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IT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눈토끼) <sdn-ar-002njhack> 날 짜 (Date): 1999년 7월 15일 목요일 오후 02시 37분 00초 제 목(Title): 나는 물이 싫어 ~ ~ 오늘도 울 MIT 방을 찾아주시는 가족 여러분... 안녕하세요!! 혹시 그림에 관심 많으신 분 계신가요? 오늘은 제가 뉴욕에 있는 Gugenheim Museum 에 다녀왔어요. 개인적으로는 표현주의(impressionism) 화가들의 작품에 관심이 더 많지만.. ( 제가 가장 사랑하는 Monet 선생님의 작픔들을 비롯하여... ) Gugenheim에서는 초현실주의(surrealism) 작픔들 전시회 중이더라구요. 처음으로 접해보는 거라 이해 안가는 점들도 많았지만 꽤 흥미로웠어요. 기회 되시는 분들 꼭 가보세요!! 흐흐흐흐흐.... 미술작품 감상을 하고 와서 그런지... 오늘의 이야기도 그리로 관련 지어지네요... 그럼...제가 띄워드리는 작품 하나 감상해 보세요... --------------- 나는 물이 싫어~~~~ 꺼내줘! ---------------- 내가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에서 비롯되었다. 인사동의 허름한 찻집에서 친구를 만나고 종로 쪽으로 빠져나올 때, 내 시선을 사로잡은 전시회 포스터가 하나 있었다. 포스터에는 '천재요절작가 김정수 유고전'이라는 굵고 고딕체의 문구 아래 딸을 안고 있는 자상한 어머니의 모습을 담은 평범한 작품이 인쇄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작품은 단란한 모녀를 그린 여느 그림과는 달랐다. 딸을 안고 있는 젊고 건강한 어머니의 목 주변에 붉은 줄이 그어져 있었으며, 안겨있는 딸의 눈은 아직 완성 되지 않은 상태였다. 유고전이라는 타이틀이 붙어 있지만 그 그림이 풍기는 분위기는 귀기어린 것이었다. 그러니까 처음엔 그림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기 보다... 그 그림의 사연에 관심이 있었던 것이다. 천애고아였던 김정수는 천신만고 끝에 H대학 서양화과에 입학했지만 하루하루 밥벌이를 하지 않으면 도저히 생활을 꾸려나갈 수 없는 처지였다. 여러 번 휴학을 거듭하고 막노동과 미술학원 강사를 전전했지만 등록금과 자신의 생활비를 벌고 나면 그것으로 끝이었다. 돈걱정 없이 그림에만 열중할 수 있다면…. 친척이나 하다못해 친한 친구도 없었던 그가 어느 날부터 그림에만 몰두할 수 있게 된 것은 같은 고아 출신인 정희의 헌신적인 노력 때문이었다. 그가 무사히 대학을 졸업하던 해 대한민국 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차지한 것도 반 이상은 정희 덕분이었다. 또 적어도 그때까지 김정수는 자신이 그린 그림의 절반은 정희가 그린 것과 다름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미술대전의 대상 작품도 고아원을 배경으로 그린 정희의 초상이었다. 그러나 한 차례, 두 차례 개인전을 거치며 뚜렷한 개성을 가진 유망 작가로 주목을 받기 시작하자 그는 자신이 고아라는 사실도, 그리고 같은 고아 출신 여성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사실도 다 구차한 현실로만 여겨지기 시작했다. 그의 명성은 날로 높아만 갔고 그림도 아주 비싼 값에 팔려나가자 그에게 정희는 귀찮은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다. 그의 그림이 아무리 훌륭하다 해도 그 역시 돈과 명예의 유혹에 사랑을 버리는 보통사람과 다름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돈과 명예가 있으니 당연히 미인이 따르듯.. 그에게 김미진이라는 애인이 생긴 것도 당연한일이었다. 어디에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완벽한 새 애인이 생겼지만 그에게는 정희라는 존재가 여전히 혹처럼 붙어 있었다. 김정수는 정희와 영원히 이별하고 싶었고 어느날 그 이별을 계획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주말이면 사람들로 꽉 차있겠지만 평일의 가평 유원지는 조용하기만 했다. 그는 마냥 행복해하는 정희를 배에 태우고 천천히 강 한가운데로 노를 저었다. "사실은 정희에게 할 말이 있어." "정수씨, 저도 고백할 게 있어요." 정희가 임신을 했다는 말에 정수는 잠시 마음의 동요를 일으켰지만 잠깐일 뿐 그는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배가 엎어지고 김정수는 한참을 물 속에 있었다. 저 밑에선 정수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정희가 답답한 가슴을 쥐어뜯으며 서서히 가라앉고 있었다. 마침내 정희의 코와 입에서 붉은 피가 나올 때쯤 김정수는 솟아올라 구조를 요청했다. 그는 원래 수영을 잘했기 때문에 허우적거리며 소리를 지르는 연기는 그에게 있어 그리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김정수는 자신을 천재화가로 만든 정희와 영원한 이별을 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그때까지는 말이다. 다음 계획은 일사천리였다. 고아 출신이라는 것,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자신도 죽음 직전에 구출되었다는 것이 이미 유명인사가 된 그에게는 다른 사람들의 동정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되었고, 그의 강인한 의지와 출세를 더욱 돋보이게 하기도 했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일어선 천재화가 김정수는 미모의 여인 미진과 곧 결혼을 했고, 그는 남부럽지 않은 행복한 가정에서 아무 걱정 없이 그림에만 열중할 수 있게 되었다. 미진은 결혼한 이듬해 건강하고 예쁜 딸을 출산했다. 영애라 이름 진 그 아이가 물을 무서워하는 것을 안 것은 한 살 때였는데.. 어는 날 그들 부부가 영애를 데리고 고궁을 찾았을 때, 호수 근처에서 자지러지게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그 후에도 물가에만 가면 영애는 울음을 터뜨렸다. 김정수는 "혹시…"하면서 과거의 자기 죄를 떠올렸지만 설마 하며 고개를 저었다. 세월이 흐르자 그는 자신의 치밀한 계획에 의해 저질러진 살인을 실수였다고 스스로 자기암시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죽은 정희의 자신에 대한 애정이 그렇게 질긴 것인 줄은 몰랐던 것이다. 5년후 어느 날... 김정수는 보통 때처럼 아침을 먹고 지하실에 차려놓은 작업실로 내려갔다. 자신의 그림에 몰두하고 있던 정수는 캔버스 위로 떨어지는 붉고 끈적한 액체에 화들짝 놀랐다. 지하실 천장에서 떨어진 핏방울이 자신의 그림위로 떨어진 것이다. 그림 속의 모델 미진의 목 주위엔 아크릴과 엉겨 붙은 핏물이 번지기 시작했다. 김정수가 1층으로 뛰어올라가 보니 목욕탕에서 흘러나오는 핏물이 서서히 거실 카펫을 적시고 있었다. 목욕탕 속에는 아내 미진이 시뻘건 핏물로 가득한 욕조의 바닥에 가라 앉아 두 눈을 부릅뜬 채 죽어가고 있었다. "여보!" 정수는 미친 듯이 울부짖으며 아내를 꺼내려고 욕조 안으로 몸을 숙였다. 등뒤에서 누군가가 예리한 칼로 정수의 목덜미를 내리친 것도 그때였다. "아악!" 비명을 지르며 돌아본 정수의 눈앞에 그의 딸 영애가 노려보며 서 있었다. "나는 물이 싫어, 어서 꺼내 줘 ∼" 영애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분명히 몇 해전에 정수의 음모에 의해 죽음을 당한 정희의 목소리였다. 김정수는 그제야 죽은 정희의 혼이 영애를 통해 자신에게 복수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지만 그는 이미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한 달이 지난 후 나는 김정수 유고전 포스터를 본 것이다. 내가 김정수의 유고전이 열리는 갤러리에 갔을 때, 그림에서 본 바로 그 아이, 영애만이 검은 상복을 입고 아무것도 관심 없다는 듯이 뛰어 놀고 있었다. 그 후로 나는 아무리 볼품없어도 그림 속에 담긴 사연에 깊은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끝------------------------------- 별말없이 토끼는 이만.... (뾰로롱~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