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쓴 이(By): galois (갈로와) 날 짜 (Date): 1993년05월29일(토) 15시39분29초 KST 제 목(Title): 한국 음악론에대해서 한국 음악에 대한 논의가 처음으로 제기되게 된 계기는 1979(?) 쯤의 이 강숙 교수의 귀국에 있다. 그 당시 기존 양악, 국악계는 반목과 아집에 싸여 있으므 로서 진지한 논의로서의 한국 음악론을 이끌어낼 형편이 되질 못했다. 또한 1978쯤으로 기억되는 서울대 노래 서클 메아리의 노래집 "메아리4집"에서 시도된 "민중 음악 진용"들의 조심스러운 이론적 접근은 아직 맹아적인 형태에 불과했다. 이강숙은 귀국과 함께, Ethnomusicology(종족음악학 또는 민족 음악학) 을 소개함으로서, 한국음악에대한 논의의 문을 열었다. 사실 종족 음악학은 미국에서 기존 유럽 전통의 음악 문화에서의 자신들의 존재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인디안 음악과 재즈로 대표되는 미국 음악 자산들에 대한 학문적 연구에서 발단하였다. 그러나 이 종족음악학은 제3세계가 처한 문화, 정치적 상황과 연관이 되어 곧 큰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한국에 경우에서도, 이강숙에 의한 소개 직후 부터 음악 이론계로 부터 큰 관심을 얻게 된다. 이 후 서울대 작곡과 교수 이건용에 의한 "한국 음악론"으로 발전하면서 종족음악론은 곧 당위성을 획득하게된다. 독일 유학출신의 작곡가 이건용은 작곡의 과정으로서의 물음--곧 뒤에 소개하게 될 한국음악의 정의--로 부터 한국음악론을 이끌어내게 된다. 그 뒤 김 춘미, 노영해 등의 귀국과, 주 성혜로 대표되는 서울대 이론과 출신의 신진 이론가의 등장으로 한국음악론 진용은 큰 세를 형성하게 된다. 여기서 우리가 또 하나 중요한 인물로서 노 동은의 등장인데, 그는 민중 음악 진용과의 할발한 교류를 통해, 한국음악론의 전개 방향을 탐색하고 있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음악"이란 무엇인가? 이강숙등에 의하면 한국 음악이란 "다른 민족의 음악으로 부터 우리의 음악으서 구별될 수 있고, 한국민 모두가 한국음악으로서 공감할 수 있고, 한국민 모두에 의해 한국의 음악으로서 가치를 인정받는 음악" 이란 소박한 정의를 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음악이 현존하는 가하는 물음에 그들은 부정적인 대답을 내리고 있다. 우선 서양 팝계열의 대중 음악은 처음 부터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또한 일명 전통가요라 불리우는 트로트 가요 역시, 그 기원이 일본 엔가의 영향에 있었는가 아닌가를 떠나서, 트로트 가요가 지니는 1회적 유희성, 소비성, 그리고 그 내용이 지니는 퇴폐성 등으로 인하여, 진정한 한국음악 으로서의 의미를 상실한다. 물론 클래식 음악계의 양악계 역시 한국음악으로서 논의 될 수 없다. 국악역시 정악이 지니는 반 민중성으로 한국음악이 될 수 없다. 그리고 아악 역시 그 존재성을 봉건 사회의 공동체와 계급에 두고 있는바, 이미 해체될대로 해체된 농촌 공동사회의 현실아래서는 그 생명력을 잃었 다고 파악한다. 박제화된 음악으로서의 국악은 이미 한국음악이 될 수 없 는 것이다. 민중음악역시, 아직까지 지니는 싸움에 대한 보조 수단으로서의 음악 인식, 계몽 수단으로서의 음악 인식 때문에 한국음악으로서의 가치를 얻기에는 아직 요원한 것으로 본다. 이에대해 한국음악 진용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한국음악을 위하여, 그러나 반드시 존재되야 할 한국 음악을 찾기 위한 과정으로 우리의 논의와 연구를 진행 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한국음악론은 그 타당성을 떠나서, 진지한 이론적인 활동을 통한 최초의 "우리" 음악에 대한 논의 였다는 데에, 그리고 이에 영향을 받아 일기시 작한 민중음악계에서의 "음악"으로서의 그들의 음악의 논의를 불려일으켰 다는데에 우선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PS. 한국음악론에 대한 대단히 간략한 설명을 제가 아는 데로 했읍니다. 한 2년 전 쯤인 91년 경 까지의 논의 밖에 제가 아는 것이 없기에, 지금의 논의에 대해서는 고려를 하지 않았읍니다. 참고문헌. 이강숙, 이건용의 몇몇 저술들 (제목 기억안남) 몇몇 위에서 열거한 분들의 논문 그리고 "낭만 음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