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목록][이 전][다 음]
[ Music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lokjh) <z.glue.umd.edu>
날 짜 (Date): 2003년 5월 27일 화요일 오전 10시 13분 09초
제 목(Title): [한겨레21] 음악계 패거리들을 조롱하다


"한겨레21"에서 퍼 왔습니다.


[ 박노자의 세계와 한국 ]  2003년05월21일 제460호

음악계 패거리들을 조롱하다

러시아의 이단아적 작곡가 유리 한인… “클래식 작곡행위는 사춘기 자위행위와 
뭐가 다른가


1980년대 중반의 레닌그라드(현재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음악원은 그때만 
해도, 지금과 같이 ‘돈 되는’ 외국 학생들의 모집에만 목말라하는 ‘장사를 
하는 상점’의 모습은 아니었다. 젊은 세대의 창조적 음악 탐구나 ‘개인적으로 
튀는 행동’을 허락하지 않는 무거운 권위주의적 아카데미즘의 분위기였다. 
그때는 ‘스캔들’이라고 하면 대개 교수나 학생의 서방 망명사건 같은 것을 
의미했는데, 그러한 일을 방지하도록 KGB가 음악원에서 밀고자의 네트워크를 늘 
가동하고 있었다. 

스승에게 굽신대지 않는… 

그러던 중, 음악원에서는 갑자기 색다른 ‘스캔들’이 터져 세인의 이목을 
끌었다. 유리 한인(Yuri Khanin)이라는 당시 가장 유망했던 작곡과 학생이 
갑자기 청천벽력의 제적을 당한 것이었다. 더욱 놀란 것은 이례적인 제적의 
사유였다. ‘학사 부실’도, ‘불온 사상’도 아니고, 단지 그 학생이 자신이 
작곡한 오케스트라 음악을 시내의 큰 연주홀에서 몇 차례에 걸쳐 연주했다는 
것이 화단이 된 것이다. 작곡을 공부하는 학생이 자신의 음악을 연주하는 게 
무엇이 잘못일까? 그러나, 그는 음악원의 기존 스타일과 전혀 다른 형태의 
음악을 작곡했고 ‘은사님’들의 허락을 받지 않았으며 또한 연주회 때 그들의 
이름을 언급하지도 않았다. 

그럴 때, ‘학생’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한국의 풍토도 최근까지만 해도 
별로 다르지 않았지만 도제 시스템의 권위주의가 매우 강했던 소련에서도 
‘비는 것’이 거의 유일하다 싶은 해결법이었다. 그러나, 유리 한인이라는 
학생은 이미 ‘반골’로 알려진 터라 아무도 그가 몸을 굽히리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그는 용서를 빌지 않았다. 그렇다면 ‘음악가로서의 생활’을 포기할 
것인가? 그를 이미 음악계로의 복귀가 불가능한 ‘아까운 재인’으로 여기는 
것이 중론이었는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소식이 들렸다. “유리 한인같이 
천재적인 학생이 공부할 수 없다면 공부할 사람이 아무도 없다!”라는 
‘명언’을 한 교수가 그를 복귀시켰다는 소식이었다. 

유리 한인은 그 교수에게 허리 굽혀 감지덕지의 뜻을 표하기는커녕 찾아가서 
“당신의 마음은 높이 평가하지만, 입에 발린 감사의 말은 드리지 
않겠습니다”라고 했다. 그것은 그 누구에게도 복종하려 하지 않고, 사회든 
국가든 사제지간의 예의든 모든 형식과 전범(典範)에 대항할 수 있는 유리 
한인이라는 현재 러시아의 이색적 작곡가의 성격을 가장 잘 표현한다. 그에게는 
유익한 ‘사교적 관계’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세속과 다른 그의 특이한 
음악만 존재한다. 유리 한인을 사람들은 보통 ‘음악의 아나키스트’라고 
부르지만 아나키스트로서의 그는 아마도 단순히 국가만 부정하는 
크로포트킨(Pyotr Kropotkin·1842∼1921)보다도, 인간이라는 종류 그 자체가 
국가라는 족쇄를 필요로 하지 않을 새로운 종(種)으로 거듭나야겠다고 봤던 
중국의 도교적 아나키스트 장병린(1869~1936)에 더 가까울 것이다. 

그의 음악도 그의 행동도 범상한 인간으로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이 많다. 
조상들과 부모 모두가 음악가인 가정에서 자란 유리 한인은 이미 고등학교 
시절부터 ‘이단아’로 알려져 있었다. 모차르트를 위시한 전형화된 음악의 
‘정전’(正典)만 강요하는 학교 분위기에 반기를 들어 모차르트를 마치 그리스 
계통의 유명한 현대 작곡가의 야니스 크세나크시스(Iannis 
Xenakis·1922∼2001)의 풍처럼 연주해 교수들의 대노를 사기도 하였다. 

“나는 ‘음악가’도 ‘국민’도 아니다

일각의 젊은 지식인들과 음악가들의 흠모와 대다수 보수주의자들의 질시와 
혐오를 모두 등에 업고 음악원을 졸업한 뒤 그의 행동은 러시아 음악계에서 
더욱더 충격적이었다. 정식 취직을 일체 거부하고 음악계의 권위 있는 
‘어르신’들과 상종하지 않은 그는, 명 감독 소쿠로프(Aleksandr Sokurov)의 
영화 <일식(日蝕)의 날들>의 주제 음악을 작곡해 해외에서 권위 있는 상을 
수상하기도 했지만, 일련의 신문 기사와 인터뷰에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말을 꺼내 음악계의 지탄을 받았다. 

한 인터뷰에서 나온 그의 말을 들어보자. “지금 소위 클래식 음악을 만드는 
사람들의 작곡 행위는 사춘기에 경험하는 자위 행위와 과연 무엇이 다른가? 
과거의 형식만 알 뿐 독자적인 사상이 없이 새로운 아무것도 낳지 못하니 
이것은 역시 자위라는 단조로운 성행위의 특징이 아닌가 그러면서도 작곡을 
끝낸 뒤에 만족감을 느끼는 것을 보면 자위하는 사춘기 청소년의 수준과 
대동소이하다.”

또한 ‘내가 왜 음지를 벗어나 양지를 지향하지 않는가?’라는 제목의 그의 
기사를 보자. “지금의 인류 세계라는 것은 밖에서의 경쟁과 안에서의 획일성 
강조를 주된 특징으로 하는 각종의 크고 작은 패거리들로 구성돼 있다. 그들 
패거리 중에서는 ‘국민’에게 빵을 나누어주고 ‘비국민’을 합법적으로 
살육할 권한을 가진 국가라는 패거리가 가장 포악하다. 차원은 다르지만 ‘우리 
사람만 챙겨주고 남은 배제하기’를 철저하게 행하는 것은 소위 ‘음악가’들 
사이의 패거리들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의미에서, 나는 ‘음악가’도 
‘국민’도 아니다. 그 어떤 패거리에도 소속될 마음이 없다.”

“브람스의 4중주곡을 들어보면, 그 브람스라는 사람이 청중들을 
괴롭혀보겠다는 가학증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말로 유명한 
희대의 우상 파괴자 유리 한인에게도 존경하는 음악적 스승이 없지는 않다. 
그는 러시아의 스크랴빈(Skryabin·1872~1915)이라는 ‘이단적’이며 난해한 
신비주의 작곡가를 자신의 영적인 차원의 ‘전신’(前身)으로 생각하며, 
680쪽에 이르는 스크랴빈 평전을 썼다. ‘평전’이라고 하면 학술체의 꽤나 
딱딱한 책의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1996년에 아주 어렵게 출판된 <스크랴빈의 
얼굴>이라는 책은 대화를 담은 소설체로 쓰였다. 그 책의 주인공은 스크랴빈과 
유리 한인 두 친구로 묘사된 인간적·음악적 관계의 역사이다. 

현대인이 과거 인물의 전기를 그 인물과의 ‘관계사’로 쓴다는 것은, 러시아는 
물론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특이한 기법이다. 과거의 주역들과 
나누는 ‘가상 대화’는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장르이지만, 유리 한인은 나아가 
소설화된 전기에서 자신을 스크랴빈과 같은 시대 인물이자 친구, 음악 탐구의 
도반(道伴)으로 묘사했다. 

이 전기는 ‘내면적 전기’라는 전혀 새로운 장르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속류(俗流)들이 생각하는 생물적 생몰 연대가 어떻게 되든 간에 내면의 
차원에서 스크랴빈이 한인의 마음속에 살고 있으며 한인의 마음이 이미 
스크랴빈 안에 내재됐다는 이야기다. 이해를 못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난센스로 들리겠지만, 창조적인 모든 인간들의 영(靈)이 하나라고 믿었던 
신지학(神智學) 신봉자 스크랴빈의 입장에서는 어디든지 통할 수 있는 말이었을 
것이다. 구성이 독특할 뿐만 아니라 스크랴빈의 인생과 음악에 대해 아주 
세밀한-전문적 학자의 연구 논문 이상으로 전문적인- 고증을 바탕으로 서술한 
이 책은 출판된 지 얼마 안 되어 장안의 화제가 되었지만, 음악계를 장악하고 
있는 패거리들에 의해 거의 완전하게 인위적인 묵살을 당한 것은 현대 러시아 
‘문화 엘리트’들의 비참한 수준을 보여주는 좋은 사례이기도 한다. 

‘해탈의 음악’을 향한 구도의 정신

사회·문화 비평과 음악사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가질 뿐만 아니라 라틴어 구사 
능력이나 식물학 등 해박한 지식으로 지인들을 놀래키는 ‘만물 박사’ 유리 
한인은 무엇보다 아주 독특한 작곡가다. ‘다섯개의 아주 작은 오르가슴들’, 
‘호주머니 속의 신비한 곡’, ‘중도의 심포니’와 같은 언뜻 보면 약간 
‘이상한’ 이름을 가진 그의 곡들은 하나의 투철한 이념에 의해서 구성됐다. 
그 이념이라는 것은, 인간적인 희로애락을 완전히 벗어나 우주의 도(道)가 
들려주는 ‘초인간적’인 음악, 인류 전체를 좀더 나은 정신적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해탈의 음악’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음악사적인 
차원에서 본다면, 유리 한인은 세속화된 현대의 클래식 음악에 아주 강한 개인 
종교적인 요소를 도입해 그 모습을 전체적으로 바꾸고 있다. 자신을 
‘카노니크’(수도승)로 부르는 그는, 음악분야뿐만 아니라 러시아 문화 전체로 
봐서도 매우 독보적인 존재다. 만약 그의 사상과 음악에 대한 이해가 좀더 
폭넓어진다면, 고전의 모방과 상업주의에 빠진 현재의 타락한 말류적 서방 
문화는 다시 한번 새로운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참고 사이트: 

1. 유리 한인에 대한 소개와 그 인터뷰, 기사의 이부(러시아어): 
http://www.veselago.org/lib.phpid=107 

2. 필자의 사이트에서 유리 한인 일부 신문 기사의 영문, 한글 번역을 읽을 수 
있다: 
www.geocities.com/volodyatikhonov/volodyatikhonov.html 

3. <일식의 날들>이라는 영화에 대한 비평 기사: 
http://www.ce-review.org/00/3/kinoeye3_horton.html 

4. 스크랴빈 음악의 녹음 테이프, CD 안내:
http://classical.mysic.com/Alexander_Nikolayevich_Skryabin.html 

박노자 ㅣ 오슬로국립대 교수·<아웃사이더> 편집위원
[알림판목록 I] [알림판목록 II] [글 목록][이 전][다 음]
키 즈 는 열 린 사 람 들 의 모 임 입 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