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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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ic ] in KIDS
글 쓴 이(By): prewis (안혜연)
날 짜 (Date): 1995년06월24일(토) 12시42분55초 KDT
제 목(Title): <> 빅토르 최 <>




 외모는 보다 잘생긴 믹재거, 목소리는 더 강하고 끈끈한 마크 노플러의

목소리를 가진 '빅토르 최'는 구소련의 젊은이와 장년층의 정신적 영웅으로서

그의 무덤이 언제까지 그를 추모하는 사람들의 담배꽁초와 붉은 꽃들고 장식될까?

 소련인 어머니와 한국인 아버지사이에서 태어난 그의 직업은

1990년 8월 15일 자동차 사고로 죽기전까지 한달에 50루블씩 받는

화부(불때는 사람)였다. 그의 일터는 어느 건물 지하동굴(캄차트카)로

석탄을 개며 불을 때우는 일외에 기타를 치며 노랫말을 만들고 이에

곡을 부치는 가수 겸 작곡가였고  그의 노래를 듣고 찾아오는 순례자들과

함께 인생에 대해,사랑에 대해,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해  애기하는

동지이기도 했다.   

캄차트카내부 벽면에는 순례자들이 남긴 자취로 인해 더이상 어두침침하고

고독과 두려움의 지하동굴이 아닌 빅토르의 살아생전이나 사후나 그의 숨결과 

저음의 터프한 목소리로 '우리는 자유를 원한다~~'의 노래가 울려퍼지는 듯하다.

개방의 물결을 타고 흘러온 서구의 락음악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여타의 젊은이들과는 달리 빅토르는 여기에 소련인의 개혁의지,바램,

때로는 이들의 흔들림과 나아갈 방향을 노래에 실었다.

뭇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던 외침을 그는 노래로써 그들의 마음을 대변해

준 것이다. 이 점이 그가 노래를 함으로써 그도 예측하지 못했던 파급효과를 

가져다 주었는지도 모른다.

빅토르가 죽기전에 계획하던게 있었다. 바로 그의 반쪽의 나라,그의 아버지의 

나라인 여기 한국 서울에서 콘서트를 갖는 것이었다. 이 일로 인해 빅토르는 

그 당시 굉장히 들떠있었고 희망에 차있었다고 그의 부인은 회고한다.

그런 그가 서울 공연을 두 달 앞두고 어느 날 갑자기 자동차 사고로 죽자

각지에서 몰려든 그의 팬들에 의해 장례식이 치루어졌고 이젠 그가 가고 없음을

안따갑게 여기는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그의 노래를 부르므로써 빅토르가

못다한 노래를 대신해 불러주고 있다. 심지어 좀더 열광적인 추종자들은

그의 묘가 있는 묘지내의 공중변소에 십여명씩 모여 기거하면서 매일 아침 

그의 묘에 빨간 꽃과 빅토르가 즐겨 피던 담배를 대신 핀다음 갖다 놓곤 한다.

아무도 이런 일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의 무엇이 사람들로하여금 그의

묘지를 지키게 하는 것일까. 묘지를 지키는 젊은이들이 그렇다고 자기 일을

내팽개친 채 하는건 아니다. 학교에 가고 일터에 가서 일을 한다음 그의

묘지를 지키러 오는 것이다. 처음에 약간은 정신이 나간 짓이라고 보여지는 것들이

내 정서로는 이해가 안되었는데 이건 내 정서와는 무관하다. 그들의 정서는 나랑

다를수 있고 내 정서로 이해할 수 없다고 그들의 행동을 미친짓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다. 빅토르가 그들의 삶에 있어서 얼마만한 영향을 끼쳤는지 내가 완전히 

알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반쪽은 한국인이면서도 소련사회에서 어느 대중가수 못지않게 인기를 얻은

가수이긴 하나 빅토르에게는 '스타'라는 말보다는 '작은 영웅'이라는 수식어가 

더 어울리는건 왜 일까..

 그는 화부였고, 인기를 얻은 이후에도 화부생활을 계속했다. 이런 밑바닥 생활에서

그가 느끼고 바라는 것은 바로 러시아인의 바램이었고 이를 노래에 담아 

각자의 바램,외침이 혼자만의 것이 아닌 다른 사람과 같은 것임을 확인시켜 준 

것이다. 


사족: '빅토르 최'에 관한 다큐멘타리를 본 pinokio 님 반갑던데요?
      저 혼자만 본 줄 알았죠.. 이 글에서 틀린거 있으면 애기해주시길:)


프레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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