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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쓴 이(By): minjok (Hong S.B.)
날 짜 (Date): 1996년10월05일(토) 00시19분05초 KDT
제 목(Title): [고연제] 고연제의 기원과 역사.


 고연제의 기원과 역사
     
 제1기 (암울한 식민지 시대, 민족의 자존심으로....)

고연제의 효시는 1926년에  있은  제1회 '전조선 전문학교 축구연맹전'  결
승전에서 맞붙은 보성전문과 연희전문의   시합이었습니다.  당시 체육계의 
강자였던 보성전문과 연희전문은  각종경기의 결승전에서 맞붙게 되었고 일
제치하의 우리민족에게는  억눌린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고 희망을 심어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1927년 제2회  '전조선   전문학교 연맹전' 에서부터  1942년까지 28차례의   
축구정상을 가리는  접전에서  14승14패의  무승부를 기록하였습니다. 특히 
1938년 거행된   '전일본 농구선수권대회'에서 일본의  유수한 팀을 잇따라 
격파하고 결승에 진출한   양교의 대결은 당시의 우리민족의 큰 자랑거리가 
아닐 수 없었습니다.

    제2기 (해방이후 고연전의 수난기)

일제시대 선배들의  전통에 영향을 받아  1946년부터 춘계추계로 나누어 정
기전을  갖기로 합의하면서 비로서 지금과 같은 고연제의  모습이 갖추어지
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시기는  이땅을 사는 모든이들에게  수난의 시대
였으며 더불어 고연전도 그  운명이 순탄치는 않았습니다. 1950년 한국전쟁
으로  말미암아 1955년까지 5년간 중단되는  불운을 맞기도 했습니다. 
1956년 다시 부활되었으나 58년은 학교사정으로, 61,  62, 63, 64년은 5.16 
군사쿠테타의 영향으로 개최되지 못하는  등 시련을  겪었으며 학우들 사이
에서나, 사회적으로 큰의미를 가지지 못했습니다.

    제3기 (고연전 제모습을 갖추다)

해방이후 제대로  고연전이 치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65년에 들어 정기전이 부활되었던 것이었습니다.  농악대, 축포까지 동원
한 응원전과 경기가 끝나서 시내 한복판을 지나서 시청까지  벌이는 시가행
진은 당시 양교생들에게  많은 낭만을 심어 주었습니다.  이 당시 고연전은  
T.V방송국에서 전경기를 실황중계해 주는 등 양교학생들뿐 아니라 전서울시
민의 관심사였습니다.        

    제4기 (탄압과 고연전의 폐단에 대한 비판의 와중에서.....)

1971년 10월 5일  수도경비사  군인들의 고려대학교 학내  집단난입으로 시
작되어 위수령으로 이어진  학원사태로 인해  71년,  72년 고연전은 무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사건은 군사독재정권의 극심한 학원탄압을  보여주는 
한 사례에 불과하였습니다.이러한  와중에서 73년부활된 고연전은 83년까지 
계속되었으며 이때부터는 고연전의  부작용에 대한 문제제기가 서서히 등장
하게 되었습니다.


    제5기 (고연민족해방제로의 새로운 전환의 시기)

80년에 들어서면서 고연전은  새로운 전환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대폭적인 
대학생의 증가와 81년 '국풍'으로  대표되는 관제문화유포, 82년  프로야구 
창단과 함께 시작된 스포츠,오락등의 부문별한 양산은 고연전의 외적인  요
인을 변화시켰던 것입니다. 이렇게  변화된 여건속에서 기존 고연전의 답습
은 많은  문제점을  노출시켰습니다. 대학인구의 급증으로 인해 학교시설과 
학생복지시설이 부족한 상태에서 고연전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시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또한 고연전은 국민의 비판정신을 마미시키고  독재정권의 문화정책에 일조
할 위험성을 항상 안고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급기야는 83년  고연전이 학
교측의 "초기 고연전의 의미가 퇴색하였고 과열선수스카웃경쟁과  소비향락
적으로 변질된  행사의 부작용"을 이유로  "새로운 방향모색을 위해 고연전
을 취소한다."는 발표가   있게 되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고연전의 의미와 
위상에 대한 많은 논란이 있게  되었고  84년에는 오랜 논의의 결실로 고연
전을 고연 민족해방제로 확대하고  학교가 아닌  총학생회가 주관하게 되었
습니다. 행사내용도 체육제에서  학술제, 문화제로 확대되었고 고연 민족해
방제를  양교의 친선과  우애를 다지는 것과 동시에 올바른 민족민중문화를  
계승하고 청년학도의 시대적   임무를 다하는 대동과 단결의 장으로 자리매
김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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