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KoreaUniv ] in KIDS 글 쓴 이(By): guest (sjyoun) 날 짜 (Date): 1996년06월11일(화) 09시29분58초 KDT 제 목(Title): [천리안]오경할매의 사랑이야기 해방전후에 있었던 이야기에 대한것인데 좋은 내용인것 같아서 퍼왔습니다. 일독하시길.. ------------------------- 번호:2/9 등록자:HOSOOKI 등록일시:95/05/26 12:10 길이:105줄 제 목 : 오경할매의 사랑이야기 내가 오경할매의 그옛날 사랑 얘기에 귀를 기울인 것은 오경 할매의 단짝 친구였던 우리 할머니가 돌아가시고도 1년이 지난, 할머니의 첫 제사겸 탈상을 하고난 늦은 밤이었다. 오경 할매는 이제 70이 넘어 꼬부라진 허리에 볼품없는 체구의 평범한 할머니 였지만 그래도 그시절에는 마을에서 소문난 미인이었다고 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신 우리 할머니가 평안북도 정주의 조그만 섬 애도에서 최고로 미인이었다고 늘 반박하시지만 우리 할머니가 키가 크고 시원한 눈매를 가진 서구적 외모의 미인 이었다면 오경 할매는 조그맣고 오목 조목한 얼굴의 모든 사람이 한눈에 호감을 가질 그런 인상이었을 것이다. 아직도 입가며 눈 언저리에 곱게 늙으신 자태가 남아있는걸 보면..... 아무튼 오경할매와 선봉 할아버지의 눈물나는 사랑 이야기는 그 조그만 섬에서 시작되었다. 마을의 가장 잘생긴 남자 선봉과 아름다운 여자 오경이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것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마을에선 유명한 소문이었고, 그 시절에는 남녀의 연애를 곱지않은 눈길로 보는 사람이 많았을 터인데도 이 선남 선녀의 연애를 마을 사람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아 주었다. 망할 놈의 징용이 동네의 청년들을 사그리 훑어 내고 있을 때쯤 우리 할아버지와 선봉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피할 수 없이 일본으로 가는 배를 타야만 했을 때, 우리 할머니는 아버지를 임신한 상태였고 오경 할매는 양가에서 혼담이 있어 거의 성사가 되어가던 중이었다. 그 해가 일제 말기 해방되기 한해 전이라고 했으니까 거의 일년의 징용생활을 아마 선봉 할아버지는 오경할매의 생각으로 버티었을 거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겠지.... 일년을 하루같이 정한수를 떠놓고 자신의 사랑이 무사히 돌 아오기만을 기원하고, 그런 동안에 우리 할머니는 아버지를 낳았다. 어느날은 둘이 점장이를 찾아갔단다. 과연 살아서 내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겠느냐고.... 근데 그 신통한 점장이는 올 추석에는 반드시 한 밥상에서 밥을 먹을 수 있을거라 예언 했단다. 오경 할매는 사랑을 잃었으니 포기하라는 점괘가 나오고..... 정말로 해방이 되었다. 그해 팔월이었으니까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추석은 훨씬 지났지만 10월 어느날 재회를 할 수 있었단다. 해방 되던 그해 8월, 우리 할머니와 오경 할매, 이 당돌한 처녀둘은 일본이 항복했다더라는 소식을 듣고, 태어나서 한번도 떠나본적인 없 는 섬을 떠나 부산으로 향했다. 혹시나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고서 두달 여를 부산항에서 노숙을 해가며 헤메었단다. 돌아온것은 할아버지 뿐이었다. 할아버지 조차도 선봉이 어디로 끌려갔었는지, 살았는지 소식은 오리무중 이었다. 몇날을 울며 불며 한사코 떠나지 않겠다는 오경할매를 달래며 고향으로 돌아온 것은 이미 겨울로 가는 문턱이었다. 그후로 신탁이니 반탁이니 어수선한 정치의 물결이 지나갔지만 이 조그만 섬은 예외였고 선봉과의 무성했던 소문탓에 오경에게 다시는 혼담이 들어오지 않았 음을 제외하면 섬은 평온함을 유지했다. 그 후 전쟁이 터지고 애도엔 제일 먼저 빨갱이가 들어왔다. 마을의 대다수 청년이 공산당원이 되었고 해방 후 얼마간 자유당 사람들과 어울렸던 할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야음을 타서 온 가족을 이끌고 월남을 했다. 우리집은 군산이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거기서 살았고 그 집은 전쟁때 군산으로 피난와서 오랜 동안을 난민 수용소에서 고생한 끝에 마련한 우리 가족의 결실이기도 했다. 그리고 거기 군산...에서 거짓말처럼 할아버지는 선봉과 재회했다. 선봉은 그 때 이미 성공한 장사꾼이 되어 있었다. 징용에서 돌아올 때 군산으로 도착했던 것이다. 일본이 호남평야의 그 풍요한 쌀을 실어내가던 제일의 항구 군산에서 원래 머리가 좋았던 선봉은 해방후 이렇게 저렇게 주인 없이 흘러다니는 물건들을 팔기 시작해 큰 부자가 되어있었던 것이다. 물론 어여쁜 각시도 있고 알토란 같은 아들 둘이 슬하에 있었다. 선봉 할아버지는 내가 어린시절 우리집에 가장 자주 마실을 오는 분이었다. 걸쭉한 목소리로 소주잔을 기울이면서 할아버지와 선봉할아버지가 늦은 밤까지 옛날 얘기를 주고받을 때마다 나는 슬그머니 할머니의 무릎에서 잠이 들곤 했었다. 오경할매도 월남을 했다. 식구들이 인천에 정착하는 바람에 인천에 터를 잡고 거기서 사셨다. 오랜동안 결혼을 못하고 처녀로 지내시다가 나중에 한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는데 그게 아편쟁이 였단다. 자식도 없이 남편을 떠나보내고, 부모 없는 고아를 양녀로 얻어 오랜동안 고생하며 사시던 오경할매는 세월이 지나 우리 집에도 2,3년 에 한번씩 찾아오실만큼 여유가 생기셨다. 호사가인 우리 아버지가 선봉할아버지와 오경할매의 극적인 재회를 그저 재미삼아 주선함므로써 두분의 만남이 이루어졌다. 그간 선봉할아버지와 오경 할머니는 모두 우리 집안과 왕래를 하고 있던 터였지만 선봉 할아버지를 사랑 의 배신자라고 미운 눈으로 보시던 할머니가 살아계신 동안에는 두분의 만남은 이루어질 수가 없었다. 더구나 오경 할머니가 키우던 양녀가 결혼을 하고 할머니 를 모시면서 부터는 외출도 자주 안하셨기 때문에 우리집에 그나마 뜸하게 오시던 발길도 몇해전에 끊어졌었던 것이다. 할머니가 오경할매에게 선봉할아버지가 살아계시다는 얘기를 하셨을까? 오경 할매는 닿고자 하면 가까운 거리에 그토록 사랑하던 이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을까? 아무튼 그날 오경 할매는 단짝 친구였던 우리 할머니의 탈상을 보시려고 먼길을 오셨고, 그런 오경 할매에게 아버지는 짖궂은 장난처럼 전화로 선봉 할아버지를 부르셨던 것이다. "네가 오경이가? 네가...... 야.. 뎡말 하나토 안변했구나야!!" 할머니 탈상이 거의 끝나갈 무렵 도착하신 선봉 할아버지의 말이었다. 안 변할 수가 있을까? 50 여년이 흘러 싱싱했던 젊음이 시들어 가는 주름으로 얼굴 깊숙히 세월의 상처와 함께 패어있는데도 선봉 할아버지는 글썽한 눈으로 수줍은듯 아무말 못하시는 오경할매에게 안변했다며 감탄하시고 또 감탄하셨다. 그날 밤 밤이 깊도록 선봉 할아버지와 우리 할아버지는 안방에서 술을 드셨고, 결국 만취한 선봉 할아버지가 몸을 가누지못해 장성한 아들이 와서 모셔갈 때까지 오경 할매는 잠도 못이루시고 건넌방에서 몸을 뒤척이셨다. "그래 뉘가 군산으로 돌아올 지 내 오찌 알았을고....." 그리고 오경할매의 한숨섞인 눈물을 나는 보았다. 그제서야 나는 선봉할아버지가 70이 넘은 오경할매의 눈빛에서 찾은 변하지 않은 사랑의 감정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루어졌어야 할, 그리고 아름답게 살아갈 수 있었던 남녀의 사랑이 지나간 세월의 상처와 함께 내 마음속에 깊이 파고들었다. 50여년이 지난 해후의 자리에서도 서로 지난 얘기를 하지못해 건넌방 한쪽에서 말없이 설레는 가슴 만을 태우시던 오경 할매의 슬픔이 그날 밤 나의 가슴을 적시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