위해서가 아니다. 목을 조르는 사람은 쾌감을 느낄 수가 없다 만일 그가 사디스트가 아니라면 말이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목조름을 당하는 사람들의 쾌감인 것이다. 처음에는 그것이 자신의 존재를 위협하는 듯 생각이 될 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것이 자신의 존재는 보장된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것은 쾌감으로 다가올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자신의 존재가 확실하게 보장이 될 수만 있다면 이라는 가정을 유출함에 있어서 무리가 없잖아 있지만, 목을 졸라주는 사람이 자신을 죽일만큼 악에 빠져 있지 않다면 그 가정은 유효할 것이다. 그렇다. 가끔은 학교의 목을 조를 필요가 있다. 바로 지금이 바로 학교의 목을 조를 때가 아닌가 싶다. 학교가 쾌감을 느낀다면? 그것이 바로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닌가? * 돌이킬 수 없는 것은 돌이킬 필요가 없는 것이 되어야 한다. * 이 인성, 낯선 시간속으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