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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yungHee ] in KIDS
글 쓴 이(By): sinavro (  슈리~~)
날 짜 (Date): 1998년 5월  7일 목요일 오후 12시 25분 19초
제 목(Title): [슈리] 앨리트장미..


가지가 몽땅 잘려나간 장미를 보면서
문득 서러울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냥 들판에 피었다면,
야생에서 참 예쁘게 피었다고,
많이 피었다고 칭찬을 들었을터인데,
화분에 피었다는 죄로 
옆으로 삐져 나온 가지는 짤려야하고,
위로 솟아 오른 가지는 짤려야 하는건가??

  "이렇게 두면 나무 모양 다 버린다.."

어제 아빠가 가지를 자르시면서 하신 말씀이다..

가지가 하나 옆으로 삐져 나왔다고 해서 
예쁜 꽃이 미운 꽃이 되는 것은 아닐텐데..

옆으로 삐져 나온 가지도 예쁜 꽃을 피우고 싶어서
열심히 물과 양분을 빨아 올렸을텐데..

어쩌다가 옆 길로 조금 나와서 제대로 피워보지도 못하고
잘려야 하는지 애처롭기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장미가 크는데 지장이 생기는 것도 아닌데..


고 3인 동생은 공부를 못하는 편이다..
본인은 어떨런지 모르겠지만, 
목표하고 있는 곳에 제대로 안착할 수 있을런지도
불확실하다..

가끔 고등학교 시절 얘기를 할 때면,
진학률 얘기가 나온다..
이러다보면 서로 서울대에 많이 보낸다고 자랑을 한다..
(서로 명문임을 내세우다 보니.. 
 사실 그렇지도 못한데.. 후후..)

특히 남자학교에 다니는 막내동생은
서울대, 연고대에 진학률이 높다고 자랑이다..

문득 내가 고등학교에 다닐 때가 생각났다..

4-5년 전에도 있었지만,
지금은 우열반이니 우열보충수업이니 해서
학생들 수준에 따라 반을 달리해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화 되었다고 들었다..

학원의 경우는 더욱 심해
서울대반, 연고대반, 중앙, 서강, 한양대 등 중상류대 반..
등등 반도 세분화 되어 있다고 한다..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달성하기 위해 
정진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어쩐지 소수의 앨리트들만을 키우기 위해
나머지 다수는 들러리가 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어차피 사회는 소수의 앨리트가 이끌어 나간다지만,
그것은 첨단을 걷는 과학이나 의술 등과 같은 분야에서나
그런 것이고, 작은 직업들은 굳이 앨리트가 아니어도
괜찮은데 말이다..

하다못해 서울대 출신 박사는 양말을 안 신는 것도 아닐테고,
양치질을 안 하는 것도 아닐텐데..
이미 양말을 만들거나 칫솔을 만드는 것도
훌륭한 직업이라 생각되는데..
우리 사회에서는 어째서 그런 직업은 무시하는 것일까?

사회를 발전 시켜 나가는 것은 앨리트 들이지만,
그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은
다수의 비앨리트들이다..

심하게 말하자면 칫솔이 없었다면,
매시간 찝찝한 기분을 없애기 위해
손가락으로 이를 문지르고 있어
새로운 발명을 할 수 없게 될런지도 모르는데..

반을 세분화한다는 것은 처음부터 
가능성 있는 일에만 매달려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도록 하려는
배려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어쩌면 그것이 허황된 목표를 잡았다가 
실패하는 것보다 나을런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것들이 꿈과 가능성을 
무시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앨리트 한 명이 성공하였다고 하여
그 아이가 비앨리트인 나머지 아홉 명의 
인생을 대신할 수는 없는 것이다..

단, 1%의 가능성이라도 있다면 
나머지에게도 기회를 줘야 하지 않을까??

막내동생이 자신의 학교 서울대 진학률 얘기를 하면
난 넌지시 물어본다..

  "너는??"

처음엔 못 알아 듣다가 요새는 알아 듣고,
그 말을 들으면 고개를 푹 숙인다..
기가 죽는 것이다..

그러나 동생의 기를 죽이기 위해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아니다..
서울대 박사 학위를 가졌다고 해서 내동생과
바꿀 수 있을까?

동생은 비록 공부를 조금 못하지만,
어깨도 잘 주물러 주고, 재롱도 잘 피우고,
나름대로 이쁜 동생이니까..

요새는 그래도 열심히 한다..
서울대는 당치 않을 것이고,
어쩌면 본인이 원하는 곳에도 가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열심히 했다면
나는 동생을 다독여 줄 수 있을 것이다..

동생을 앉혀 놓고,
  "너희 학교 애들 1500명 중에 1499명이 
   모두 서울대에 가더라도 니가 못가면
   너 내년에 이렇게 웃을 수 있을 것 같으니?"
이런 얘기를 한다..

열심히 하라고 하는 얘기지만, 미안한 생각이 든다..

하지만 1499명이 모두 성공하고 동생만 실패하다라도,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면
난 칭찬해 주고 싶다..

1499명 나름대로 삶이 있고, 동생 나름대로의 삶이 있으니까..
다른 이들이 보기에 하찮은 삶일지라도 
본인에게는 한 번 뿐인
아주 아주 소중한 삶이니까..


화분에 장미가 한 송이 남아 있다..

어제는 아직 피지 않은 봉오리까지 세 개가 있었는데,
아빠가 삐져나왔다고 잘라버리셨기 때문이다..

위로 오똑 솟은 한 송이 남은 장미느 참 예쁘다..
예쁘긴 하지만, 나무 모양 버리지 않게
삐져 나온 가지를 잘라 주었다해서 
한 송이 장미가 세 배 더 예뻐 보이는 것은 아니다..
하나 남았기에 세 배 더 사랑을 받을지언정..

어제 잘린 가지를 차마 버리지 못하고,
작은 잔에 물을 채워 꽂아 두었더니
오늘은 활짝 피었다..
초라하지만 장미의 멋은 여전하고, 향기도 여전히 달콤하다..

다음에 나오는 가지가 또 옆으로 나오더라도 이제는
자르지 않을 것이다..
그 가지들을 자르면 나무 모양이 예뻐
꽃이 조금 더 예뻐 보이기는 하겠지만,
남은 가지가 잘린 가지 몫까지 몇 배 더
예뻐지는 것도 아니고,
자르지 않는다고 해서 예쁜 장미가 
안 예쁜 꽃이 되는 것은 아니니까..

어쩌면 옆으로 삐져 나온 많은 가지가 있기 때문에
똑바로 올라온 가지 하나가 더 예뻐 보이는 것이기에..

우리 사회 다수의 작은 직업이 있기에,
소수의 앨리트기 돋보이는 것처럼..

                           E-mail Address sinavro@cepros.kyunghee.ac.kr


~~시나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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