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oreaUniv ] in KIDS 글 쓴 이(By): isadora (PPaSSe) 날 짜 (Date): 1997년09월24일(수) 11시33분20초 ROK 제 목(Title): 한경에 실린 곽연교수님 기획기사 제목 : [Y-파일] (우리대학 명강의) 고려대학 '현대음악의 이해' '음악속에 담긴 우리 민족혼을 찾자' 고려대학교에서 '현대음악의 이해'를 강의하고 있는 곽연(63) 교수가 30년이 넘게 학생들에게 던지고 있는 화두다. 음악대학이 없는 고려대에서 음악개론의 성격을 띤 곽교수의 '현대음악의 이해'는 고려대 학생들에게 필수 교양강좌로 자리잡았다. 학기마다 수강생이 2천5백여명에 달한다. 명성이 알려지면서 다른 대학교 학생들도 1백여명 이상씩 강의를 듣고 있으며 타학교 음악전공 조교수나 대학원생들도 청강하고 있다. 고려대학교 교양강좌의 대명사가 된 이 강의를 맡고 있는 곽교수의 경력도 이채롭다. 곽교수는 자신을 "스카이(SKY)대학" 출신이라고 소개한다. 지난 54년 서울대 음대에 입학했고 2학년까지 다니다 중퇴했다. 곧바로 고려대 철학과에 다시 입학했고 64년부터 고려대에서 음악개론 강의를 시작했다. 72년에는 연세대 음악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의 영문이니셜을 따 "SKY대학"이라 칭하고 있다. 세 대학을 두루 다닌 사람들은 더러 있지만 SKY순서까지 맞춘 예는 흔치 않다고 곽교수는 말한다. 곽교수는 자신의 강의가 유명해진 것에 대해 "열정적으로 강의하고 시간 마다 3번정도는 웃음이 나오도록 유도하기 때문 아니겠느냐"고 반문한다. 실제 그는 강의도중 강의실을 자주 뛰어다닌다. 열정적으로 피아노를 연주하다 칠판에 서서 강의를 하고는 다시 학생들 곁으로 다가간다. 강의의 주제는 크게 두가지다. 물론 시험문제도 이 두가지다. 첫번째는 "음악과 한국현대사". 곽교수는 젊은이들에게 한국현대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서 안타까워 한다. 통일을 앞두고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정서적 통일이 필요하다 이를위해 역사이해를 통해 민족의 얼과 넋의 색깔을 알고 새롭게 밝혀나가 야 한다는 것. 두번째 주제는 "음악과 사회교육"이다. 곽교수는 국민의 정서에 큰 영향을 주는 TV 라디오 음반 등이 이전에는 일본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더니 최근에는 미국문화의 아류만 추종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결국 젊은이들은 정서적으로 편식을 하게 됐고 우리문화에 대해서는 접할 기회조차 박탈당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그렇다고 국수주의자가 되자는 것은 아니다. 쌀밥과 김치를 주식으로 하면서 햄버거나 초밥을 먹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주식마저 바뀐다면 한국사람이라 할만한 아무런 이유가 없어진다. 예를들어 한때 방송에서 "전통가요"라는 칭호까지 붙여졌던 트로트는 철저한 일본노래다. "하야코 부시"라는 일본음계(라시도미 파라파미 도시라)를 그대로 따와 한국사람이 작사작곡했을 뿐이다. 일본음악을 때로는 듣고 이해할 필요는 있지만 이런 음악이 주식이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 뿐더러 여기에 "전통"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은 더욱 문제라는 설명이다. 재즈, 팝, 디스코, 마카레나는 우리에게 깊숙하게 침투했지만 아직 우리 가락과 장단을 이해하는 사람은 드물다. 곽교수는 음악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것도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대표적인 예가 음치다. 일반적으로 소홀히 취급되지만 음치를 그대로 방치하면 "반사회적 성격 장애"로 발전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한다. 수줍어하게 되며 자신감을 잃고 대중과 친밀해지기 힘들기 때문이다. 곽교수는 음치를 생각보다 쉽게 치료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쉽고 짧으면서 잘 아는 노래를 계명으로 2~3주만 연습하면 간단하게 교정이 된다는 것. 음악을 통해 민족혼을 찾아보고 우리현실의 문제들을 되짚어보는 그의 강의는 충실한 내용과 되새겨 볼만한 주제로 고려대학교 교양강좌중 가장 많은 학생이 수강하는 과목이 됐다. < 김남국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3일자). 발행일 : 97년 09월 22일 제목 : [Y-파일] (우리대학 명강의) '현대음악...'강의 곽연교수 곽연 교수와 만난 것은 고려대 교육대학원 강의를 마치고 난 오후 9시40분 께였다. 맥주나 한잔 하자면서 대학로의 카페로 가자고 했다. 저녁 10시쯤 도착한 곳은 대학로의 "끄레아숑"이라는 작은 카페. 행위예술가 임경숙씨가 운영하는 곳이다. 가끔 이곳을 찾아 젊은이들과 대화하면서 피아노 연주도 하는 곳이라고 소개했다. 맥주가 나오자 기자는 곽교수에게 먼저 술잔을 권했다. 그러나 곽교수는 "아랫사람이 윗사람에게 먼저 술을 따르는 것은 본래 우리나라 습관이 아니고 윗사람이 먼저 아랫사람에게 술을 마셔도 좋다는 의미에서 술을 따라야 한다"며 "술잔에 술이 남아있는데 술을 더 따르는 것도 제사 등 극히 제한적으로만 허용되는 것이고 우리식 습관은 아니다"고 말했다. 70년대말 강의도중 박정희 대통령의 일본 장교시절 이야기를 한게 문제가 돼 수사기관의 추적을 받았는데 용산고등학교 동창이었던 차지철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과 고려대 동문의 도움으로 제주도로 피신해 다행히 화를 입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곽교수는 들려줬다. 또 80년대에 대학생들이 민주화운동을 벌일 때 30여곡의 민중가요를 작곡해줬던 일화도 소개했다. 그러던 중 한 대학생이 야학 기금마련을 위해 테이프를 팔려고 카페에 들어왔다. 곽교수는 테이프를 둘러보고는 1만원짜리 지폐를 건네줬다. 그러나 테이프는 사지 않겠다고 말했다. 테이프의 대부분은 트로트와 최신 대중가요의 해적판이었다. 그는 올바른 일을 위해 도움은 줄 수 있지만 이런 테이프를 파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따금하게 학생을 혼내면서 돌려보냈다. 잠시후 우연히 카페를 찾은 탱화작가 이인섭씨와 시인 김하윤씨 등과 함께 자리를 같이하며 이야기를 나누다 곽교수가 피아노앞으로 다가갔다. 어버이은혜, 비목, 그리워, 선구자 등 아름다운 우리가곡을 카페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합창했다. 짧은 시간을 함께 했지만 노교수의 무게가 느껴졌다. 희랍신화에서 아틀라스가 육중한 무게의 우주를 떠받들고 있듯이 그도 우리 고유의 정서를 젊은이들에게 전파하기 위한 육중한 음악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 김남국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3일자). 발행일 : 97년 09월 22일 제목 : [Y-파일] (우리대학 명강의) 신선한 충격 .. 강의를 듣고 학생들을 압도해 존경을 한몸에 받는 교수는 두가지 유형이 있다. 하나는 범접할 수 없을 만한 양의 지식과 앞날을 훤히 내다보는 듯한 통찰력을 가진 유형이며 다른 하나는 전공분야에 대한 남다른 애정과 강의에 대한 정열을 가진 유형이다. 물론 두가지를 두루 겸비한 교수도 있지만 4년째 대학생활을 해오면서 만난 분들은 아쉽게도 대부분 전자에 속하는 경우가 많았다. 곽연 선생님의 "현대음악의 이해"를 수강한 것은 지난 96학년도 2학기였다. 신입생때부터 선배들로부터 "현대음악의 이해를 수강하지 않으면 고려 대학교를 졸업했다고 할 수 없다"는 말을 익히 들어왔다.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수강을 시작했다. 강의 첫시간, 강의실문을 열어젖히는 선생님은 외모에서부터 범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작달막한 키, 적당히 볼륨있게 튀어나온 아랫배, 반쯤 벗겨진 앞이마. 음악가에 대한 내 선입견을 더욱 무참히 깨버린 것은 선생님의 강의진행 이었다. 2시간 내내 칠판에서 피아노로 학생들사이로 종횡무진하는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강의에서 처음으로 부른 노래는 "고향의 봄"이었던 것 같다. 그 시간만큼은 편안하고 즐거워야 한다는 것이 선생님의 주장이었다. 특히 한소절씩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며 들려준 낯익은 트로트가요 대부분이 일제시대의 뽕짝리듬에 기초한다는 것도 내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우리는 그 학기에 "우리겨레의 하나됨을 위한 음악"을 주제로 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분단 반세기가 되어가는 지금, 우리 민족이 통일된 후 요구될 가장 효과 적인 정서적 통일은 바로 가장 원초적 교감수단인 음악을 통해 이뤄질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보며 종강에 임했다. 현대음악의 이해는 4년간에 걸쳐들은 강의중 가장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수업이었다. 선생님께서는 두시간 내내 학생들의 시선을 집중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즐겁고 편안한 시간을 갖게 해줬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9월 23일자). 발행일 : 97년 09월 22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