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쓴 이(By): pkp (~~~pkp~~~) 날 짜 (Date): 1993년06월30일(수) 01시06분42초 KST 제 목(Title): [민족고대(民族高大)]와 [교우회(校友會)]� [민족고대(民族高大)]와 [교우회(校友會)]의 유래 -교우회란 재단.학교.졸업생의 삼위일체- 권혁종(權赫鐘)(46.정.교우회보 편집위원) 우리 고려대학을 특징짓는 두 가지 용어가 있다. 그 하나는 [민족고대(民族 高大)]라는 특징이요, 그 다음 하나는 [교우회(校友會)]라는 이름의 동창회 조 직이다. 고대(高大)는 1905년 일제침략의 마수로 우리의국운이 기울어질 무렵, 당시 고종의 내장원경(內臧院卿)을 지냈던 충숙공(忠肅公) 이용익(李容翊)선생은 우 리민족의 살길은 오로지 교육뿐이라는 건학(建學)정신으로 보성전문학교를 창 립한데서 출발한다. 그 후 이용익 선생이 한일합방으로 러시아로 망명, 학교 경영이 어려워지자 천도교 교령이신 손병희 선생께서 경영을 인수하게 되었으나, 1919년 3.1운동 으로 일경에 의해 투옥되자 또다시 보성전문은 수난의 역사를 맞게 되었다. 한 때 보성법률상업학교로 격하되는 등 10여년간 시련을 겪다가 우리 고대 의 중시조라고도할 인촌 김성수 선생께서 1932년에 학교를 인수하여 현재의 안암동 학사를 신축하시고 학교다운 학교로 가꾼 것이 오늘의 고려대학교이다. 이렇듯 우리 고대는 그 생성자체가 민족자본으로 이루어졌고, 일제의 그 조직적인 탄압속에서도 민족자본에 의해 유지발전되어왔다. 이와같은 어려운 환경과 일제 탄압에 맞선 항일운동은 마침내 우리 고대에 끈질긴 야성을 심어 주었고 [민족고대(民族高大)]라는 애칭을 낳게 한 것이다. [교우회(校友會)]라는 조직과 명칭도 이와같은 연정에서 생성된 말이다. 교 우회(校友會)라고 함은 재단, 학교(교수), 졸업생 등이 한데 뭉친 삼위일체의 동창회 조직이라는 뜻이다. 8.15 해방이 될 때까지 우리말만으로 강의하였다면(최태영 선생님의 말씀, 당 94세) 일제로서는 보성전문에 대한 미움이란 이만저만 한 것이 아니었으리 라. 그래서 일제에 대항하고 민족문화를 조금이라도 지키려면 [단결과 화합]이 우리의 신조가 될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환경에서 형성된 사제간의 끈끈한 정, 그리고 선.후배간의 두터운 신뢰관계는 마침내 우리의 아름다운 재산이요, 전 통이요, 자랑인 것이다. 1907년 결성된 교우회 회장직은 1953년까지 학교장, 대학총장이 겸임하였으 나, 54년 독립을 선언, 초대회장에 황태연 선생, 2대 회장에 이병수(?) 박사, 그 이루 한종민, 김성곤, 김원기, 장덕진, 김일두 교우님을 거쳐 지난 3월27일 정세영 교우가 21대 회장에 선임됐다. 이제 우리 고대는 14만 교우로 구성되는 대가족일 뿐만아니라 1년에 5천명을 넘는 교우가 배출되고 있다. 지난번 총회 에 1천4백명이 참가했다해서 모두 놀랐지만 따지고보면 전체 교우의 1%에 불과 하다. 앞으로 있을 회칙개정 때에 깊이 논의될 일이나, [민족고대(民族高大)], [교우회(校友會)]의 특징을 살려 서울대와 연세대처럼 단과대학별 동창회로 분 해하지 말고 동기회, 분회 및 각지부(해외지부 포함)별로 대의원을 뽑아 이 대 의원에 의한 총회에서 회장단의 선거는 물론 우리 교우회의 최고의사가 결정되 게 하는 것이 교우회 조직의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듯하다. 1993/6/5 교우회보에서.. ~~~~~~~~~pkp~~~~~~~~~~~~~~~~~~~~~~~~~~~~~~~~~~~~~~~~~~~~~~~pkp~~~~~~~~~~~~ ^_^ 키즈의 아저씨 pkp palindrome ^L^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