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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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Music ] in KIDS
글 쓴 이(By): kimsh (CHEN)
날 짜 (Date): 1994년11월06일(일) 19시32분11초 KST
제 목(Title): 서태지와 음악성의 문제



으흐, 최근에는 좀 잔잔해진것 같은데 아시다시피 서태지 2,3집 음반에 피가 고파, 
피가 고파와 같은 말이 음반을 거꾸로 들으면 들려진다고 해서 문제가 되었습니다.

신문이나 방송에서도 대체로 이런 의혹(또는 진실?)을 받은 서태지를 두둔하는 
입징인 것 같았습니다. 저도 서타이지가 그런 말을 넣었다 안 넣었다 하는 문제는 
이제 그만 두었슴 좋겠네요.

하지만 이왕 이야기가 나온 만큼 서태지의 음악 전반에 대한 문제는 한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는것 같습니다. 언론에서 평가하는 서태지의 음악은 대체로 
우리나라의 가요에 획을 그을 만큼 신선하고 충격적이고 대중음악의 개념을 
바꿀만큼 수준이 높다고 평가하고 있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미국의 아류이다 또는 
지나치게 새로운 것을 추구하려는 나머지 대중들의 음악선호경향과 빗나가 버렸다 
거나 우리나라 실정과는 아직 어울리지 않는다고 평하기도 합니다. 어쨌건 
서타이지(영어를 그대로 읽으면)의 음악을 '새롭다'라고 평가하는 데는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저도 서태지와 아그들의 1집이 나왔을 때에는 상당히 놀랐습니다. 기존의 
댄스음악이나 pseudo랩음악들은 한결같이 리듬과 박자가 강렬하게 느껴지는데 
지나치게 반복적이고 단순한 리듬체계를 갖고 있어서 듣고 있는 사람이 흥겹기는 
하지만 트로트나 발라드처럼 감정섞인 느낌을 전달하기는 좀 무리라고 
생각되었습니다. 서태지의 1집은 이런 고정관념을 어느정도 깨뜨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쉬운 것은 서태지 1집의 랩음악은 어디까지나 미국식의 랩음악이라는 
점입니다. 가사는 좀 그렇지 않지만 박자나 멜로디는 어디까지나 미국의 방법론을 
답습한 것입니다.

사실 우리나라풍의 순수한 대중음악은 사실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일제시대부터 유행했던 트로트는 어디까지나 일본의 '엔까'를 답습한 것이고 
70년대의 포크음악이나 발라드 현재의 랩음악이나 팝송비스무리한 것들 모두가 
미국의 유행가사조를 답습한 것입니다. 제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그래도 가장 
우리나라의 정서에 맞게 발전한 쟝르는 포크음악인 것 같습니다. 주로 당시 
젊은이들을 주축으로한 이 포크음악은 당시까지의 사랑타령이나 놀고먹자식의 
노래에서 벗어나 상당히 지적인 음악가사와 상당히 한국화된 멜로디와 리듬이 
지금에 와서 들어도 그리 반감이 가지 않습니다.(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느낌이 
그렇다는 것. 오해 마세용!)

각설하고, 요즈음의 음악사조는 주로 미국으로부터 오는 것인데 그 수입방법이 
예전과는 사뭇 다릅니다.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방식이 상당히 서구화(라기보다는 
미국화)되어 있는 탓인지 모르지만 외국문화가 유입될 때 거의 원형 그대로 
들어옵니다. 다른 것은 그대로 있고 가사만 한국말로 바뀝니다. 예컨데 서태지 
1집에서 미국 랩가수들의 흉내를 내어 처음 도입에 '요, 태지'하고 외치는 소리를 
들을 수 있고 015B의 4집 '아주 닳은 연인들'에서 'stop the beat!'라고 끝부분에 
외치는 것을 들을 수 있습니다. 현재 미국음악의 특징은 아주 상업화가 극에 
달했다는 특징을 들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상당수의 외국출신 록그룹 
예컨데 '전갈들'이나 '헬로윈'등의 그룹들도 초기 활동에서와는 달리 아주 
상업화되고 있습니다. 물론 안그런 경우도 꽤 있지만. 특히 흑인들의 비트가 강한 
음악들이 우리나라에 큰 선풍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이 흑인들의 음악은 자신들의 억눌린 삶을 한탄하거나 해소하려는 듯이 가사가 
매우 공격적이고 리듬이 매우 강하고 파괴적인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물론 
소울이나 재즈처럼 예술적인 성취도가 높이 평가되는 쟝르도 있습니다만 이러한 
쟝르는 매우 난해하고 고도의 예술적인 기교가 요구되어 대중을 휩쓸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런 쟝르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우리나라 가수(음악인)들은 사실 흉내를 
내거나 양념을 치는 정도에 불과합니다.

 사실 위에 이야기한 흑인들의 음악은 한때 미국에서 큰 인기를 끌어 모았지만 
현재는 계속 인기가 하강세에 있다고 들었습니다. 마치 80년대에 큰 반향을 불러 
모았던 헤비메탈(특히 트래쉬 메탈)이 부진을 면치 못하듯이. 사실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이러한 흑인 음악을 상업적으로 또 대중음악의 장르로 성공시킨 사람은 
바로 서태지 입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현진영이나 3-5명으로 구성된 노래그룹(뭐 
잼이나 노이즈 1730등)이 계속 쏘다져 나온 것입니다. 죄송한 얘기이지만 사실 
서태지 이후에 나온 대부분의 가수나 그룹들의 음악적 성취도는 서태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리고 상당수의 가수들은 이미 그 존재가 
미미해졌거나 그룹이 해체되고 바뀌고 하는 진통을 겪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한마디로 '아류'이상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하지만, 전 서태지의 2집까지는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3집은 좀 불만스럽습니다. 
우선 서태지의 3집은 상당한 고민끝에 나온 것으로 짐작됩니다. 곡의 성격이나 
구성도 그렇고 좀 인기를 노린 냄새가 나지만 교실이 어떻고 저떻고 하는 소위 
사회비판적 가사도 있고 발해가 어떻다 저떻다 하는 (가사가 기억 안나네요. 죄송!)
내용도 있고.......

사실 서태지의 음악에서 그런 내용이 있다고 얼마나 사람들이 그 내용을 곰곰히 
씹어볼지는 의문입니다. 서태지의 성공은 언제까지나 대중적인 것이고 대중을 
거스르는 것은 하나의 제스추어일 뿐이니까요. 뭐 내가 이런 것도 했다.... 하는 
정도. 제가 말하ㅗ 싶은 것은 그게 아니라 전 3집에서 좀 창조적인 것을 
기대했다는 말입니다. 즉, 서태지가 그만큼 성공을 거두었으니 이젠 미국식의 
음악이 아니라 어느정도 주체적인 역량을 키웠어야 되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하지만 서태지의 3집에서는 새로운 것을 시도한다고는 했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자기 그룹내에서 의미 있는 말입니다. 즉 새로이 시도한 강렬한 메탈음향 따위는 
서태지가 이런 것을 시도했다는 데에서는 의미가 있지만 우리나름대로의 뭔가가 
이루어졌다고 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사실 뭐 꼭 우리나라의 대중음악이 독창적이어야 하는가, 그냥 음악이 좋으면 
땡이지 하고 말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안타까운 것은 외국의 새로운 
것을 소개하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우리의 새로운 것을 표현하려는 시도는 
대중음악에서 전무하다는 실정입니다. 또 그런 시도는 대중ㅐ� 인기를 얻지 못해 
실패로 돌아가기 십상이고. 그래서 가장 인기있고 성공적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 
같은 그룹들이 좀 이런 일을 해주었으면 어떨까 했지만 역시 그렇지 않더군요. 
오히려 신문에 나올 때 초상권 따지고 더욱 상업화(=미국화)된 것 같더군요.

한마디로 서태지와 아이들은 계속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그 것이 자신들의 음악의 
창조적 발전에서 나온 것이라기 보다는 상업적 전략과 연결되는 단순한 '새로운 
것'의 추구에서 나온 것이고  또 새로운 것이 어디까지나 '미국적'이라는 것이 
그들의 음악의 한계이고 또 우리나라 대중음악의 한계인 것 같아 씁쓸합니다.

저의 이 길고 지루한 이야기를 혹시 읽어주셨다면 감사드리고 또 저의 이야기에 
많은 무리가 있다는 것 인정합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중가요를 사랑하시는 
여러분들께서 이런 점을 좀 생각해 주셨으면 해서요.

-헥헥,    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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