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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yungHee ] in KIDS
글 쓴 이(By): sinavro (시나브로)
날 짜 (Date): 1995년10월30일(월) 23시09분41초 KST
제 목(Title): [소설] 두 할머니 VII


  "먹기 싫으면 숟가락 놔라. 까죽거리지 말고."

  다솜 엄한 목소리에 나는 반사적으로 숟가락을 놓았다. 어머니는 전에 없이 
신경질적 이었다. 어머니가 처려주신 밥상은 두어술도 뜨지 않은 채 그대로였다. 
되새김질하듯 씹고 있던 음식이 입안에 질척하게 고여있었다. 어머니는 물을 담은 
대야와 수건을 들고 내 앞에 서 계셨다.

  "상은 내가 치울테니, 이거나 고모할머니께 갖다드려랴."

  시장기도 면하지 못한 속이 쓰려왔지만 나는 잠자코 어머니가 건네주는 대야를 
받아들었다.

  고모할머니는 물을 적신 수건으로 할머니의 얼굴을 닦았다. 행여 눈꼽이 
끼었을까? 진무른 눈가를 찬찬히 닦고 귓부리까지 꼼꼼히 닦아냈다. 주름에 패인 
골 하나하나 짚어가며 주름살 수를 헤아리듯 수건을 움직였다. 얼굴을 다 씻기고 
나자, 수건을 대야에 넣고 손발까지 닦았다. 닦는다기 보다는 쓰다듬는 것에 
가까운 손놀림이었다.

  "성님, 가실 때 가시더래도 정갈히 몸단장하고 가야 안 허겄소? 가서 현이 
할아버지 만나걸랑 이번엔 꼭 백년해로 해야지요."

  고모할머니는 아이를 구슬리듯 의식없는 할머니에게 속살거리며 말을 걸었다. 
고모할머니가 할머니의 옷섶을 헤치고 시든 젓가슴을 정성스레 씻겨주는 것을 
바라보다가 나는 조용히 방을 나왔다.

  시큼하고 후덥지근한 공기가 밀폐된 집안을 채우고 있었다. 부엌에서 물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는 좀채 부엌에서 나올 줄을 몰랐다. 창을 열자 빗발이 거세게 
들이쳤다. 비릿하고 서늘한 공기가 빗줄기에 묻어 들어왔다. 나는 한껏 숨을 
들이켰다. 매캐한 기운이 코 속으로 파고들었다. 건너방에 붙박이장처럼 박혀있는 
아버지가 뿜어내는 담배연기였다. 나는 창을 닫고 현관으로 갔다.

  "오밤중에 어딜가려구?"

  어머니의 목소리를 뒤로 하고, 나는 슬리퍼를 대충 꿰 신었다.

  급한 비탈길을 따라 물줄기가 작은 내를 이루며 흘러 내렸다. 첨벙거리며 
물줄기를 따라 걸었다. 발가락 새로 ㅃK져 달아나는 빗물이 간지러웠다. 낙수받이 
밑에 서자 우산은 분수대처럼 뽀얀 물방울을 사방으로 뿜어올렸다. 나는 내가 
집어삼켰던 집안 공기를 모두 토해내듯 크게 심호흡을 반복했다.

  차가 올라올 수 있는 제법 큰 길에도 인적은 드물었다. 나는 셔터를 내린 가게 
앞 평상에 주저앉았다. 나무로 된 평상은 흥건하게 젖어 있었다. 구겨진 담배갑을 
꺼냈다. 습습한 대기 속으로 담배연기가 퍼져들었다. 세차게 내리누르는 빗발 
사이사이로 하얀 연기가 힘겹게 올랐다. 깊게 숨을 들이 쉴 때마다 빨간 불꽃이 
어둠 속에서 타들어갔다. 어느 집 담벼락에 매달린 나트륨등의 노란 불빛이 빗물을 
타고 내 발밑까지 번져들었다. 비 오는 날은 모든 바닥이 거울이 된다. 모든 
점포가 문을 닫아 건 시각에 거리는 빗소리로 가득했다.

 
                           E-mail Address sinavro@ss-10.kyunghee.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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