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oreaUniv ] in KIDS 글 쓴 이(By): tquark (안스니스.) 날 짜 (Date): 2000년 10월 8일 일요일 오후 11시 56분 08초 제 목(Title): [冷箭] 나를 키운건 8할이 파시즘 가령 YS가 재임기간에 1백가지 일을 했다고 하자. 그 가운데 99가지만을 잘못했다고 치고, 잘했다고 생각되는 것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면? 조금 난해한 질문인가? 어느날 술자리에서 하릴없이 떠오른 이 술맛 떨어지는 질문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내가 찾아낸 답변은 이거다. ‘국민학교’ 라는 명칭을 없앤 것. “우리는 민족 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로 시작되는 「국민교육헌장」. 일제하 만주군에 복무하며 독립군에 맞서 충실한 황국신민의 역할을 맹세했던 박정희가 지었다는 이「국민교육헌장」은, 일본 군국주의 잔재의 냄새를 진하게 풍기면서 오랫동안 우리나라 학교 교실의 앞면을 장식했다. 국가파시즘의 시대. 학교교육은 국가파시즘을 충실히 이념화했고 실천했다. 이 ‘국민교육’의 이념은 국민학교라는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뀌면서 ‘시민교육’의 이념으로 재정립돼야 했다. 집단이나 국가의 논리 이전에 개개인의 삶이 소중하고 존중받을 가치가 있는 것임을 학교교육을 통해 가르쳐야 했다. 그러나 그 명칭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학교라는 제도적 공간은 여전히 아이들에게 억압적이고 일방적이다. 아이들은 여전히 규율과 통제의 대상이다. 자유롭게 자신을 가꾸면서 스스로만큼이나 다른 사람도 자유롭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을 배우는 게 아니라, 이 땅의 학생들은 똑같이 행동하고 똑같이 생각하고 똑같은 방식으로 꿈을 꿔야한다. 조금 다르면 왕따가 되고, 같아질 때까지 길들여져야 한다. 학생들에게 두발의 자유를 주어야한다는 주장에 대해 아이들의 탈선을 조장한다는 이유로 반대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많다. 아이들은 여전히 인격적으로 열등한 존재이며, 나아가 예비 범죄자들로 취급된다. 그래서 오늘도 학교 교사나 선도부 학생들의 손에는 가위를 들려져 있다. 예전 한겨울 ‘바리깡’으로 머리에 ‘고속도로 내고’ 다녀야했던 시절로부터 우리는 얼마나 멀리 온 것일까? 폭력은 상대방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나의 뜻을 강제적으로 관철시키는 일체의 행위를 뜻한다. 거기에는 설득과 이해라는 의사소통을 위한 기본 절차가 빠져있고, 관대함과 타협이라는 민주적 소양이 결여돼 있다. 우리는, 우리 아이들은, 스무살이 될 때까지,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소통의 절차와 관대의 정신을 배우는 게 아니라, 일방적 통제와 규율이 지배하는 문화를 내면화한다. 말하자면 제도교육을 충실히 받은 우리는 모두 그 폭력의 문화를 내면화하고 있다. 언제 어디서 광기로 폭발할지 모르는 우리 안의 파시즘.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하지 않는다고 낯선 할아버지에게 꾸중들은 중학생이 홧김에 그 할아버지를 밀쳐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은, 그래서, 우리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게 멀리 있거나 낯선 일이 아니다. 20세기동안 우리는 소통의 기율과 관대의 정신을 배우지 못했다. 우리를 키운건 8할이 파시즘이었다. 이것을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반성할 수 있을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세기를 시작할 수 있으리라. ■<갈뫼> 2000년 10월 9일자 고대신문(http://kunews.korea.ac.kr)에서 |