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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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osTech ] in KIDS
글 쓴 이(By): pakong (* 쮸쮸 *)
날 짜 (Date): 1994년09월28일(수) 10시10분15초 KDT
제 목(Title): <쉬어가는 글> 인사맨



어느샌가 바람에 가을이 묻어있더군요.
익어가는 가을만큼이나 풋풋한 이야기가 있어 나누고 싶어 적습니다.
'생활속의 이야기'에 나오는 박성숙 선생님(수원 삼일중학교 교사)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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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근을 하려고 허겁지겁 집을 나와 골목을 벗어나고 있었다. 그런데 조금전부터

어떤 청년이 내 앞에서 서너 발자국의 거리를 두고 자꾸 얼쩡거리는 거였다.

바쁘게 걷던 나는 짜증이 났지만 걸음을 늦춘채 계속 걸었다. 그 청년은 같은

거리를 유지하면서 흘금흘금 곁눈질을 했다.

난 기분이 불쾌하기도 하고 약간은 무섭기도 하여 아무 말 없이 걷기만 했다. 

그런데 약국 모퉁이를 지나면서 그 걸음걸이가 어쩐지 낯이 익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순간 아, 하는 탄성과 함께 10년전의 일이 떠올랐다.



이용식, 인사맨.

내가 지금의 중학교에 부임했을때 그 아이는 2학년이었다. 한번도 그애의 담임을

맡거나 수업을 해 본적은 없었다. 그러나 교장 선생을 비롯하여 전교사와 전교생이

그 아이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말하자면 지능지수가 보통 아이들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그래서 사람들로부터 모자란다는 소리를 듣는 아이였다.



내가 처음 그 아이에 대하여 들었던 것은 그애가 1학년 봄 소풍때 집을 못찾아

헤매다 파출소에 맡겨졌다는 것과 평소 자신의 처지와는 상관없이 늘 자신감에

넘쳐 있다는 얘기들이었다. 상대가 누구이든지 우리 학교 교사이면 무조건 쫓아와

인사를 했는데, 선생님이 자기보다 뒤에 오면 제자리 걸음을 하면서 자기

옆을 스칠때까지 기다렸고, 자기보다 앞서가면 헐레벌떡 뛰어와서 큰소리로 인사를

했다. 간혹 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는 옆 학교 선생님이 걸어가면 우리학교 

선생님인줄 알고 막 뛰어갔다가 얼굴을 보고는 "에이, 아니쟎아." 한 적도 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인사맨(man)'으로 불리었고 웬만한 잘못을 범한 경우에도 치외

법권자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 인사맨과 좀체 부딪칠 일이 없던 내게 지금까지 잊지 못할 일이

터졌다. 그해 기말시험을 보던 중이었던가. 나는 그 반의 영어시험을 감독하게 

되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컴퓨터로 처리하던 때가 아니었으므로 답안지에 네개의 

항목 중 하나를 골라 해당 번호를 기입해야 했다. 조용한 분위기 속에서 시험을

치르고 드디어 종이 울렸다. 답안지를 걷으려는데 갑자기 그애가 손을 들었다.

        " 아직 못 썼어요."

        "그래. 원칙적으로는 안되지만 딱 일분이다!"

다른 학생들의 답안지가 모두 걷혔을때 그가 답안지를 들고나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각 문항마다 번호가 다양하게 적혀 있었다. 1번에 20, 2번에 13, 3번에

15...  이런 식으로. 난 어이가 없었다. 그 녀석은 내 표정은 아랑곳 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이번 시험은 정말 어려운데..."

:)


10년전 그 사건(?)의 주인공이 지금 내 앞에서 얼쩡거리며 그때처럼 아는체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혹시 이용식군 아닌가?"

이제는 청년이 된 그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건넸다.

        "안녕하셨어요. 선생님."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인사를 하고 나더니 곧 이어서 내가 묻지도 않았는데 

중학교를 졸업한뒤 무엇을 지냈는지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그는 지금 열쇠깎는

일을 하고 있는데 서울로 출퇴근한다고 했다. 옷차림도 한껏 멋을 부린 모습이다.

그리고는 그가 중학교 다닐때의 담임 선생님들의 안부를 물었는데 3개 학년의 

선생님 이름을 정확히 기억하고 있었다. 대견했다.

        "이렇게 열심히 살고 있는 모습을 보니 고맙구나. 학교에 가면 네 담임

        선생님들께 말씀을 드리고 안부 전하마."

서울행 직행버스를 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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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퍼스를 걷다보면 안면이 있는 교수님이 지나가도 우리과 교수님이 아니거나


한번도 강의를 들은 적이 없는 교수님일 경우면 머뭇머뭇 그냥 지나쳐 버리기가 

일쑤였는데.... 

요즘은 더구나 갑자기 새로운 교수님들이 많아져서 잘 모르겠더라구요.

교수님인지 아닌지도.....


인사를 하면 무척 잘 받아주시면서 안부를 꼭 묻곤 했던 전총장님 생각이 나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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