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쓴 이(By): sbison (M.BISON) 날 짜 (Date): 1993년06월23일(수) 12시03분13초 KST 제 목(Title): 위대한 음악가들 - 헨델 7 ........................................................................... 게오르그 프리드리히 헨델 ........................................................................... 독일로 돌아온 이후 헨델은 영국 방문했다. 그는 스물 다섯살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미 평생 갈 명성을 얻고 있었다. 헨델의 런던 입성은 마치 말라 버린 골짜기로 갑자기 흘러드는 신선한 물줄기와도 같았다. 어색하지만 부드러운 자연림의 목소리를 가지고있던 퍼어셀-"영국의 모짜르트 축소판"이라고 불리던-은 이미 십오년 전에 죽었고, 영국은 새로운 목소리의 출현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었다. 헨델은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 런던 오페라단의 감독 애론 힐은 그에게 작곡을 간청했다. 헨델은 스스럼없이 승락하고, 열하루 만에 오페라를 하나 완성해 주었다. 이 오페라 '리날도'의 성공은 굉장한 것이었다. 그 중의 한 곡인 '카라 스포사'는 전 영국에 걸쳐 유행가가 되었다. 또 다른 곡은 영국 근위 기병대의 행진곡으로 채택외었으며, 이십여 년 후 '거지의 오페라'에서 노상 강도의 합창(?)으로 다시 사용되었다.(헨델은 유머 감각이 풍부한 모양이다.) '리날도'의 제작자인 왈쉬라는 사람은 이 오페라로 만 달러를 벌었다. 그러나 헨델에게 돌아간 돈은 매우 적은 액수였다. 헨델은 농담으로 다음번엔 왈쉬가 작곡을 하고 자기가 제작을 맡겠노라고 했다. 그렇게 하면 공평해직 것이러고 말했다. 그는 잠시 하노버로 돌아갔지만, 그도시에서는 오페라가 이미 사양길에 접어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시야를 다시 런던으로 옮겼다. 그의 음악은 영국에 뿌리를 내렸었고, 거기에서 적합한 토양을 발견했다. 영국인들은 그의음악을 좋아했고, 그는 영국인들을 좋아했다. 그는 스테파니에게 자신을 놓아 줄것을 요청했다. 스테파니는 "적당한 시간이 지난 후 하노버에 다시 돌아온다는 조건하에"마지못해 동의했다. 헨델은 1712년 말에 두 번째로 런던에 입성했다. 가끔씩의 독일 여행을 제외하고는 그는 남은 생애를 그곳에서 보냈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