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OpenDiary ] in KIDS 글 쓴 이(By): MinKyu (김 민 규) 날 짜 (Date): 2005년 10월 4일 화요일 오전 01시 30분 24초 제 목(Title): Re: 히로시마에서 느낀것. 원폭 투하 전에 미국에서 사전 경고 또는 다른 방법의 무력 시위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고 합니다. 가령 예고를 해 놓고 무인도에서 시위를 하는 방법, 폭격 전에 사전 경고를 하는 방법 등이요. 결국 사전 경고 없이 원폭 투하를 한 이유가, 1. 만에 하나 폭탄이 동작하지 않을 경우의 역효과 2. 날씨에 따라 폭탄이 제 성능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 3. 단지 무력 시위만 할 경우 일본 정부가 은폐할 가능성 4. 제조된 폭탄 수가 충분히 많지 않았다는 문제 등이었다고 합니다. 시간표 상으로도 소련의 참전이 임박했기 때문에 미국 입장에서는 그 전에 원폭을 투하할 필요가 있었을 겁니다. 소련에 대한 시위도 겸하고, 또 소련 참전으로 일본이 그냥 항복해버리면 -- 실제로 일본에게는 소련 참전이 더 큰 충격이었다고도 합니다 -- 전후 극동에서 소련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을 미국이 원치 않았겠죠. 또, 원폭을 투하하지 않았으면 미국이 일본 본토에 상륙해서 1946년 여름까지 전투가 계속되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미군만 사상자가 최악의 경우에 백만명 정도 나올 것으로 예상했다고 합니다. 일본 군인 및 민간인 피해야 (일본은 민간인도 죽창으로 무장시키고 있었다니) 말할 것도 없겠죠. 또하나 간과할 수 없는 일이, 연합국이 1945년 7월에 일본에 무조건 항복을 요구하면서 수락하지 않으면 전적인 파괴가 따를 것이라는 경고를 했습니다. 물론 여기서 원폭의 참상을 꼭 유추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본도 한가지 실수를 한 것이, 당시 수상 (스즈키였나?)이 기자 회견을 하면서 연합국의 요구를 '묵살'한다고 대답했는데, 일본어에서는 '묵살'이 'no comment'의 뜻이 있는데 외신으로 나갈 때에는 무시한다는 뜻으로 오역이 되어서 (하여간 일본 수상이 오해의 소지가 있는 말을 한 것은 잘못이겠죠) 원래 수상의 본심은 절충안을 찾고자 했지만 이런 보도 상의 문제와 일본 육군의 반대에 밀려 포츠담 선언은 무시되고 원폭이 투하되었다고 합니다. http://en.wikipedia.org/wiki/Atomic_bombings_of_Hiroshima_and_Nagasaki 에 보니까 원폭 투하에 대한 찬반 양론이 소개되어 있네요. 과학자들의 반대 뿐 아니라 미국 군부에서도 일본에 대한 원폭 투하의 필요성에 의문을 가졌다고 하네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보면 소련의 참전 이전에 '결정타'를 날리려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문제는 그러한 것 때문에 결과적으로 우리나라가 분단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원폭이 일찍 투하되어 소련 참전 전에 일본이 항복하거나 원폭 투하 이전에 일본이 항복했으면 분단이 안되지 않았을까요? 굳이 따지자면 일본이 전쟁을 일으킨 것도 잘못이겠지만, 1944년 마리아나 해전의 참패와 사이판 상실 이후로 서태평양의 제공권, 제해권을 완전히 상실했을 때 일본이 더이상 전쟁을 할 이유가 없었는데 (이때 도죠가 사퇴했죠), 굳이 전쟁을 계속한 일본 군부의 무지막지함이 히로시마를 비롯한 일본 전역의 참상의 중요 원인 중 하나겠죠. 전쟁 자체를 죄악시하지 않더라도 아무런 희망 없이 무고한 인명을 희생시키는 전쟁이라면 정당화되기 어렵겠죠. 히로시마에 가지 못했는데 평화기념관에 그런 언급은 있는지 궁금합니다. 일본이 스스로에 대한 반성을 한다면 빠질 수 없는 부분일텐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