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OpenDiary ] in KIDS 글 쓴 이(By): zilch (_) 날 짜 (Date): 2005년 9월 25일 일요일 오후 06시 20분 01초 제 목(Title): 잠을 너무 많이 잤다. 언제부터인가, 잠을 오랫동안 자고 나면 그 이전과의 단절이 느껴졌다. 모든 것이 기억나기는 하는데, 화석처럼, 남의 일처럼, 너무 멀게 느껴지는 것이다. 지난 주에 교회에 갔었다. 좀 보수적이긴 하지만, 정교분리를 주장하는 목사님을 그나마 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지난 주에는 뜬금없는 이승만 찬양론이 등장하고, 나는 아연실색해 버렸다. 무엇이 그런 변화를 일으켰을까. 오랜 병원의 치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휴가 기간의 어떤 영향이었을까. 이 일은 오래 전 고등학교때 사회선생님을 생각나게 했다. 전두환 정권 아래서 그분은 잘도 정부비판을 교단에서 하시고, 양심을 잃지 않으려는 것처럼 보였다. 인기도 있었다. 그러나 어느날 갑자기 비보가 전해졌는데, 군대에 가 있던 아들이 교통사고(--라고는 하지만--)로 숨졌다는 것이다. 몹시 슬픈 얼굴로 힘들게 교단에 서 있었던 모습을 또한 기억한다. 그러나 극적인 것은 그 다음이었다. 몇달인가 일년인가가 지난 다음, 그분은 적극적인 민정당 지지자로 돌변하였다. 민정당 뱃지를 달고, 과격한 언어를 구사하며, 자신의 실제 모습보다는 보이는 모습을 더 사랑하게 되었다. 오늘부터는 일요일에 갈 곳이 없다. 부모님이 교회로 떠나신 후, 자전거를 꺼냈다. 그리고 근처에 있지만 한 번도 가본 일 없는 미술전시관과 만석공원에 들렸다. 호수의 물만 깨끗했다면 훨씬 좋았을 뻔했다. 가볍게 배어나는 땀이 (최근 들어서는) 신선한 경험이었다. 마지막 목적지는 경기도 과학교육원이었다. 그 곳은 예전에 학생과학관이었던 곳으로, 국민학교 때 나의 놀이터였다. 중학교 이후로는 인연이 없어졌지만, 그 곳에서의 기억은 나의 존재감을 지키는 양분 중 하나였다. 사반세기가 흘렀다. 수족관 뒷면의 그림은 예전 그대로였다. 물고기들은 옛날의 그 녀석들일리 없지만.. 안내하는 여자가 자녀를 찾으러 왔냐고 물었다. 그 말을 듣고는 요술거울 앞에서 내 모습을 다시 보았다. 이제는 자식을 찾으러 왔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시간이 지났구나.. 몇몇 전시기구는 그때 그대로였다. 모래로 그림을 그리는 진자, 거꾸로 비탈을 오르는 쇠바퀴, 떼어낸 수 만큼 충돌을 반복하는 쇠추.. 물론 기계식 교환기의 얼개나, 흑백 화상전화 등 구시대의 유물 같은 전시물은 사라져 있었다. 많은 전시물이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바뀌었는데, 상당수가 win95/98 계열의 블루스크린을 보이며 죽어 있었다. 예전의 전시물을 보았고, 그것이 있었던 기억을 떠올렸지만 어느 기억이고 화석화되어 있었다. 마치 70년대 신문 기사를 마이크로필름으로 읽는 것과 같았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조금씩 어긋난 트레이스 지"와 같은 비유를 사용했지만, 내 경우는 아예 불투명해져 버린 트레이스지와도 같았다. 한 장 열어 보면, 그곳에 원본이 틀림없이 있다. 그러나 트레이스지를 덮으면, 원본의 그림은 보이지 않고 새로 그린 그림만 (일부) 남아있을 뿐이다. 다시 원본을 보고 비교해 보아도, 사본과 원본과의 관계가 직관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예전에는 없던 젊은 아가씨가 입구를 지키고 앉아서 내 뒤통수에 안녕히 가시라는 말을 던졌다. 자전거를 타고 예전에 태풍에 시달리며 힘들여 올라왔던 길을 내려가며 아주 잠깐 실감나는 기억의 단편을 잡은 것 같았다. 무엇이 그렇게 서러웠기에, 아까운 기억마저 모두 지워버린 것일까. 아마도 두려움이었겠지. 아주 조금이라도 더 나을 미래를 꿈꾸던 그 때를 떠올리는 것이 두려움이었겠지. 그 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지나가는 사람처럼 몇 마디만 해 주고 싶다. 인간에 대해, 기대에 대해, 상처에 대해, 그래도 희망에 대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