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PNU ] in KIDS 글 쓴 이(By): sagang (그대의무엇) 날 짜 (Date): 1998년 7월 25일 토요일 오전 02시 04분 24초 제 목(Title): 생일선물 나 어릴 때 생일은 미역국 먹는 날이었다. 가족 누구의 생일이든 아침식탁엔 미역국이 올랐었고, 그리고.. 그게 다였다. 생일이라고 해서 특별히 선물을 주고받는다거나 그런 일이 없었지 싶는데, 그건 아마 생일이 생일 그 자체의 의미를 별로 가지지 못했기 때문이었지 싶다. 왜냐하면 우리네 관습에 한 살 더 먹는 날은 설날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그 땐 생일보단 설날이 훨씬 더 많이 기다려지는 날이었다. 한 살 더 먹었다고 설빔이란 이름의 새 옷을 선물로 받고, 때론 다른 선물을 받기도 했으며, 그리고 세배돈이란 이름으로 평소엔 꿈도 꿀 수 없는 거금을 용돈으로 받곤 했으니까.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생일이란 걸 챙기는 분위기로 바뀌었는데 그게 언제부터 였는지 확실하진 않지만 아마 그 시초는 나로부터였던 것 같다. 아니,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녀로 인해서라고 해야겠다. 그녀를 알고 처음 맞이한 가을 어느날 그녀가 자기 생일이라며 저녁을 샀고, 다음 봄 내 생일엔 생일선물이라며 뭔가를 줬었다. 내 기억엔 그것이 생일선물이란 이름으로 나에게 주어진 처음의 것이었지 싶다. 그리고는 나도 그동안 주어들은 게 있어서, 그녀의 스무번째 생일을 남 못지않게 챙겨줄 수 있었다. 어버이날의 카네이션 외엔 꽃이라곤 사보지 않았던 내가 몇 다발의 장미를 사서 마음에 드는 것으로 스무송이를 고르고 그것으로 부케를 주문하고 그랬으니 장족의 발전을 했다고나 할까... 그리고는 가족들에게도 생일선물을 하고.. 아마 그랬을 거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생일선물의 참 의미를 새기며 그것을 준비하고 그러진 못했었던 것 같다. 그냥 받는 사람은 받아서 즐겁고 주는 이는 주어서 즐거운 게 선물이니까 하는 정도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그러다가 그 의미를 새겨보게 된 계기가 있었다. 한 번 어머님의 생신을 생각지도 못하고 지나친 적이 있었는데, 그냥 그러려니 하실 줄 알았던 어머님께서 섭섭함을 비추셨을 때다. 그때 얘기 끝에 오는 내 생일에 뭐 해주실 거냐고 여쭈었더니, 꿈도 크다고 그러시며 내 생일에도 내가 선물을 해야하는 거라고 그렇게 말씀하시는 거다.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해주신 것을 감사하는 의미로 말이다. 그래서 "그럼 담에 장가가면 아내의 생일에도 장인장모님께 감사하다고 선물하고 그래야겠네요?" 라고 여쭈어 보았더니 "당연하지!" 라고 그때로선 약간은 의외라고 느껴졌던 대답을 하시는 거였다. 그때서야 난 생일선물을 하는 마음에 단순한 축하 이상의 의미가 있을 수 있음을, 아니 있어야 함을 깨달았던 것 같다. 바로 '감사하는 마음'이 그것이다. 당신께서, 그대가, 네가 존재하는 것이 나에게 얼마나 소중한지 모른다는...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생각이 들지 않는 건 아니지만, 이미 오래전 떠나버린 그녀에게 나중에라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해야 할 일일 게다. 그리고 언젠가는 내게도 그런 날이 올 것을 믿는다. 그의 생일을 맞아 새로이 모시게 된 부모님께 저녁대접을 하며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둘만의 시간에 준비해둔 생일선물을 내밀며 그대가 있어서 얼마나 고맙고 행복한지 모르겠노라고 그럴... === 아.. 선물을 내미는 그 순간까진 아무 것도 준비하지 않은 것처럼, 마치 부모님과 함께 하는 외식이 전부인양 그래야 할 것도 잊지 말아야겠다. 흐흐... 그녀가 자기 생일이 언제라며, 한두 주일 전부터 무엇을 선물받고 싶노라고 노래부르더라도 말이다. :) === 끝으로, 불야시님께선 문디님께서 깨우칠 수 있도록 미리 언질을 주지 않은 것은 중죄임을 아시고 반성 또 반성하셔야 한다고, 이 연사 강력하게 주장하는 바입니다! :p 해답은 없다. 앞으로도 해답이 없을 것이고 지금까지도 해답이 없었다. 이것이 인생의 유일한 해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