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usic ] in KIDS 글 쓴 이(By): staire (강민형) 날 짜 (Date): 1994년04월06일(수) 05시09분09초 KST 제 목(Title): 작곡, 그 멀고도 험난한... staire는 전부터 한가지 불만이 있습니다. 왜 우리나라에선 국적불명의 결혼식을 하면서 음악만은 늘 바그너와 멘델스존의 '그 곡'만을 고집하는지... ...해서 작곡을 배워 저의 결혼식 음악만은 제가 만들려는 야무진 꿈을 가졌던 적이 있습니다만... 뭐 재능도 없고 결혼도 할 지 안 할 지 모르는 상황이라... 제가 보기에 '옳은 순서'가 있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다만, 몇 단계로 구분한다면 많이 듣는 단계, 기본 지식을 습득하는 단계, 실제로 해 보는 단계등입니다만... 이 셋은 사실 많이 뒤섞입니다. 작곡에 뜻을 두셨다면 많이 듣는 단계는 어느 정도 졸업하신 셈이고 아마 기본 지식의 습득 단계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원하시는 듯한데... 화성법은 출발은 어느 것으로 해도 무방합니다만 (김성태와 Piston.. 제 경우엔 이 둘을 병행했지만요) 너무 잘하려고 애쓰시거나 자질구레한 규칙에 얽매이지 마시고 실제로 피아노로 눌러보면서(손가락 네개면 할 수 있습니다) 그 소리들을 '납득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재즈에 관심 있는 분은 그쪽으로 책이 따로 나오는데 그것만 보지 마시고 고전화성을 탄탄히 해 두시기를 권합니다. 그다음은 반음계적 화성법... 백병동님의 책이 무난한데 이것 역시 자잘한 것에 신경쓰기보다는 소리를 듣는 것이 중요... 우리가 고리타분한 사람들로 치부하던 고전파 작곡가들의 화성적 상상력과 창의력에 놀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배우는 셈입니다. 이건용님의 번역으로 나오는 Shir-Cliff의 책도 훌륭합니다. 근대 프랑스 작곡가들의 (샤브리에, 포레, 드뷔시, 사티, 댕디, 라벨, 뒤카...) 환상적인 화성에 근접해보고 싶은 분들께는 Lenormand의 근대화성론을 권합니다. 박일경(제게 대위법을 강의해주신 분입니다) 님의 번역으로 국내에 나와 있습니다. 단, 이 책은 초보자용은 아닙니다. 이쯤 해둔 뒤 대위법을 뛰어넘고 바로 관현악법을 공부하는 편이 쉽습니다. 우선 악기에 대한 기본 지식이 있어야 하는데 피스톤이나 케난의 관현악법 책이 무난하고 중요한 것은 음악 서클(고전음악이든 대중음악이든)에 가입하셔서 다양한 악기의 특성과 효과, 연주시의 문제들에 대해 그 악기를 연주하는 분들의 조언을 구하는 것이 필요하며 스스로도 (아무리 서툴러도 좋으니) 몇가지 악기를 만져보실 것을 강력히 권합니다. 악기에 대해 어느정도 알게 되었다면 본격적으로 관현악법을 공부할 차례인데 안타깝게도 교재를 통해 배우기는 거의 불가능합니다. 전문가에게 레슨을 받는 것이 제일 알기 쉽지만 그에 병행해서 (혹은 레슨을 받을 처지가 안되면) score reading을 익혀야 합니다. 여기에서 스코어 리딩이란 음대 강의실에서 배우는, 스코어를 놓고 피아노로 곧바로 연주하는 연습이 아니라 글자 그대로 스코어를 읽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장 알찬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선 바로크 시대의 작품이나 고전 실내악 등을 통해 작은 편성의 악보를 놓고 모든 파트를 '한눈에', 마치 속독을 하듯이 읽어나가는 연습을 합시다. 세세한 부분은 무시하고 우선 흐름을 catch할 수 있으면 됩니다. 단순한 악보라도 한소절도 놓치지 않으려면 꽤 연습하셔야 하는데 충분히 그만한 가치가 있으니 부지런히 합시다. 익숙해지면 하이든이나 모짜르트의 교향곡으로 현악기를 쓰는 기본 용법을 배웁니다. 진부하지만 기본이니까요. (사실은 공부할수록 새롭습니다. 전혀 진부하지 않아요.) 건반화성을 현악 합주로 옮기는 연습을 이때 시작하시면 효과가 큽니다만 반드시 '연주'해보며 확인해야 합니다. 뭐 아주 간단한 곡을 현으로 편곡해서 위에 말한 서클 사람들이 연주하도록 해보는 게 제일... 아무리 연주를 못하는 연주자에게 시켜도 문제없습니다. 너무 잘하는 사람들은 뭐든지 멋있게 연주하니까 오히려 공부가 안될 수도 있어요. 슬슬 베토벤을 시작하실 때가 됐군요. 베토벤이 멋있는 말을 남겼죠. '피아노를 쓰지 않고 작곡하는 연습을 하자.' 확실히 베토벤 이전은 피아노 악보를 현으로 옮긴 뒤에 관악기로 양념을 친 데 불과하니까요. (뭐 선배들을 깎아내리자는 게 아니라... 관현악법의 관점에서 볼 때 그렇다는 거죠.) 진정한 관현악은 베토벤이 낳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오케스트라라는 새로운 '악기'를 만들어낸 사람이죠. 9개의 교향곡은 암기할 정도로 읽어둡시다. 그리고 베토벤에게 배운 걸 슬슬 써먹어보는 겁니다. 연주자들의 불평이 들리기 시작할 겁니다. (단, 8,9번은 적어도 관현악의 입장에선 걸작이 아닙니다.) 6, 7번이 교재로는 그만 입니다. 6, 7번에 등장하는 관악기의 용법은 가히 압권... 베토벤을 졸업하시면 자유롭게 좋아하는 스타일을 택해도 됩니다만 말러는 듣기에 편한 데에 비해 악보는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어려우니 섣불리 덤빌 일이 아닙니다. 관심있는 분은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관현악법 책을 보시면 현란한 세계를 발견하실 겁니다. 이정도의 연습을 마치시면 웬만한 스코어는 척 보는 순간 화성까지는 느끼지 못하시더라도 '음색'은 짐작이 갑니다. 이때부터는 창작의 즐거움을 맛보실 수 있습니다. '머리 속에서' 원하는 음색을 떠올리고 그것을 악보로 구현하고 연주로 확인하는 작업... 그 즐거움이란 안해본 사람은 모릅니다. 영어공부를 해보셨으니 다들 아실테지만 초보 시절엔 단순한 단어 하나도 피나게 써보며 암기하지만 이젠 한번 척 보기만 해도 웬만한 단어는 그냥 암기되지요? 영어 어휘의 '가닥'을 잡았기 때문입니다. 이제 여러분은 관현악단이라는 거대한 악기의 소리에 대해 가닥을 잡은 셈입니다. 이정도 단계에 도달하시면 어느덧 화성법에는 별로 신경 안쓰면서도 원하는 소리를 제대로 잡아내어 흠잡을 데 없이 표현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뿌듯해지실 겁니다. 이제는 대위법을 원하시면 대위법을, 현대 음악에 관심이 있으시면 현대 음악을 공부할 차례... 대위법은 무슨 일이 있어도 레슨을 받읍시다. 천재라면 모를까, 혼자 공부해서는 보람이 없습니다. 18세기 대위법이 제일 쉬우니 그것부터... 갈로아님이 추천하신 케난의 책이 좋더군요. 16세기 스타일은 그 시대 음악의 깊은 맛에 공감하시는 분에게나 필요한데... 솔직히 저는 잘 모릅니다. 다만 '선법'에 대한, 이름뿐이 아닌 실속있는 공부가 되니 원하시는 분은 하다못해 남이 대위법 공부하는 걸 구경만 해도 건지는 게 있을 겁니다. 제가 딱 그 선까지밖에 못갔어요. 16세기 대위법이 단순해보인다고 해서 우습게 보시면 안됩니다. 메이저 마이너 시스템에 익숙한 동양인으로서는 좀처럼 뛰어넘기 어려운 거대한 벽입니다. 박일경 선생님께선 메이저 마이너 시스템으로 우선 16세기 대위법의 맛만 보이신 다음 18세기풍의 imitation, canon, fugue를 차례로 정복하는 커리큘럼을 쓰시는데 저도 그분께 끝까지 배우지는 못했지만 훌륭한 해결책이라고 생각합니다. 현대 음악은 배워서 되는 건 아닙니다만... 3권의 책을 추천합니다. 입문서로는 Marquis의 '20세기 음악 어법'. 선율, 리듬, 화성 대위를 포괄한 괜찮은 책입니다. 그리고 카셀라, 모르타리 공저 '현대 관현악 기법'. 관현악법의 최첨단을 구경(단지 구경에 그칠 뿐이지만... 이 책의 example들은 음반을 구하기 힘들어 공부하기가 쉽지 않지만 이만한 책도 드물 겁니다.)하실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트라빈스키의 걸작 '봄의 제전' 스코어. 뭐 스트라빈스키도 현대음악이냐고 하실 분들이 많겠지만 이 작품은 그야말로 현대 관현악의 백과사전입니다. 매일 듣고 읽으시면 엄청난 보물을 건지실 겁니다. (전 요즘도 일주일에 한번은 읽고 있어요.) 고전적 색채와 대중음악, 심지어는 효과음악까지도 봄의 제전에서 창안된 어법을 이용하고 있거든요. 현대음악에 관심이 없으신 분들이라도 이 스코어는 일독을 권합니다. 이렇게 하시다 보면 치기 싫던 피아노도 좀 늘고 지휘법에 대한 약간의 지식도 체득될겁니다. 그리고 머리속에 갖가지 음색이나 화성 어법의 풍부한 library가 자라납니다. 장황하게 소개한 위의 방법은 저 자신이 공부한 방법을 그대로 쓴 건 아니고... 단지 제가 다시 처음부터 배운다면 이런 방법이 재미도 있고 가장 빠르지 않을까 하는 제 나름의 '제안'입니다. 대중음악에 대해서는 소양이 부족하고 경험도 적어 쓸 말이 없군요. 그리고 끝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이 만들고자 하는 음악의 세계가 확실해야 합니다. 모방은 모방으로 끝날 뿐, 좋은 연습은 될망정 작곡의 의미는 없거든요. 전 단지 오랜 시간을 투자해 공부했을 뿐 무슨 철학이 있는 것도 아니고 남에게 감동을 주기는커녕 스스로 즐기기에도 부족한 재능을 한탄하는 입장입니다만 숨어있는 인재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하여 써봤습니다. 이런 공부를 하시다보면 작곡을 잘 할 수는 없더라도 적어도 '음악을 속속들이 즐기는' 기쁨을 맛보실 거라는 점만은 저의 경험을 걸고 100% 보장합니다. 베토벤, 베를리오즈, 바그너, 포레, 스트라빈스키. 그리고 존경하는 박일경 선생님의 가르침에 깊이 감사드리고 싶은 기계쟁이 스테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