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oreaUniv ] in KIDS 글 쓴 이(By): pkp (~~~pkp~~~) 날 짜 (Date): 1997년07월11일(금) 00시34분42초 KDT 제 목(Title): [sora] 한국에서 5 Posted By: sora (소 라) on 'LifeSketch' Title: 한국에서 5 Date: Thu Oct 3 18:18:15 1996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다. 정이 많아서 남에 일도 잘 도와주고 아는 사람에게 선심도 베풀줄 알며 또 간섭도 많이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다. 한국에 이십 여일간 머물면서 거의 매일 점심과 저녁을 밖에서 먹었음에도 내가 내 밥값을 한번도 낸적이 없었을 정도로 인심이 좋다. 중 고등학교 친구들뿐이 아니라 하나에서 알게된 친구들까지도 선뜻 내 밥값을 치뤄주는 그런 선심을 베풀줄 아는 사람들이 한국인들이 아닌가 싶다. 처음엔 상당히 불편하고 부담스러웠다. 미국으로 돌아가버리면 신세를 값을 길이 전혀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내가 지갑을 꺼내려고만 하면 화를(?) 내가면서까지 막는 친구들이 처음엔 부담스럽기만 했지만 차츰 뭐 또 언젠가 내가 빚을 값을 수 있는 기회가 있겠지 하고 편히 생각하기로 했다. 가끔 내가 몰래 먼저가서 차 값을 해결하기도 했지만 결국은 신세만 잔뜩 지고 왔다. 나중에 내가 베풀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바라면서... 중 고등학교의 친구들... 9년전 헤어질때와 그리 많이 변한게 없었다. 나보고도 같은 소리... "어쩜 넌 하나도 변한게 없니?" 그래서 같이 모여서 떠들다 보니까 꼭 고등학교때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었다. 고등학교땐 토요일 오후마다 다섯명이 분식점으로 몰려가서 이것저것 시켜놓고 먹으며 신나게 떠들다가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다. 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개네들 말로는 총액이 얼마인지 그래서 다들 얼마씩 내야하는지 하는 계산은 내가 도맡아서 했다고 한다. 그래서 걔들 대학 가서 가끔 모여 분식집에 갈때마다 내 이야기를 하곤 했다고 한다. 같이 분식집에 앉아서 이것 저것 시키려니까 비록 300원 하던 떡복기가 2500원으로 올랐어도, 친구 하나가 결혼에서 남편을 데리고 왔어도, 우리가 먹은 전부를 한 사람이 계산할 정도의 여유가 생겼어도, 하이힐에 화장을 예쁘게 하고 나온 친구가 있었어도 결국은 9년이란 세월이 어디론가 사라져 버린것 같이 아무 허물도 없이 신나게 떠들 수 있었다는 것이 한국을 떠나기 싫었던 이유이다. 이래서 고등학교 친구들이 좋다는 걸까... 중학교 동창들도 마찬가지. 중학교 동창들도 고등학교 다닐때까지 많이 만났었고 집에도 자주 갔었던 터라 부모님들하고도 잘 아는 사이여서 반갑게 맞아주시는 친구 부모님들... "얘, 밥해줄테니까 와서 한끼 먹고 가려므나.", "하룻밤 와서 자고 가지 그러니?", "어머닌 잘 계시지?"... "아니 누나 오랜만이네요?", "어, 언니 언제 왔어요?" 라고 맞아주는 친구 동생들... 마치 며칠만에 다시 돌아온것 처럼 변함없이 맞아주는 그런 사람들에게서 편안함과 따스함을 느꼈다. 이제 중학교 친구들은 다 결혼을 해서 좀 거리감을 느끼지 않을까 걱정을 했던것이 오히려 무안할 정도로 잘해주던 친구들... "이야기 너무 많이 들어서 이거 오랫동안 알던 사람 같읍니다"라고 맞아주던 친구들의 남편들... 이런 친근함을 오랫동안 느껴보지 못했다. 고향에 돌아온 느낌이라는 것이 이런 느낌일까... 한국 사람들은 정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생각을 해봤다. (from HANABBS) ~~~~~~~~~~pkp~~~~~~~~~~~~~~~~~~~~~~~~~~~~~~~~~~~~~~~~~~~~~~~pkp~~~~~~~~~~~~ ^_^ 키즈의 아저씨 pkp palindrome ^L^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